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인류가 기후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시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기후변화 개선을 위한 진전은 여전히 더디다. 이에, 독일 미디어 트로트 워(Trott-war)가 국제 기후 비영리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의 대변인 니샤 투생 테슈(Nisha Toussaint-Teachout)와 인류가 직면한 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주제로 인터뷰했다.
그레타 툰베리는 지금의 기후 정책이 가치 없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현행 정책만으로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툰베리는 건설적인 충고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툰베리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류는 기후변화의 여파로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생명체가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다. 지구 온도 상승의 여파로 여러 국가가 사막화돼 인류의 기근과 대규모 이주, 분쟁 등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나비효과에 맞설 방법은 뭘까? 툰베리의 비판은 단순히 현행 정책이 실속 없다는 주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 지금의 정책을 꼬집었던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현장에만 적용되는 발언도 아니다. 또 COP26 개최 이전에만 한정적으로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기후운동은 숱하게 이어져왔고, 그 목표는 여러 정책에 대중의 즉각적인 주목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툰베리의 주장은 타당하다. 지금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총 26회 개최되었으나 여전히 온실가스 등의 배출량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인류의 사회와 경제 형성 방식이 기후위기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무한한 성장은 한정된 자원을 보유한 지구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자연을 마구 이용하는 행위는 곧 인류 착취로 연결된다. 그와 동시에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구에는 이미 각종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남반구 여러 지역에서 기후변화의 여파로 자연재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북반구 사정도 다르지 않다. 기후위기 퇴치를 향한 첫걸음은 기후 파괴에 일조하는 각종 정부 보조금 폐지와 화석연료 절감, 집약적 가축 사육 종료, 재해 예방 대책 개선, 기후위기로 심각한 피해를 겪은 국가와의 실질적 연대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한한 경제성장을 좇기보다는 누구나 경제에 접근하도록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인류 생태학자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은 저서 <파이프라인을 파괴할 방법(How to Blow Up a Pipeline)>을 통해 기후를 해치는 요소에 맞서는 폭력적 수단 사용을 제안했다. 단, 그 과정에서 인간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전제도 덧붙였고, 이러한 방식이 인간이 지구에 일으키는 생태학적 피해를 중단하므로 결과적으로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FFF는 폭력을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말름의 견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해방 운동은 항상 다양한 형태의 행동과 함께 시작됐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시민 평등권 운동이, 영국에서는 여성 권리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인도에서도 이와 비슷한 여러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각종 행동의 형태에는 항상 시민 불복종과 의도적인 파괴 행위가 벌어졌다. 변화를 원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물론, 인간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FFF 운동가 카를라 림츠마(Carla Reemtsma)는 ‘행동 형태의 근본적 변화’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뒤, 비판받았다. 하지만 림츠마도 폭력적 행동을 반대한다. 기후 논의에서 소통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
소통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근본적 변화’는 ‘극단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어근이 비슷한 단어로 근원이라는 의미가 있는 라틴어 표현 ‘기원(radix)’에서 유래한 단어인 ‘뿌리’를 언급할 수 있다. 따라서 기후 논쟁의 근원에 접근한다는 의미는 인류 스스로 기후위기가 발생한 근원과 위기 완화 방법을 질문하면서 인류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할 다른 체계를 모색하는 것을 뜻한다. 인류는 상징적 정책을 넘어선 근본적 변화를 위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이산화탄소세 납부 정책을 도입한다고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날 리 없다. 이웃이 자가용 차량을 운전하는 것이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일까, 아니면 기업이 토지에서 석유 시추 작업을 하면서 소수 부유층만 부를 누리는 게 핵심 이유일까? 실제로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논의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류가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기도 하다.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인류에게 집중하며, 공감 수준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떤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 위기 해결을 위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요약하자면, 많은 이들이 생계를 확보해야 하므로 환경이나 각종 정책 문제를 신경 쓰기 어렵다는 뜻이다. 기후 정의가 자연이 아닌 인류를 위한 운동이라는 부분은 당연하다. 또 다른 중요한 질문도 있다. ‘다양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인류가 어떻게든 생활하고,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체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것이다.
친환경적인 대안을 선택할 때 부담하는 비용이 더 비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 친환경 대안 채택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가?
생태계 변화에는 항상 사회적 변화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세계적 위기를 개인의 문제로 두면 아무 효과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구가 대나무 칫솔을 사용한다면, 기후위기가 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전 세계 배출량 대부분이 소수 부유층과 기업 탓이기 때문이다. 기후 정의는 차량 공장 근로자와 같은 특정 집단도 포함해 모든 인류가 참여해야 한다. FFF가 종종 노동조합과 협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 사회와 전 세계 여러 영역에 걸쳐 기후위기의 피해를 본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폭넓은 영역에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기후위기 해결책이 다른 영역의 부조리를 함께 제거한다는 사실은 희소식이 될 것이다.
빅이슈코리아는 INSP(International Network of Street Papers)의 회원으로서 전 세계 뉴스를 전합니다.
글. Daniel Knaus
번역. 고다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