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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3 스페셜

최원영 간호사 인터뷰

2020.03.24 | 내가 있는 곳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간호사의 노동 현실, 병원 내 의료 시스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몇 안 되는 의료인이 바로 최원영 간호사다. 그는 노동자이자 여성이자 의료인인 간호사의 현실에 대해서 가감 없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 2016년 공공기관 성과급제가 병원 내에서 시행될 때 환자에게 어떤 불이익이 되는지에 대해서 개인 페이스북에 글을 쓴 이후로 여러 기사에 최원영 간호사의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간호사 태움 문화의 피해자인 고 박선욱 간호사 사건 때에도 간호사 노동 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의료계 종사자들 인터뷰에서도 앞에 나서기도 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최원영 간호사는 자신이 하는 말들이 모든 간호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실명을 내놓고 말을 보태는 것이 현실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고 한다. 간호사 인력 확충이 곧 환자의 복지와도 연결되어 있기에 현재의 문제점들을 바꾸고 싶은 것이다. 전문가로서 자기 말에 힘을 더하기 위해 보건 의료 제도를 공부하는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처음에 용기를 내는 것은 두려웠지만, 내가 속한 곳이 바뀌면 다른 곳도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최원영 간호사를 만났다.


코로나19 음압 병동에 자원했다고 들었는데, 언제 이동하시는 건가요.
신청은 했는데, 자원한다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기다리고 있으면 갑자기 연락이 와요. 지금은 언제 가게 될지 모르는 상태이고요.

2015년에도 메르스 병동에 자원했다고.
제가 투석실에서 일할 때였는데, 찾아보니 메르스가 악화되면 투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병원에 투석을 할 줄 아는 간호사가 많지 않거든요. 제가 가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자원했는데, 그때에도 신청은 해놓고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른 채로 기다렸어요. 제가 일하고 있던 투석실은 사람이 빠진 자리에 누굴 데려올 수가 없거든요. 자원했어도 투석실 인력 때문에 연락이 안 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일부터 음압격리실로 출근하세요.”라는 연락을 받고 바로 가게 됐어요.(웃음) 저는 일주일 정도 있었고, 나중에 자원자가 좀 생겨서 투석실로 다시 복귀했어요.

지금은 간호사의 현실이나 병원 내 의료 시스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대표적인 간호사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이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전이었죠. 그 계기가 된 것이 메르스 병동에 자원한 일이라고 하던데요.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내가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설 일이 별로 없잖아요. 어릴 때에는 독립운동가 위인전을 읽으면서 막연히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났어도 이분들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만 했는데, 위험에 제가 나설 수 있는 사람인지 그때 처음으로 확인한 것 같아요. ‘나도 그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해야지.’ 하고 마음만 먹는 거랑 실제로 그 선택을 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메르스는 치사율이 35%이고 당시 의료 쪽에서는 더 급박하게 인식했거든요. 누군가 가야 한다면 투석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가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자원했어요. 아, 내가 사회에 도움을 주는 이타적인 행동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평소에도 개인 SNS에서 솔직하게 간호사의 현실이나 문제가 되는 의료 시스템, 환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일들에 대해 고발성 짙은 글들을 쓰셨지만 이번 코로나19에 관련한 메시지들은 더 직설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포항의료원 관련된 오보(편집자 주-<국민일보>에서 포항의료원의 간호사 16명이 코로나19에 걸리기 싫어 집단으로 사표를 제출하고 무단결근했다고 기사를 냈으나 오보로 밝혀졌다.)를 지적하는 글에서는 분노가 느껴졌습니다.(웃음)
화난 게 느껴졌나요.(웃음) 그건 정말 화가 났어요. 저희 간호사들 단톡방에서도 다 같이 분노했어요. 이후에 제가 소속된 ‘행동하는 간호사회’에서 보도자료도 내고 다른 매체에서도 반박 기사가 많이 나오긴 했는데, 해당 언론에서 정정 보도가 나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어요. 그 기사는 해당 병원에 인터뷰도 전혀 하지 않고 쓴 기사 같았어요. 그게 원래 업무 강도가 높아서 이 사태가 터지기 전에 사표를 제출했던 간호사들이 상황 때문에 퇴직을 미루고 기다려준 거였거든요. 다른 기사에서 인터뷰한 병원 측 인터뷰이들은 ‘간호사들에게 미안하다’ 같은 내용이 있는데 사실 확인조차 안 하고 기사를 낸 것 같았어요. 임신 순번제라고 해서 예전에는 간호사들이 육아휴직을 쓰려면 기다려야 하고 그런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거든요. 그런데 사직 순번제는 있어요.(웃음) 그냥 저희끼리 하는 말이긴 하지만, 누가 그만둔다고 말하면 병원에서는 ‘간호사 안 구해진다. 조금만 더 해달라’고 붙잡아요. 그러면 그만둘 직장이라고 해도 내가 빠지고 대체 인력이 안 들어오면 어느 지경인지 뻔히 아니까 퇴직을 못 하고 기다려주는 거예요. 동료들이 힘드니까. 그분들도 병동 상황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사직 시기보다 더 기다려서 일한 거였는데 그런 식으로 직업윤리까지 운운하며 오보가 나가니 너무 화가 났어요.

이전 정부 때인 2016년, 정부가 공공기관 성과급제 시행 권고 지침을 내리자, 병원에서 성과급제를 시행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를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간호사의 현실에 대해 실명으로 말하는 활동을 시작하셨죠.
그것도 너무 답답해서 글을 썼는데 어떤 분이 퍼가시고 너무 많이 읽혀서 이렇게 돼버린 것 같아요.(웃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병원에서 성과급제를 한다고 해서 다들 열심히 환자를 돌보는 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오히려 협력이 안 되고 환자에게도 피해가 가거든요. 병원에서 성과를 공정하게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수익으로 판가름한다는 건데, 돈 나오는 구멍이 결국은 환자 주머니잖아요. 그럼 과잉 진료를 하게 되고, 애꿎은 환자에게 피해가 가고…. 우리가 공정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경쟁만 하고, 그 과정이 환자에게라도 좋으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무작정 공공기관 성과급제를 한다고 하니 너무 답답한 거죠. 병원이 수익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가요.

그런 글로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나요.
서울대병원은 노조가 강한 편이라 크게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어요. 한 사람이 옳은 소리를 하고 나머지 아홉 명이 틀린 얘기를 하면 맞는 말을 하는 한 사람이 괴짜가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저는 주변에서 같이 목소리 높여주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괜찮은 것 같아요.

코로나19 관련해서 쓰신 글 중에 특히 공감이 갔던 것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만 문제는 그 조심이 공짜가 아니며 그를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는 것. 의료 자원은 한정이 돼 있고 한쪽에 과잉 투입되면 다른 쪽은 반드시 부족해진다. (…) 이미 한국의 의료 현실은 공공병원도, 간호사도, 의사도 부족하다. 의료 자원이 부족한 지금의 현실을 잘 고려해서 환자를 진료하거나 의료 기관 폐쇄 여부를 결정할 때, 적절한 분배를 신중하게 고민해 현명한 선택을 내려주면 좋겠다.”라는 글이었습니다. 모두 확진자 뉴스에만 매달려 있을 때 코로나19 외의 다른 병에 걸린 환자들로 시선을 돌리고 전문가로서 발언하는 것에 책임감도 느껴집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정말 시급한 문제예요. 응급실에 실제로 어떤 환자들이 오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전남대 조용수 교수가 쓴 칼럼에 있는 내용이기도 해요. 어떤 환자가 흉통을 호소하면서 병원에 왔는데, 폐렴 증상이 의심되었고 격리 병상이 있어야 그 환자를 받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격리 병실이 다 차서 진료를 못 보고 밖에서 대기했다고 해요. 그런데 흉통은 병원에서도 중요하게 보는 증상 중 하나인데, 알고 보니 그 환자가 심근경색이었던 거죠. 코로나로 죽을 확률보다 심근경색으로 죽을 확률이 더 높거든요. 물론 코로나를 단순 감기라고 할 순 없지만 과학적으로 더 중증인 게 입증된 질환의 환자가 왔을 때 의료 시설이 부족해 더 위태로울 수 있는 거죠. 코로나19가 주변의 의료 자원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생각의 전환도 필요하다 싶어요. 지금은 확진자가 소수가 아닌데 계속 이렇게 운영하는 게 맞는지, 그 때문에 급성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병원에 못 들어와서 어려움을 겪고 중환자를 병원에서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어요.

대구 경북대병원 간호사에게 전달 받은 사진(현장 간호사들에게 지급된 열악한 식사 사진)을 SNS에 올리셨습니다. 그렇게 트위터에 올린 글이나 사진이 바로 뉴스화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간호사님 개인의 SNS가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내는 창구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진짜 비범하고 뛰어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평범하지 않은 구석을 찾자면 왠지 익명 인터뷰일 것 같은 인터뷰를 실명으로 한다는 것? 그런데 저는 이미 그렇게 공개해버린 사람이라 되돌릴 수 없다고 해야 하나. (웃음) 실명일 때 기사의 신뢰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서 필요할 때 저를 드러내고, 현직 간호사로서 인터뷰를 하는 것뿐인데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눈에 띈 거죠. 저의 실재보다 대외적으로 부풀려진 것 같아서 부담스럽기도 해요.

2017년 간호사 첫 월급이 36만 원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문제 제기한 것도 간호사님이었어요. 실제로 그 이후, 병원에서 간호사들의 미지급 임금을 지급했다고 들었습니다. 관성적인 문제를 외부에 알리고 변화를 가져온 셈이죠.
저 혼자 한 일은 아니에요. 당시 제가 서울대병원 노조 전임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병원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려면 거기 참여할 간호사를 모아야 했어요. 처음엔 다들 두려워해서 다섯 명만 모였는데, 설득하러 다니면서 “이건 우리가 무조건 이기는 소송이다. 숫자가 많아질수록 소송까지 가지도 않는데, 우리가 많이 뭉쳐야 특정되지 않아서 다들 안전하다.”라고 설득했어요. 당시 병원에선 그냥 소송하라고 했어요. 미지급 임금을 주어야 할 대상이 1000명이 넘는데, 그 사람들에게 전부 100만 원씩만 지급해도 몇 십억 원대잖아요. 그런데 소송을 걸면 소송한 사람에게만 주면 되니까. ‘그래, 소송까지 가보자.’라고 마음먹고 우리도 기관장에게 내용증명을 300장 이상 보냈어요. 그러니까 결국 병원이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그 과정이 전부 협의를 거치는 거라 힘들었어요. 병원과의 관계도 있는데 노조가 무작정 싸울 순 없거든요. 나중에 제가 언론 보도를 정리해보니까 지방의 작은 언론사까지 합해 40건 넘게 뉴스가 나왔더라고요. 결국 그 사건이 노동조합에 대한 간호사들의 인식 전환에도 영향을 줬어요. 원래 노조의 간호사 가입률이 10% 정도였는데 이후 두 배 이상 늘었어요. ‘노조가 움직이니까 우리가 돈을 돌려받는구나!’ 하는 인식이 생겼어요. 그런 일들이 쌓여서 나중에는 ‘어? 하니까 되네?’ 이런 생각들을 한 것 같아요.

연재한 칼럼 가운데 ‘제약회사 직원은 왜 우리 회식비를 낼까?’, ‘병원은 합법적인 범죄 조직인가?’ 등에서 병원 내 의료법 위반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일하는 조직에 대해 글로 쓰는 것이 내부고발이 될 수도 있는데 부담이 되진 않나요.
제가 계속 한 병원에서만 일을 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죠.(웃음) 그런데 내 얘기가 틀렸거나 사실이 아니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의료인들 사이에서 있는 공공연한 비밀, 모두 알지만 아무도 안 하는 이야기를 누군가 해야 바뀐다고 생각하거든요. 내부 이야기가 나오기 힘든 이유가 ‘회사가 싫어 할까 봐’라서가 아니고 이게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의료 인력 부족으로 인해 환자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데에는 모두가 공범자이고 저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업무량이 제가 통제할 수 없이 많을 때에는 환자에게 해줘야 할 것을 포기할 때가 있거든요. 더 위급한 환자를 챙기느라 다른 환자를 소홀히 했다고 했을 때 방치당한 환자는요? 여러 환자를 볼 때 후순위로 밀리는 환자도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의료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간호사 인력 확충인가요.
중환자를 예로 들면 선진국은 간호사 한 명이 중환자 한 명을 봐요. 그런데 한국은 인력 상황이 비교적 좋은 병원도 간호사 한 명이 중환자 두세 명을 담당해요. 많게는 혼자서 다섯 명까지 본다는 병원도 있어요. 일이 두 배, 세 배인 셈이죠. 중환자는 기계의 도움으로 연명치료를 하는 상태여서 알람이 울렸는데 적절한 시기에 해결해주지 않으면 바로 죽을 수 있는 환경에 있어요. 내가 누구 목숨을 좌지우지한다, 그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건데 조금의 실수로도 그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두려운 일이거든요. 특히 신입 간호사들은 압박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간호사가 환자를 담당하는 건 갓난아기 세 명을 돌보는 것과 같아요. 그것도 그냥 아기가 아니라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에 기계가 연결된 환자를요. 불가능한데 많은 부분을 포기하면서 환자를 보는 상황인 거죠, 몇 가지를 포기하고…. 그런데 보는 환자 수가 늘어날수록 포기해야 하는 것도 늘어나요. 사람의 손은 두 개뿐이고 물리적인 능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포기하는 것이 환자의 프라이버시’라거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도 관련된 일’이라고 쓰기도 하셨어요.
그것도 일이 많으니까 포기하는 부분인데, 기계 모니터상에 상태가 정상이면 나머지 것은 다 후순위로 밀리는 거예요. 프라이버시나 개인의 위생도 일대일 간호면 해줄 수 있는 일을 인력이 부족하니까 해주기 어려운 거죠. 처치할 때마다 커튼을 치고 환자의 옷을 여며주고 그런 것들도 사람이 지키고 싶은 프라이버시인데, ‘목숨이 위중하고 바쁜데 그런 걸 어떻게 일일이 신경 써.’의 상태가 되는 거예요. 환자를 세심하게 안 챙기고 싶은 간호사는 없어요. 예를 들어 간호사가 환자 여러 명을 돌보느라 다른 환자에게 가 있는 사이 이쪽 환자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사람들은 자기가 중환자실에 오면 이런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잖아요. 저는 ‘내가 중환자가 됐을 때 이런 환경에서 치료받고 싶은’ 환경으로 병원을 바꾸고 싶어요. 간호사의 노동 환경이 결국 환자의 복지와도 연결되는 거니까…. 제가 간호사여서 간호사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있지만 이게 보편적으로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안 아플 자신 있다.’ ‘나는 안 죽을 자신 있다.’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죽고 대부분은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데, 죽음이 스위치 누르듯이 똑딱 오지는 않거든요. 저는 병원에서 10년 넘게 일했지만 죽음의 순간에 인간적 존엄을 지키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경우는 못 본 것 같아요. 많은 병원에서 그런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병원 문만 나서면 한 사람의 죽음이 특별한 일이지만, 병원 안에서는 너무 무감각해지거든요. 그만한 대접을 못 받는다고 해야 하나. 인간이 죽음을 몇 시간 앞두고 있을 때 마지막을 잘 정리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에요.

간호사 태움 문화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궁지로 몰아간다.’라는 의미로 태움이라고 불립니다. 직장 내 괴롭힘인 태움 역시 악독한 개인이 후배를 괴롭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게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해왔습니다.
맞아요. 적은 인력에 일은 많고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곤두서서 교육까지 해야 하니까, 그렇게 만드는 시스템이 문제예요. 애초에 그렇게 개인을 몰아치는 환경이 아니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업무 압박을 받으면서 신규도 가르치면서 내 환자도 돌보면서 신규가 담당하는 환자까지 봐줘야 하는 그런 상황인데 압박이 올 수밖에 없는 거죠. 가해자를 이해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자는 거예요. 더구나 환자 목숨이 걸린 일이니 압박과 부담이 큰 상황에서 예민하게 되는 거죠. 노조에 있을 때 마음이 아팠던 사례가 있어요. 진술서를 보면 가해자도 번아웃이 온 상황 같았어요. 그런데 피해자에게 ‘가해자도 힘들었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제가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피해자는 마음의 문을 닫으니까요. 가해자도 자살 충동을 얘기하며 병가에 들어갔다가 사직했어요. 나중에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가해자 이름을 들은 다른 선생님이 “그 선생님 되게 좋은 분인데….”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 내가 뭐라고 그 사람의 인생에 끼어들어서 준비되지 않은 사직을 하게 한걸까 싶었어요. 그런 모든 일이 힘들어요.

작년에 휴직하셨고, 올해 복직하셨죠. 휴직할 때 “누군가가 죽은 자리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그 자리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단지 출근해서 주어진 일을 한 것뿐인데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런 환경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또’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글을 썼어요. 그런 일련의 일을 겪은 후였나요.
노조 일을 하면서 마음이 힘든 것도 있고, 2018년 박선욱 간호사 일(편집자 주-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신규 간호사 고 박선욱 씨가 직장 내 괴롭힘과 과도한 노동 강도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건)이 제게 영향이 컸어요. 신규 간호사들이 제게 상담을 요청하며 힘들다고 죽고 싶다고 하는데, 저도 불안하고 힘들었어요. 내가 ‘무엇을 해줘서, 혹은 안 해줘서’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면 어쩌나 싶어서. 내가… 혹은 나와 상담한 신규 간호사가 박선욱 간호사처럼 되면 어떻게 하나?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신규 간호사의 얘기를 몇 시간 듣고 나면 너무 불안한 거예요.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몰아붙였어요. 그런 여러 가지가 저를 힘들게 해서 휴직하게 됐어요.

간호사는 젊은 여성이 대다수인 직군이기도 합니다. 젊은 여자가 하는 일이 비전문적이라는 사회적 편견이나 간호사만 ‘아가씨’로 불리는 등의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아침 뉴스에 코로나 병동과 연결을 했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이 “지금 의사는 인력이 충원됐는데 간호사가 부족하다.”라고 리포트하자 진행자가 “의료진은 충분한데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거죠?”라고 했대요. 그런데 간호사가 의료진이거든요.(웃음) 간호사를 의사가 오더 낸 대로 시행하는 사람쯤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진짜 현장과의 괴리를 느껴요. 간호사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고, 젊은 여성이 주를 이루는 직종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전문직이라는 인식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고, 전문성이 있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요.
의료 일선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환자와 직접 마주치는 사람이니까 기계 조작법도 알아야 하고, 약물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해요. 의사의 오더를 이해하고 환자의 회복 흐름과 현 상태를 다 알아야 의사 오더가 잘못 나왔을 때 지적할 수 있거든요. 의사가 부족해서 오더를 잘못 낼 수 있다는 게 아니라, 환자의 상태 변화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간호사이기 때문이에요. 간호사가 현재 상태를 계속 기록하고 의사가 업데이트 정보로 오더를 내는 건데, 혹시 이전 정보만으로 오더를 내면 간호사가 그걸 잡아낼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내 환자가 출혈 의심 증상이 있는데 최신 기록을 못 본 상태에서 약 처방을 했다면 간호사가 “지금 출혈이 있어서 이 처방은 변경해야 할 것 같다.”라고 의견도 내야 해요. 의사가 간호사보다 많은 수의 환자를 보니까 한 명 한 명의 상태를 다 모를 수 있어요. 간호사가 의사에게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환자의 결과가 달라져요. 의료인들끼리는 에스바(SBAR; Situation·Background·Assessment·Recommendation)로 의사소통하는 게 원칙이에요. 간호사가 ‘혈압이 떨어졌어요.’라고만 말하는 것과 ‘이 환자가 기저질환이 있는데 언제 수술을 했고, 지금 심박수가 빨라지면서 혈압이 떨어졌다.’라고 의사에게 알려주는 게 어떻게 같겠어요. 환자의 지병과 현재 상태까지 포함해서 다각도로 판단할 수 있게 하죠. 간호사들도 의료 지식을 가지고 의료 용어로 소통하는 거예요. 공부하면서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의료 전문가라고 생각을 안 하는 게 이상한 것 같아요. 그런 만큼 신규 간호사가 투입됐을 때 겨우 두 달 교육의 기간만 거치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캐나다는 신규 간호사가 중환자 교육을 1년 동안 받는데, 한국은 두 달 받거든요. 그냥 위태로운 상태로 정신 차리고 스스로 잘하라고 계속 다그치면서 하는 거죠.

간호사 근속연수가 5년밖에 안 되는 이유도 이런 힘든 구조가 바뀔 거란 희망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네요.
간호사 10년 차라고 해봤자 30대 중반인데, 저희 병동에도 10년 차가 별로 없어요. 힘들어서 오래 못하거든요. 우리 병동에서도 제가 위에서 세 번째 연차예요. 저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정년까지 일하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일하는 서울대병원은 그래도 바뀔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곳이에요. 또한 서울대병원 안에서 보편적인 문제들이 바뀌면 촉매제가 돼서 다른 병원에도 좋은 영향을 주거든요. 나는 한 명에 불과하고 작은 사람인데 작은 영향력으로 뭘 바꿀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첫 월급 사태’ 이후 전국의 많은 병원이 바뀌는 걸 봤어요. 저희가 집회할 때 다른 병원 간호사님이 자기도 월급을 돌려받았다며 케이크를 사들고 오시기도 했어요. 이곳에서 김복동 할머니처럼 저도 꾸준히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하나씩 고쳐나가면 그런 노력이 쌓이고 쌓여서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가져요. 제가 우공이산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산을 옮긴다는 게 아득해 보이지만 한 삽 한 삽 옮기다 보면 언젠가는 옮겨지잖아요. 저는 우리 대에서 옮길 수 있는 만큼의 흙을 옮기고, 그다음 제 후배 대가 옮기고…. 그러다 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요. 그렇게 됐으면 해서, 계속 현장에서 이 일을 해나가는 것 같아요.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가 의료업계에는 적용이 안 되는 거네요. 의사들은 전공의법상 88시간 근무제라고 들었습니다. 중환자실이나 응급병동에서는 주 88시간조차 지켜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특례 업종이라고 해서 운수업, 보건업은 노사 간 합의를 하면 52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돼요. 너무 장시간 근무를 해서 제한을 준 게 88시간인데, 그나마도 추가 인력을 뽑지 않아서 지켜지기 어려워요. 그만큼 사람들이 더 일을 해야 하는 건데…. 88시간 됐다고 보던 환자를 내팽개치고 갈 순 없잖아요. 병원 측에선 ‘우린 분명 퇴근하라고 했다.’라고 말하는데 의사나 간호사는 그냥 갈 수 없으니까 남아서 일을 하는 거죠. 의료인들은 생명이 달린 일을 하는 거잖아요. CCTV를 달지 않아도 노동자들이 셀프 감시가 되는 업종이에요. 사람이 죽게 내버려두는 게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우리가 소홀히 하고 일을 내팽개쳤을 때 실수로 사람이 죽을 수 있으니까 알아서 더 일을 하는 건데, 노동자라고 해도 ‘인력 확충'이 안 되면 그 시간제가 안 지켜지죠.

간호사님의 꿈은 뭔가요.
저는 한국 의료 시스템을 노동자와 환자가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도 좋겠구나!’ 생각했거든요. 제가 속해 있는 곳의 이름이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인데, 딱 그 말이 제 목표인 것 같아요.


김송희
사진 백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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