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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0 인터뷰

뮤지컬 배우 장은아

2020.02.11 | 타오르는 장은아의 초상

불타오르는 여자. 뮤지컬 <레베카> 속 장은아를 본 후 각인된 이미지다.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 캐릭터 중 하나인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은 장은아와 만나자 맨덜리 저택을 집어삼킬 듯 열정적인 인물이 됐다. 옥주현, 신영숙이라는 쟁쟁한 댄버스 장인들과 견줘도 흠잡을 데 없는 '장댄' 장은아는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이름 석 자를 강렬하게 남긴다. 작년, 어느 해보다 바쁜 1년을 보내며 가수 생활을 포함해 도합 14년을 버텨온 진가를 여과 없이 발휘하고 있는 배우, 장은아를 만났다.


연말연초 시상식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얼마 전 열린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엑스칼리버>의 '모르가나' 역으로 관객들이 선택한 카카오캐릭터상을 수상했고 작년 말 스테이즈톡 오디언스 초이스에서도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둘 다 관객의 투표로 결정된 상이라 의미가 깊을 거 같다.
감사하다. '모르가나'로 받은 상은 신설된 상이라 뜻깊었고 특히 관객들이 뽑은 상이라 더 감사하다. 무대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뮤지컬 배우들은 개인의 삶을 많이 포기하게 된다. 힘들지만 잘 보셨다고 답해주신 거 같아서 보답받는 느낌이었다.

시상식 때 <엑스칼리버>의 '모르가나'가 가장 힘들 때 찾아온 역할이라고 했다.
<엑스칼리버> 직전 <광화문 연가>를 할 때 갑자기 뮤지컬을 그만해야 하나 생각이 들면서 방황했다. 하고 싶은 역할 오디션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자신감도 많이 없었다. 뮤지컬이라는 걸 얼마나 해야 사람들이 알아줄까, 스스로 물음이 깊었던 시기였다.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생각해보면 못하고 있지 않았는데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어떤 작품을 해야 나에게 잘 어울리고 관객들이 좋아해줄까 고민했다. 그때 <엑스칼리버>를 만났고 많은 분들이 캐릭터를 사랑해주셔서 막공 때 많이 울컥했다.

<엑스칼리버> 이후 잘 풀린 듯하다. 지난해 1년간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활동했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 <엑스칼리버>, <마리 앙투아네트>, <레베카>에 연이어 출연했다.
1년 동안 4개 작품을 했다. 살짝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하루도 못 쉬었다. 아무 생각도 못 하면서 쉼 없이 달려왔다. 돌이켜 보니까 1년 동안 열심히 잘 해왔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뿌듯하고, 앞으로도 잘 걸어가야겠다는 힘을 받았다.

지금 공연하고 있는 <레베카>는 지난 2016년 성대 이상으로 하차한 김윤아를 대신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때는 갑자기 투입돼서 정신이 없었다. 연습을 제대로 못 하고 무대에 올라갔다. 공연이 올라간 후에 모니터를 보면서 나머지 학습으로 준비했다. 온전한 루트로 올라간 게 아니라 걱정이 컸다. 그럼에도 같이 했던 분들이 격려해주고 인정해주셨고 관객분들도 많이 좋아해주셔서 잊을 수 없다. 또 갑자기 투입되는 이슈로 이름을 많이 알리기도 했다.

댄버스 부인은 소화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캐릭터다. 맨덜리 저택의 죽은 안주인 레베카에 대한 집착으로 물건들을 간직하기도 하고 새 안주인 '나(I)'를 가스라이팅하며 위협한다.
지난번엔 캐릭터에 대한 연구보단 대본에 충실하는 데 급급했다면 이번엔 연습을 제대로 하고 들어갔으니까 깊게 캐릭터를 연구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댄버스를 맡은 캐스트들이 가진 각자의 캐릭터가 있지 않나. 특히 옥주현, 신영숙 언니들은 거의 매 시즌 해와서 내공을 뛰어넘을 수 없지만 새로운 댄버스를 만들어보자 싶었다.
그래서 대본 맨 뒷장부터 시작했다. 댄버스의 마지막 신부터 들여다보고 차곡차곡 반대로 올라갔다. 댄버스는 일반 사람들의 감정이나 멘탈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원작에선 레베카보다 나이가 많은데 내가 다른 언니들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오히려 레베카보다 어리게 잡고 원작과 다르게 해석했다. 아기 때부터 레베카를 따라다녔고 그녀가 완벽한 여성의 표본이라 세뇌돼 있다고 상상했다. 가까이하면서 내게만 비밀 이야기도 해줬다고 전사를 그렸고 때문에 레베카가 인생의 동반자라고 착각해서 그녀가 죽고 그리움이 집착이 되고 광기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매년 팬들과 신년회 겸 팬미팅을 하는데 얼마 전 열린 팬미팅에 새로 오신 팬분들이 "은아 배우님은 처음부터 미친 사람 같아서 너무 좋아요"라고 하시더라.(웃음) 예술에 100% 공감은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데 관객들이 내 의도를 알아주셔서 뿌듯했다.


가창력 하나는 100% 공감할 거 같다. 그런데 한국 뮤지컬은 실력 말고도 인지도와 인기가 예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뮤지컬 전문 배우라서 인지도 면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는 없나.
당연히 있다. 늘 고민이다. 중요한 역할을 맡을 땐 어깨에 중요한 새김이 생긴다. 모든 배우들이 그런 생각으로 임할 거다. TV에 나와서 뭔가로 대박이 나지 않는 이상, 연예인이나 아이돌 가수가 되지 않는 이상, 높은 인지도를 갖긴 어렵다. 경우의 수는 그 정도다. 톱 뮤지컬 배우들도 오랜 세월을 버틴 분들이다. 나는 아직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라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무대 이외의 것들을 하면서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를 알릴 좋은 일이 있을 거고 그 기회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은 무대에 설 때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보고 간다. 특히 대극장은 하루에 1000명씩만 봐도 열흘이면 1만 명이 보는데 그 사람들한테 며칠이라도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배우 장은아가 잘하고 멋진 친구구나' '감동받았다'라는 반응을 각인시키고 싶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후회하지 않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게 무대에 오르는 목표고 다짐이다.
지난 1년 동안 쉼 없이 달렸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줬다. 새로운 팬들도 많이 생겼다. 무대 하나하나를 허투루 하지 말아야지, 매일 같은 무대를 한다고 해도 후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한다. 혹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내려온다. 예술은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장은아가 부르는 <레베카>의 대표 넘버 '레베카'는 무대를 통해 들어도, 방송에서, 시상식에서 들어도 늘 경이롭게 폭발적이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무대에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는 원동력이 뭔가.
간절함이다. 무명 가수로 오래 활동했고 뮤지컬도 가수를 하다가 넘어온 거다. 뮤지컬을 시작할 때 밴드도 함께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3년 반쯤 하다가 해체했다. 노래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무대가 없어서 찾다 보니 뮤지컬이 됐는데 잘 만났다. 처음엔 하면 할수록 발가벗겨진 자신이 보였다. 특히 단점이. 몸이 무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카메라로 잘라줄 수도 없고… 걷고 말하고 노래하고 모든 움직임이 보여서 실력이 들통나기 마련이다. 두려웠고 무서웠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게 됐다. 더 잘하고 싶어졌고, 간절함으로 여기까지 왔다.

뮤지컬 배우는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대사를 전달해야 하니까 발성도 다른데, 이미 2012년 출연한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코리아>에서 발성, 표정, 연기력이 뮤지컬 배우 같았다.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다. 진짜 어릴 때 연기자가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런데 나 같은 외모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옛날엔 무조건 예뻐야 했다. 지금처럼 개성시대가 아니었다. 미술에 재능이 있어서 미술을 쭉 하는데 마음 한구석에 '나는 어디 나가서 노래하고 나서야 하는 사람일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있었다. 용기 내서 노래를 시작했고 뮤지컬은 <보이스코리아>에 같이 나갔던 허규 오빠가 추천해줬다. 오빠가 뮤지컬을 하고 계셔서 내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광화문 연가> 연출 이지나 선생님을 소개해줬다. 이지나 선생님이 내 잠재력을 봐주시고 무대에 세울 수 있겠다고 믿어주셨다. 노래 말고 아무것도 없던 나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줬다.

가수 활동도 오래했다. 러브홀릭스 객원보컬로 영화 <국가대표> OST 'Butterfly'를 불렀고 밴드 W & JAS 활동도 했다.
러브홀릭스는 오디션을 봤다. 객원보컬 체제라 'Butterfly' 하나 하고 흩어졌다. 그러고 소속사 플럭서스에서 연습생처럼 있다가 밴드 W & Whale의 웨일 씨가 나가고 <보이스 코리아>를 본 W밴드 오빠들 제안으로 객원보컬로 들어갔다. 뮤지컬을 병행하면서 3년 반 활동했다. 음악을 오래 해온 게 뮤지컬에 큰 도움이 됐다. 다양한 장르를 해봐서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R&B도, 록도 해봤다. 장르 공부를 하면서 보컬 견문이 넓어졌고 뮤지컬의 다양한 발성을 표현하는 무기가 됐다.


작년 초 <복면가왕>에 출연해서 가왕이 됐을 때 판소리 개인기로 큰 웃음을 줬다. 판소리도 배웠었나.
뮤지컬 <서편제>와 <아리랑> 하면서 판소리 하는 역할을 했다. 재밌는 거 좋아한다.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다.(웃음)

3월 15일이 <레베카> 막공인데 1월 마지막 날부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도 공연한다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마리아는 전에 해봐서 어려움은 없다. 워낙 공연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다. 예전엔 마리아 같은 역할을 많이 했다. 지금은 센 캐릭터를 많이 해서 잘 모르시더라. 덩치는 크지만 여리고 한 많은 캐릭터를 했다.

작년부터 해온 <엑스칼리버>, <마리 앙투아네트>, <레베카>가 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작품이기도 하다. EMK의 넘버 스타일과 잘 맞나.
다스 뮤지컬(독일 뮤지컬)이 잘 맞는 거 같다. 캐릭터도 발성도 그렇고. 저음을 보여줄 수 있는 뮤지컬이 별로 없는데 <레베카>는 둘 다 보여줄 수 있어서 관객들이 좋아해주셨다. <엑스칼리버>는 특이한 음들이 있다. 또 워낙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적으로 흥미롭고 나와 잘 맞는다. 작년엔 부르고 싶은 넘버들을 원 없이 했다.

3월 막공 후엔 어떻게 시간을 보낼 계획인가.
작품을 하려고 했는데 <레베카>는 다른 작품과 같이 하기가 두려워서 고사했다. 여름까지 간간이 <레베카> 지방 공연하면서 다른 활동을 모색해볼 생각이다. 그림 전시회도 조그맣게 했었는데 대학원 이후로 제대로 된 전시회를 못 열어서 하고 싶다. 집에서 끄적이는 정도밖에 못 했다. 또 하나의 재능을 방치하는 거 같아서 아쉽다. 사실 계획이라고 이렇게 말해도 진짜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웃음)

2020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지키고 싶은 약속이 있을까.
다짐은 늘 하지만 잘 안 지켜진다. 그래도 그런 생각은 한다. 작년에 많이 달려서 올해도 달리고 싶단 욕심은 있었는데 내가 여기까지 하고 그만둘 거는 아니지 않나 싶더라. 7년 동안 안 쉬고 해올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은데 한편으론 사람도 많이 잃고 개인적인 삶을 많이 버렸다. 그게 아주 싫진 않다. 무대가 곧 내 삶이니까. 그런데 올해는 활동을 넓히고픈 바람이 있어서 그걸 위한 준비를 하고 싶다. 또 건강하게 무대에 서고 싶다. 작년에 좀 아파서 고쳐내야 할 게 몇 군데 있다. 고쳐서 건강하게 무대에 서고 싶다. 삶은 버티는 거다.(웃음)

생각이 많은 거 같다. 평소 좌우명이나 신조가 궁금하다.
옛날부터 "너 자신을 알라"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나를 알면 상대방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 이해가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 이런 좋은 일도 찾아오는구나, 자신감을 갖되 위치를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불평불만도 줄어든다. 남과 아니라 나와 싸우니까 치졸해지지 않고 나 자신을 발전시키게 된다. 나와 나 자신이 대면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혼자 여행도 가고 자꾸 스스로 묻는다. 정말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싶다.

그렇다면 장은아가 알고 있는 장은아는 어떤 사람일까.
아직도 부족한 사람 같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예술에는 끝이 없다고 하지 않나. 끝까지 가지 않아도, 다 채우지 못해도 무대에서 무언가를 한다. 후회하지 않고 싶다. 늘 열심히 하고 갈고닦자고 생각한다. 갈 길이 멀지만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나는 부족한 만큼 발전하는 사람이다.


양수복
사진 박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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