몇 년 전, 현직 경찰관이 클라터증후군Klinefelters syndrome 판정을 받은 아들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남성의 성염색체는 X와 Y가 하나씩 조합된 구조라면, 클라인펠터증후군은 X성염색체를 한 개 이상 더 가지고 태어나는 것. 뉴스에서도 클라인펠터증후군을 설명하며 ‘성염색체 이상 질환’이라고 표현했다. 여성형 유방이 나타나며 고환이 작고 남성호르몬이 적게 분비돼 성 기능이 떨어지지만, 남성호르몬을 투여해 치료하면 일상생활에는 무리가 없는 질환이라고 말이다. 그 후 인터섹스intersex의 존재를 인지하고 나서야 클라인펠터증후군이 인터섹스 범주에 속한다는 걸 알았다.
인터섹스 혹은 간성間性은 염색체상의 성별과 생식기가 일치하지 않거나, 남녀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등 선천적으로 난소·정소나 성염색체, 성호르몬, 성기 가운데 하나 또는 다수가 여성·남성으로 구분되는 특질과 다르게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생물학적 특징에 대한 개념으로 여성·남성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체계엔 들어맞지 않는 사람이다. ‘제3의 성’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그 어떤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인터섹스의 범주는 넓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비롯해 터너증후군,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 등 수많은 부류의 인터섹스가 존재한다.
터너증후군은 X성염색체 부족으로 나타난다. 여성의 염색체는 X성염색체 두 개로 이루어지는데, 이 염색체가 하나 빠지거나 일부분이 소실되는 경우다. 난소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방·자궁·질 등의 성기 발육부전이 나타나고, 생리를 하지 않거나, 조기 폐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AIS은 남성호르몬 전체를 일컫는 안드로겐의 수용체가 결핍되거나 이상이 생겨, 체내에 XY성 염색체를 지녔어도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외형은 여성으로 나타나고 생식기 역시 페니스가 아닌 클리토리스인 경우가 많아, XY 성염색체를 지녔다고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불임 판정 등을 계기로 염색체 검사를 통해 자신이 AIS임을 알게 된다. 이때 정체성의 불일치로 남성적 외형을 원해 남성호르몬을 맞는다 하더라도 전혀 효과가 없다. 벨기에 출신 모델 안 가비 오딜이 AIS였음을 커밍아웃해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스포츠계, 특히 올림픽 에서 AIS임이 밝혀져 메달을 박탈당하거나, 선수 출전 자격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한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1.7%를 인터섹스로 추정한다. 전 세계 인구를 77억 명이라 하면 1억 명 을 훌쩍 넘기는 수치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두 배보다도 많다. 이렇게 많은 인터섹스의 존재가 왜 일찍 가시 화되지 못했을까? 인터섹스는 일반적으로 출생 직후 성기 모양을 보고 바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2차 성징이 일 어난 후 또는 성인기 이후 알기도 하고, 평생 인터섹스임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도 있다. 보통 인터섹스 아이가 태어나면 의료진과 부모가 협의해 여성과 남성 중 성별을 선택한다. 태어나자마자 부정당하는 인터섹스의 존 재. 이른바 ‘정상화 수술’이라 부르는 전환 수술을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 하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은 신 생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미리 성염색 체 이상을 발견해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에 수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수술은 영구 불임이나 통증 같은 부작용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이때 결정된 성별로 인해 오히려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경우도 발생한다. 물론 아이의 건강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수술도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그 기준선을 벗어나지 않게끔 성기 수술을 행하는 게 핵심으로, 이런 수술에 대해 국제 앰네스티는 인권 문제라 판단했고, 유엔 또한 자기 동의 없는 수술은 고문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보고 서엔 ‘정상화’를 명목으로 고통스럽고 불가역적인 생식기 수술을 받는 것이 성 정체성 형성 전인 유년 시절 결정 된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지난해 인터섹스 아 이들에 대한 수술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미국 최초로 통과시켰다.
수술 금지 결의안도 법적으로 인터섹스를 인정해야 가능한 일. 우리나라에 선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여성과 남성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산부인과에서 의료진이 기록하는 출생신고서 성별란엔 ‘불상不詳’이 있지만, 동사무소에 등록하는 출생신고서엔 여성과 남성밖에 없다. 사회가 성별의 이분법적 체계 바깥에 있는 사 람들을 포용하지 않는 한 인터섹스의 성별을 부모가 지정하는 일은 막을 수 없다. 더욱이 국내에선 인터섹스의 존재가 가시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구 데이터나 통계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 지금은 활동을 중단했지만, 국내 인터섹스 당사자 모임인 ‘나선’은 당사자들의 소통 창구였다. 이들은 의료계를 상대로 인터섹스로 태어나는 아 이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수술을 강요하지 않을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여성·남성으로만 표기되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에서 성별 코드를 삭제하거나, 제3의 성별을 식별하는 코드를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하도록 촉구한다는 목표로 활동했다.
실제로 해외에선 인터섹스를 제3의 성으로 기재하도록 허용하는 나라들이 있다. 독일은 유럽연합 최초로 올해부터 인터섹스를 법적으로 인정하기로 하고, 성별을 여성과 남성 그리고 다양성Divers이라는 성 중립적 호칭
중 택할 수 있게 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성별을 기록하는 출생신고서, 여권, 운전면허증 등 각종 서류의 성 별 구분 항목에 ‘제3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성별 작성란을 아예 없애라”고 선고했다. 독일 외에도 현재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국가는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호주, 캐나다, 덴 마크, 인도, 몰타, 네팔, 파키스탄, 미국(캘리포니아, 뉴욕) 등이 있다.
독일의 이번 판결 과정을 좇다 보면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알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인터섹스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동안 독일 내에서 끊임없이 인터섹스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그 논의를 바탕으로 2013년부터 출생신고 때 성별을 단정할 수 없는 경우엔 공란으로 남겨놓는 규정을 도입했다. 인터섹스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이미 2006년엔 인종이나 민족적 출신, 성 정체성, 성별, 종교나 세계관, 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하는 ‘일반평등대우법’을 제정했고, 2013년엔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가 아이를 출산해 유럽 최초의 남성 출산자가 되었다. 작년 6월엔 독일 대통령이 나치 정권 아래 탄압받은 동성애 자들을 위한 기념비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며 “실수를 바로잡고 잘못된 일을 사과하는 것은 민주적 정부에는 기본”이란 말을 남겼다. 이렇게 독일처럼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례들이 혐오와 차별의 벽을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우리 도 그 벽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Editor 문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