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주무르다 까매진 손톱 밑을 며칠 방치하면 거기서 푸릇한 싹이 돋아나지 않을까.
언젠가 박완서 선생님의 이 고백에 홀딱 넘어간 적이 있다.
활자 몇 알이 내 안의 후미진 곳마다 들어와서 수상한 발아를 시작했으니, 이제 나는 맨손으로 책을 펼칠 때도
맨손으로 흙을 만질 때만큼이나 다부진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멜랑콜리 해피엔딩>, '박완서 선생을 기억하며' 중
<멜랑콜리 해피엔딩>에 글을 올리게 된 계기와 소감이 궁금하다.
‘박완서’라는 재밌는 파티에 놀러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좋아하는 작가들과 함께하는 축제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뭉쳐 하나의 제본으로 묶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박완서’라는 이름으로 얽힐 수 있는 것 자체가 선생님이 주시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동경하던 박완서 선생님의 초대장을 받게 되어 영광이기도 했다.
평소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이 전작들에서도 드러난다. <해적판을 타고>라는 작품에서는 환경 이슈와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 <밤의 여행자들>에서는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침묵하는 과정에서 폐쇄된 사회 안의 무력한 개인을 보여준다. 모두 《빅이슈》에서 다루는 주제들과 연관이 많은 것 같다.
책을 펴는 행위는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모험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겐 소설을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 둘 다 현실도피의 목적이 크다. 모험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자극받은 여러 가지 것들로 만들어지다 보니 여행임에도 현실과 맞닿은 이슈를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좀비, 귀신 이런 것이 무섭고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서 죽은 물고기, 폐쇄적인 조직에서 미투의 중심에 서게 된 상황, 이런 것들이 내가 만든 세계 안에서 괴물로 등장한다.
박완서 선생님은 소설가이자, 그 시대의 증언자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윤고은도 누군가의 ‘박완서’가 되리라 생각하나?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다. 박완서 작가님은 스펙트럼이 넓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경우엔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진 못할 거 같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포착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싶은 마음은 맞닿아 있다. 앞서 예언자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시대의 풍속도라고 할 만큼의 소설을 쓰고 있진 않다. 하지만 나의 소설은 ‘시대가 이러했기에 이런 극단적인 인물이 나왔다’라고 말해주는 정도의 글로 기능하면 좋겠다. 이상한 방식으로 살아남은 그 시대의 돌연변이 같은 인물들. 예를 들어,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 보이는 느낌의 서울도 있지만, 수상한 짓이나 장난 같은 거로 먹고사는 인물들을 통해서 또 새로운 ‘구석탱이’의 서울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Photographer 신중혁
Assit 오소영
Editor 정지은
*전문은 《빅이슈》 잡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