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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04 컬쳐

각자의 여행서

2019.06.19 | 타협의 여행, 찰나의 후쿠오카

“돈도 시간도 없지만, 여행은 가고 싶다.”

어쩌면 이것은, 바로 이곳,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의 공통된 바람이 아닐까. 국가에서 정해 놓은 공휴일, 사규에 의거한 연차 따위는 현실의 벽 앞에서 그 존재가 맥도 없이 무너지고 지워지기 일쑤다. 퇴사를 전면에 내세운 다양한 콘텐츠가 몇 년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사랑받는 현상은, 퇴사가 선행되지 않으면 마음 편히 여행조차 떠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여행이란 녀석은,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간절한 존재가 되어갈 뿐이다. 그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여행은 결심과 실행의 간극이 좁으면 좁을수록 일단 무조건 좋다. 그 거리가 벌어질수록 인간의 의지는 옅어지고, 결국 다음을 기약하며 주저앉은 채 오랜 시간 어디든 떠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깐.

인생의 첫 번째 여행, 혼자 여행, 무작정 여행을 떠나려고 마음먹은 이들에게 일본, 그것도 굳이 후쿠오카를 추 천하는 것은 그러한 연유에서다. 도쿄나 오사카와 비교해 비행기 티켓값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비행시간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거리 역시 지하철로 약 15분 정도 소요되니, 아침에 출발해 숙소에 짐을 풀고 현지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짧은 일정의 여행에서 이만한 이득은 없다. 공항에서 내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시내에 있는 숙소까지 이동하느라 심신이 지쳐 버리고 말았던 과거의 여행 기억을 소환해보면 이것은 더할 나위 없는 확실한 장점이다.

돈과 시간의 벽을 허물어 내주는 후쿠오카 여행은 하카타역 주변에서 주로 시작된다. 주말을 포함해 2박 3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도 시내 주변을 거닐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고 다양한 쇼핑센터, 널찍한 공원을 통해 만족감을 채울 수도 있다.

‘잇푸도 라멘’, ‘이치란 라멘’처럼 이미 한국에서도 충분히 잘 알려진 라멘 가게의 본점들이 위치하고 있어 특별한 식食투어도 가능하다. 밤이 찾아오면 나카스 강가를 따라 어둠을 밝히는 야 타이屋台(일본식 포장마차)에서 시원한 생맥주에 꼬치구이를 먹으며 생전 처음 만 난 여러 국적의 여행객들과 의미 없는 수다를 주고받고 웃는다. 그렇게 잠시 켜켜이 쌓였던 현실의 두터운 번뇌를 씻어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지만.

후쿠오카의 강점은 다양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카타를 거점으로 2~3시 간 버스나 신칸센으로 이동하면 다양한 공간이 펼쳐진다.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을 비롯해 나가사키, 벳푸, 구 마모토, 기타큐슈 등이 주변에 줄줄이 포진되어 있어 한 번의 여행에 한 장소씩 섭렵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록 저 멀리 실제 유럽까지는 못 가더라도, 17세기 네덜란드를 모티브로 꾸민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를 방문해 설움을 달래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도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통해 끌려온 조선인의 슬픈 흔적들. 영화 <군함도>로 더 잘 알려진 ‘지옥의 섬’ 하시마,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그리고 시인 윤동주가 죽음을 맞이한 후쿠오카 구치소 등이 바로 그러한 곳들이다.

여행은 사치가 아니다. 동화 작가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라고 말했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인의 조건으로 여가SCHOLE를 꼽지 않았던가. 여행은 사방으로 꽉 막힌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든 버텨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뚫어 주는 숨구멍 같은 것이다. 실질적 가성비를 따지고, 실현 가능성을 셈하는 과정을 거쳐 한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는 과정이다.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떠나는 여행이 결국 또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타협의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다시 타협한다.

“그래, 또 한번 잘해보자.”

Editor 박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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