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껏 소리 내어 웃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길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세상에 웃을 일 없네….’ 싶은 쓸쓸한 기분까지 든다. 집에만 있어도 이런 침울한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꿔놓을 만한 만화책이 있다. 바로 일본 작가 와야마 야마의 <빠졌어 너에게>(문학동네, 김진희 옮김, 전 1권)과 <여학교의 별>(문학동네, 현승희 옮김, 국내 정식 발간 1권)이다.
<빠졌어, 너에게>는 일본에서 2019년 동인지 단편으로 시작해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동명의 드라마가 소개되며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붙어 있는 남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8편의 단편을 수록한 <빠졌어, 너에게>는 작품 내 남학생들의 관계 때문에 BL(보이즈 러브) 계열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흔히 학원 코미디물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집에는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이 취미인 하야시를 중심으로 하는 단편 네 편과 중학교 때 눈에 많이 띄는 미소년어서 곤란을 겪은 탓에 고등학교 때는 두꺼운 안경과 센스 없는 교복 스타일링으로 변장하고 다니는 니카이도를 중심으로 하는 단편 네 편이 수록되었다. 깔끔한 선과 독특한 표정의 인물들이 중심인 <빠졌어, 너에게>는 제목 그대로 빠져드는 유머가 특색이다. 학교 안 계단의 수를 모두 세고 다니거나 글자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는 하야시와 체육대회 이후로 하야시를 약간 귀엽다고 생각하게 된 동급생 에마, 하야시의 트위터 친구 ‘덩이줄기 삼 형제’의 메구미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에는 괴상하게 유유자적한 분위기가 있다.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지나쳐 동급생들에게 ‘저주 인간’ 취급을 받는 니카이도와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메다카의 이야기에는 설렘과 아이러니가 잔잔히 흐른다.
<빠졌어, 너에게>가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작품이라면, <여학교의 별>은 보는 내내 박장대소가 그치지 않는 만화다. <빠졌어, 너에게>가 남학교를 배경으로 한 만큼 이번에는 여학생이 잔뜩 나오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 작품답게 <여학교의 별>은 주인공 호시 선생님을 둘러싸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여학생들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흔히 여학교를 배경으로 남자 교사가 주인공일 때 상상할 수 있는 서사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호시 선생님은 학생을 대할 때도 지나칠 정도로 정중한 교사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가령,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호시 선생님은 학생들이 매일 제출하는 학급일지의 비고란에서 그림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한참 들여다본 끝에 이것이 일종의 끝말잇기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느 날 비고란에서 음침한 느낌의 남자 얼굴을 발견한 호시 선생님, 국어 교사답게 대체 이 그림이 뜻하는 단어가 무엇일지 추측하려 하지만 영 오리무중이다. 전날의 마지막 글자는 스마트폰의 호(일본어로 스마트폰은 ‘스마호’이다), 다음 날의 글자는 오징어의 이(일본어로 오징어가 ‘이카’다)였다. 대체 이 남자 그림이 뜻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싫은 사람이 없어 스트레스도 없는
와야마 야마 작품 속 유머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할 만한 의외성이 있다. 스토리는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개연성을 지닌 동시에, 무척이나 느긋한 흐름으로 진행된다. 여기에는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따뜻한 마음은 있지만 강렬한 연정도 없고, 독자에게 스트레스를 안기는 악당도 없다. <여학교의 별>에서 별은 호시 선생님을 의미하지만(‘호시’는 일본어로 별을 뜻한다), 호시 선생님은 매일 차이니스칼라의 셔츠를 입는 평범한 교사이고 학생들에게 연모의 대상도 아니다. 호시 선생님과 콤비를 이루는 고바야시 선생님도 여학교의 흔한 교사 1일 뿐이다. 그럼에도 모든 인물에 개별성이 넘친다. 작가 본인은 잡지 <토키온(Tokion)>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에 흐르는 ‘느긋한 분위기’는 자신이 오키나와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모두 사랑할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린다고도 했다. 요즘 다른 만화에서 흔히 보는 인물은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주인공을 부각하기 위해 악당이 등장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참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와야마 야마가 그리는 만화의 주요 인물 중에는 완전히 싫은 사람이 없고, 그래서 스트레스도 없다. 온전히 평온한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평화만이 흐른다.
디테일을 그려내는 방식에는 감탄이 나오는 면모도 있다. <빠졌어, 너에게>는 트윗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표현돼 있고, 하야시 집에서 운영하는 중화요리점 메뉴판도 지극히 사실적이다. 작가가 아날로그로 그린다는 <여학교의 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 하나는 호시 선생님과 고바야시 선생님이 반 학생 마쓰오카가 그린 만화를 봐주는 장면이다. ‘영원의 가오루’라는 제목이 붙은 이 액자식 만화는 스토리만으로도 어이없는데 작화 또한 습작답게 서투르다는 점까지 완벽하다. 습작 느낌을 내기 위해 작가의 어머니가 손으로 밑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빠졌어, 너에게>는 2020년 ‘이 만화가 대단해!’ 여성 만화 부문 2위를 차지했고, <여학교의 별>은 2021년 같은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작가의 성별 때문에 여성 만화로 구분됐을 뿐, 인물이나 서사에서 특정한 장르적 클리셰로 구분할 수 있는 작품들은 아니다. 필자가 새로이 이름을 붙인다면, 엔도르핀 장르라고 하겠다. 만화를 보는 내내 개인적인 고충 같은 건 다 잊고 실컷 웃을 수 있다. 만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시름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와야마 야마의 세계다.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8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