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254 에세이

내가 살고 싶은 그 집

2021.07.13 | 내 한 몸 뉠, 그 집을 찾아서

나는 서른 살에 서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스물여섯 살 첫 독립 후 약, 4년간의 원룸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서울 도심 광화문에서 불과 3㎞ 정도 떨어져 있고, 인왕산 뷰와 지하철역이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부족할 것 없는 주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아파트가 내 소유는 아니라는 점인데, 그 말인즉 빌려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소 낯선 이 주거 형태는 기업형 임대 아파트인 ‘리츠형 행복주택’이라 불린다.

[출처: Unsplash]

대한민국에서도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려 해도 겪어야 할 단계가 많다.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처럼 생활하려면 소속되어 있는 직장 혹은 학교 아니면 인맥이 있어야 하며, 외적으로 패션이나 유행에서도 나름대로 뒤처져선 안 된다. 각종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사회관계도 신경 써야 하며, 정기적인 문화생활이나 운동, 취미 등 각종 모임도 꾸준히 참석해야 한다.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쳇바퀴 돌듯 살다 보면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할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이 종종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것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 집, 집… 어디 사세요?

행복주택은 청년, 신혼부부 등의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공급하는 분양전환되지 않는 공공임대 주택이다. 그중에서도 리츠형은 래OO, 자O, 아이OO 같은 민간 건설 아파트 안의 임대주택을 뜻하는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같은 공공 건설 아파트보다 시설이나 인프라가 좋다는 장점과 동시에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리츠형 행복주택은 ‘비싼 행복주택’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임대되기에 조건을 비교해보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나도 조금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한 뒤 당첨되어 2년째 살고 있는 중이다.

이 집은 약 1억 원의 보증금과 월 약 20만 원의 임대료가 있다. 분양가 대비 두 배 이상 폭등한 이 아파트의 현재 매매가를 고려하면 그 정도 수준의 임대료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증금 역시 대부분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빌린 것이고, 첫 독립을 월세로 시작해 전세로 옮겨본 이들은 알겠지만 결국 집 구하기는 은행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렇게 어른이 된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 1인 가구로서 살면서 느낀 장점은 이러했다(굳이 단점은 나열하지 않겠다). 일단 주차, 근린생활시설 등 쾌적한 주거 환경과 관리사무소의 존재로 시설 관리의 용이함 이외에도 SH와 계약하기에 이 집에 사는 동안 집주인과 불필요한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다는 점까지. 이전 원룸 살이에 비춰봤을 때 확실히 행복주택이 내 정신 건강과 통장 관리에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출처: Unsplash]

이번 달에도 월급이 통장에 스치운다

주로 문화예술계에서 비정규직 혹은 프리랜서로 경제활동을 하는 소득을 고려했을 때, 먹고, 마시고, 놀고, 쇼핑하고, 가끔 여행도 가고, 아주 약간 저축을 하는 데 90%를 쓰고 나머지 약 10% 정도를 고정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이는 행복주택에 살고 있는 덕분에 또래 평균치에 비해 적은 축에 속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2019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20세에서 34세 수도권에 거주하는 청년 중 월 소득에서 임차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다. 또한 전체 청년 세대 중 임차 가구는 약 77%로, 그중 월세가 약 65% 전세가 35%라고 한다. 최근 1~2년간 언론에서 이야기했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해서 집 사기는커녕 대부분의 청년들은 전월세를 전전하며 임대료 부담과 주거 불안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나아가 행복주택에 사는 동안 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실용적 인간이 됐다. 그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는데, 청년 1인 가구에게 허락되는 최대 면적인 39㎡ 이하에 침대, 소파, 테이블 등을 알차게 넣으려면 1센티미터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는 치밀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대 동안 다듬은 취향과 소비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더 이상 쓸데없는 물건을 사는 일이 줄었다. 덕분에 과거보다 나은 생활을 영유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나의 이런 생각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최선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생 계획과 경제활동에 맞는 삶을 잘 꾸려간다면 고소득 직장이나, 사회적 체면을 위해 부자연스러운 삶을 억지로 살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터무니없이 비싸고, 더 이상 노동력으로만 내 집을 구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된 삶을 감수해야만 하는 청년들의 부담이 하루빨리 누그러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출처: Unsplash]

‘좋은 집’에 대한 고정관념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걸맞은 집을 찾는다면, 어느새 우리 마음속 ‘좋은 집’에 대한 고정관념은 차츰 사라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꼭 84㎡의 천박한 영어 이름의 브랜드 아파트를 투자(투기) 목적이 아니고서야 영끌 해서 살 필요가 있을까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과소비보다는 단순한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 사회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이 행복한 일에 돈과 시간을 쓰고 싶은 사람, 과시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까지. 도시 1인 가구의 삶에 적합한 행복주택이라면 대도시의 다양한 삶의 형태만큼이나 대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환경오염이 심각해진 요즘엔 사치스러운 집이나 무조건 새것 혹은 최신 제품을 소유하지 않는 삶이 더욱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에게 맞는 집을 찾아 나서 스스로 결정하고 나아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행복에 가까운지, 무엇이 가장 나다운지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자세는 미래의 개성 있는 ‘나만의 집’을 완성하는 데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의 집은 당신을 닮았나요?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다. 오히려 사람들의 편견이 방해받지 않으며 그 만족감을 잘 유지하면서 살아가고자 노력 중이다. 행복은 사고 싶은 물건을 질렀을 때의 일시적인 순간의 쾌감이 아니라, 그 물건을 잘 사용하고 관리해야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반려동물, 들으면 기분이 늘 좋아지는 음악, 자주 쓸수록 빛을 발하는 물건처럼 집도 마찬가지로 꾸준한 만족감을 주어야 좋은 집인 것처럼 말이다. 종종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내가 정확히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현재의 집을 떠올린다. 그런 내 집이 어딘가 나를 닮았다는 기분이 들 때 비로소 안심이 된다.


글/ 정규환


1 2 3 4 5 6 

다른 매거진

No.320

2024.04.15 발매


데이브레이크

No.319

2024.05.01 발매


홍이삭

No.317

2024.03.01 발매


위라클 박위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