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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0 스페셜

정신건강의학과 장창현 원장 인터뷰

2020.02.07 | 우울증은 감기가 아니다, '독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장창현 원장은 서울의 살림의료복지협동조합, 경기도 구리의 느티나무의료복지협동조합과 원진녹색병원 세 곳을 순회하며 진료한다. 그는 다양한 창구를 통해 정신장애와 질환이 특별한 무언가가 아님을, 정신장애인이 어디에나 있을 수 있음을 말해왔다. 힙합을 좋아하는, 의사 가운을 입지 않는, 세상 많은 사람의 고민을 함께하는 그는 진료실 의자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자세가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장 원장과 함께 인간이 겪는 마음의 어려움, 그것을 극복할 실마리를 찾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 군데 병원을 순회하면서 진료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지. 어떻게 체력과 마음을 안배하는지 궁금하다.
어려운 건 별로 없다. 그냥 출퇴근하는 거고. 여러 군데에서 하다 보니, 지겨운 느낌도 없다. 각 지역의 특성이 느껴지긴 한다. 서울과 경기, 2차 병원과 협동조합 병원의 차이점 같은…. 원진녹색병원은 실을 만드는 '원진레이온' 공장의 산업재해 이후 생긴 병원인데, 산재 피해자와 인근 주민들이 방문한다. 요즘은 좀 피곤하다고 느끼긴 하는데, 자꾸 걸으려고 하고, 운동도 하고, 출퇴근 시 좋아하는 힙합 음악을 듣는다.

지난해 가을 정신장애인들의 축제인 '매드 프라이드 서울' 조직위원회에 참여했다. 광장 사용 허가가 세 군데에서나 나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정신질환자는 강력범죄자'라는 등식이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하더라. 전체 인구 중 강력범죄자가 극히 일부이듯, 정신질환 당사자 안에서도 강력범죄자는 극소수이다. 그들 중에는 먼저 치료가 필요한 이들도 있다. 혐오가 이 상황을 더 좋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매드 프라이드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정신장애인은 어디에나 있고,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어디서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울감 등 마음의 어려움을 전보다 더 드러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생각하는지. 현장에서 느끼기엔 어떤지 궁금하다.
과도기 같다. 매드 프라이드 행사장에서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반면 현장에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참여하는 분들도 계셨다. 사회도 마찬가지 같다. 전보다는 열린 분위기가 있지 않나 싶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이 겪는 마음의 어려움에 대한 고백을 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도 동시에 느낀다.

그러한 마음의 어려움을 사람들이 조금씩 드러낼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 제일 큰 건, 마음의 어려움이 많아진 것 때문 아닐까 싶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여유나 여력이 없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생계를 유지하는 인구가 전보다 늘어났다. OECD 가입국 중 자살률이 1위이지 않나. 노인 빈곤, 청소년들이 겪는 학교 폭력, 청년들의 구직과 생계에 대한 염려 등….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신경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도 변화했다. 전문가 집단의 친화적 접근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가 아니라 '마음의 독감'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글을 쓴 직후 독감을 또 앓았다.(웃음) 이틀 동안 진료를 쉬었다. 우울증을 포함한, 모든 정신과 질환의 진단 기준 중 가장 기본은 '마음 상태로 인해서 원래 할 수 있는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원래 하던 것을 못하는 상태. '마음의 감기'가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차원의 보편성을 설명하려고 시작된 표현임은 알겠다. 그런데 감기는 병원에 안 가도 시간이 지나면 무난하게, 허브티 좀 마시고 쉬면 나을 수 있는 건데….(웃음) 정신질환은 '마음을 달리 먹으면' 낫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진료실에서 뵙는 적잖은 분들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독감을 앓으면 정말 잘 쉬어야 한다. 적절한 약을 통해 우리가 보다 나은 경과를 가질 수 있고, 예방도 할 수 있다. 병의 경과, 일상에 병이 주는 타격, 예방 가능성, 치료상의 주의할 점을 총괄하는 차원에서 이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 그로 인한 안타까운 선택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정말 많은 사람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다. (긴 생각 후)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사는 유명인들은 평가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절망적인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적절한 개입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잠시…)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 가서야 그분들의 마음이 드러나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았더니 조금 편해졌더라.' 같은 사례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관련 기사들을 무분별하게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정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언론이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미디어 속 '정신질환자'의 모습은 정형화돼 있다. 완치가 아닌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을 쌓아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선배 의사인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이 하신 말씀이 있다. 정신질환도 '상태'이고, 누구나 그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 전체 인구의 1% 정도는 조현병을 앓고 있을 수 있다. 성인 네 명 중 한 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다.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정신질환자들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병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다가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한다.

우울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마음 돌보기'의 중요성을 짚어준다면.
제가 최근에 '대화(RECOVERY)'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다. 김한글이라는 래퍼와 가사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곡이다. 한글 씨가 마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내가 2절에서 상담을 해주는 형식이다. 저는 제 부분에서 '자신의 힘든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가치 있다.', '치료의 시작은 그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오고,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에도….(웃음) 정신과 진료 현장에서도 이런 마음 돌아보기의 조력자 역할을 선생님들이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치료 현장의 분위기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정신과 진료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병원 문턱을 밟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치료가 늦어진 케이스가 많이 있는지.
조현병이 생긴 지 몇 년이 흘렀는데, 환자가 형사사건에 휘말린 후에야 병원의 객관적 평가를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겨우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례도 있다. 그런 경우라고 해도 진료를 통한 도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늦었다고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결국 늦은 때는 없는 것 아닌가.
어떻게 보면 그렇다. 재밌는 게, 진료를 예약제로 하는데 살림의원에서는 한 달 정도 대기가 필요하다. 적잖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약하는 때만큼은 힘들지 않은데, 예약 직전의 한 달이 가장 힘들었다고. 도움을 받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마음의 회복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싶다.

자기 자신을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면 어떤 방법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타자가 나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는 상황이 존재할 때 자존감이 떨어지기 쉬운 것 같다. 그 외부 메시지와 선을 긋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 사람이 꼭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 수 있다.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고…. 물론 쉽지 않다. 나를 도울 수 있는, 위로해주는 무언가를 붙잡는 것이 시작일 수 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으면 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약물의 위험성이나 부작용을 이유로 정신과 치료를 폄하하는 움직임도 여전하다. 오해를 바로잡아준다면.
보험 약관에 나와 있지 않은데, 정신과 진료를 받았음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불가하게 하는 사례는 불법이다. 제 생각엔 보험 가입은 지인을 통해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한) 정보를 덜 준 것에 대해 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을 수 있으니. 건조하게, 공식적 루트로 가입하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약물의 위험성이나 부작용은 물론 있다. 그렇지만 그건 모든 약이 그렇다. 그것을 이유로 폄하하는 움직임은 '반정신의학'이라는 이름으로 1960~70년대에도 존재했다. 다만 현명한 의료 소비를 하기 위해서 약을 무조건, 평생 먹어야 하는 것이 맞는지는 함께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정말 잘 소통할 수 있는 치료자, 의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부작용을 100% 설명드릴 순 없더라도 흔한 부작용, 치명적인 부작용에 대해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자살률 1위의, 정신건강이 정말 중요한 한국에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신 의학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정신과 진료를 어렵게 느끼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음은 누구나 힘들 수 있다. 진료를 받을 때 '소통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치료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부담을 낮추고, 그 안에서 현명한 의료 소비를 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마음에 담고, 처음 만나는 전문가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접근하셨으면 좋겠다.


글・사진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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