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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0 스페셜

거래한다, 고로 존재한다2

2021.05.13

※ 이번 기사는 <거래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이어집니다.

19:30, ‘하객 룩’을 찾는 방법


마사지 건을 3만 원에 샀다. ‘에눌’(에누리)은 없었지만, 뜻밖의 덤을 얻었다. 마스크팩 세 장과 마카롱 두 개. 뭉친 어깨를 풀며 또 당근마켓을 둘러봤다. 팬데믹 상황에도 사람들은 인생의 전환점과 황금기를 맞이한다. 일주일 뒤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 언제나 그렇듯 옷장엔 입을 옷이 없다. 흰색이 아니되, 더운 날씨에 입기 좋은 두껍지 않은 원피스를 검색했다. 한때 빈티지 의류 숍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볼 수 없는 소재와 패턴에 싼 값이 매력적이었지만, 수십 년 전 생산된 이 옷들은 입어보지 않으면 당최 핏이 어떤지 알 수 없다. 당근마켓에선 중고 기성복도 싼값에 판매된다. 예상 가능한, 실패 위험이 적은 옷이라는 의미다. 정가로 사려면 백 번은 망설였을 ‘마시모두띠’의 깔끔한 원피스를 찾아냈다. 매너 있는 인사를 건네며 구매 의사를 밝혔다.

21:00, 이런 것도 판다고?


마사지 건 구매 후기를 쓴 후에도 나의 당근 여행은 멈출 줄 몰랐다. 1960년대에 생산됐다는 ‘후지’사의 중형 필름 카메라를 발견했다. 사진이 찍히긴 할까 의심스러웠지만 판매자의 글 마지막 줄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소니’ 워크맨이나 ‘백산전자’ 카세트는 골동품으로 분류됐다. 빈티지나 레트로 등의 키워드로 검색했다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온 지 33년이 됐다는 ‘금성’ 전자레인지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된다고 한다. 빈티지 컵이라는 이름으로 개당 2만 원에 거래되는 유리잔도 눈에 띄었다. 그다지 큰 잔도 아닌데… 선뜻 구매하기는 망설여졌다. 일단 하트를 눌러두고 가격 인하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귀하게 모셔졌을 자개 문짝 한 조를 1만 5천 원에 파는 글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체 어디에 달려 있던 문짝일까. 직거래를 하러 가면 그 문짝에 얽힌 스펙터클한 사연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게 팔리긴 할까?’ 의문과 실소도 잠시. 그런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23:00, 내일은 내일의 ‘신상’이 있다


당근마켓에서 물건이나 동네생활 탭을 구경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저녁에 산 마사지 건을 파는 사람이, 예상 밖의 물건을 사고팔기도 하니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모유 유축기가 중고거래 금지 품목이라는 사실을 동네생활 탭에서 처음 알았다. 의약품을 거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잠깐 사용하는 유축기를 지인에게 빌려주거나 어쩔 수 없이 집 한구석에 보관한다고 했다. 이 외에도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의 위치, OO동엔 벌써 모기가 날아다닌다는 소식, 심지어 가수 모 씨가 우리 동네 떡볶이 집을 즐겨 찾는다는 재미난 정보까지 알게 되곤 한다.
당근을 하며 초조해지는 순간이 있다. 거래자가 남긴 후기, 그리고 나의 ‘매너온도’를 확인하는 때다. 내 첫 매너온도는 36.5℃에서 출발해, 이제는 45.1℃가 됐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이 온도는 사용자에게 받은 칭찬이나 후기, 비매너 평가를 종합해 산정한다. 거래자 37명 중 37명이 만족. 앱 이용으로 자존감이 상승하는, 돈을 쓰면서 자괴감만 남지 않는 경험을 하는건 신기한 일이다. 동네 사람이라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 놓치기 싫은 ‘n차 신상’까지. 내게 남은 건 새로 산 물건만이 아니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설렘 또한 크다.


글.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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