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너무 하고 싶다, 고 울부짖던 기정(이엘)의 눈에 포착된 남자. 말수가 적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눈빛에 이미 ‘따뜻한 사람’이라고 써 있는 듯하다. 이기우는 자기와는 여러 모로 다른 태훈 속으로 들어가면서 많은 준비를 했지만 이 역할의 어려움이 바로 그 점이었다고 말한다. 준비를 많이 한 티가 나면 안 된다는 점. 내성적이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 드라마 안에서 두드러지는 역할이 아니지만 주변에 저런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생동감.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나의 해방일지>의 태훈 같은 사람은, 실생활에서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렇게 어엿하고, 든든하며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손끝에 온도가 전해지는 사람. 그와 같은 이기우였기에 태훈은 우리 옆으로 올 수 있었다.
이기우는 인스타그램에 배우 계정이 아닌 강아지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반려견 테디가 1인칭 시점으로 말하는 계정. 사람이 개를 흉내낼 때 자칫 ‘전지적 인간 시점’이 되기 쉬움에도 테디 계정은 그저 귀엽고 유쾌하기만 하다. 테디가 되어 글을 쓰고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이 반려견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기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기우여야만 가능한 일이 꽤 많다. 《빅이슈》에 먼저 연락을 해오고, 테디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서서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이기우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반려견 테디와의 동반 촬영은 처음이 아니죠. 촬영을 거듭하면서 새롭게 느끼는 감정이나 익숙해지는 감각이 있나요?
언제나 무척 즐겁죠. 저만 있을 때는 제가 주인공인 현장이니까 스태프들도 어려워하고 저도 그 분위기가 조금 불편한데, 테디가 있으면 강아지 이야기로 서로 한 마디라도 더 주고받을 수 있어서 촬영장 분위기가 밝아져요. 너무 편해요. 게다가 저는 꾸준히 이 일을 했지만 테디는 경험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나름대로 뭔가 해보려고 하는 것 같아 귀여워요. 처음에는 카메라를 조금 무서워했는데, 지금은 렌즈를 쳐다볼 줄 알아요. 빠르게 성장하는 테디를 더 멋지게 키워볼 생각입니다.(웃음)
이번에 매거진 《빅이슈》와의 협업을 먼저 제안하셨어요. 어떤 계기로 《빅이슈》를 알게 되었고, 왜 《빅이슈》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선택하셨는지 듣고 싶어요.
잡지마다 특징이나 방향성이 다른데, 《빅이슈》가 추구하는 방향은 늘 제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분야인 경우가 많았어요. 참 좋은 잡지라고 생각하던 차에 이런 기회가 생겨서 좋네요.

ⓒ 《빅이슈》 279호_22P
테디의 입양 과정이 특별하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테디를 만나고, 같이 살 결심을 하게 되었나요?
‘루키’라는 강아지를 키우다가 그 친구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펫 로스 기간을 2년 정도 보냈어요. 힘들었죠. 그 시간 동안 루키랑 눈이 닮은 강아지 사진만 찾아서 봤어요. 루키가 생각나서 아픈 마음이 치유되면서도 앞으로 다시는 반려견을 못 키우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편으로는 만약에 키운다면 가족을 찾는 친구를 만나 가족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테디의 아기 때 사진을 봤어요. 대전 어느 산기슭을 배회하다가 구조돼 가족을 찾는다는 거예요. 그날로 연락하고 다음 날 바로 데리러 갔죠.
테디의 어떤 점에 끌렸어요?
그게 참 신기해요. 몇 주 전부터 꾸준히 소식을 듣던 다른 유기견 친구도 있었는데, 테디를 보자마자 한눈에 끌렸어요. 아니, 테디가 저를 끈 것 같아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때마침 제 스케줄에 여유가 있어서 루키에게 못 해준 것을 대신 해준다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같이 시간을 오래 보내려고 했어요.
테디가 오고 나서 맞이한 작품 <나의 해방일지>의 ‘태훈’은 배우 이기우에게 딱 맞는 옷이었어요. 종영 소감을 말하며 “해방되기 싫고, 계속 거기 있고 싶은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다.”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해방되었나요?
확실히 사람한테는 시간이 약인가 봐요.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해방되었고, 다시 구속될 대상을 찾고 있어요. 해방 상태로 가만히 있는 건 어떤 행성 주변을 배회하는 위성 같은 느낌이라 저는 빨리 어딘가에 구속되고 싶습니다.(웃음)
이 글은 '할 수 있고 가능한 일 ― 배우 이기우와 반려견 테디 (2)'로 이어집니다.
진행. 양수복
사진. 김슬기
헤어·메이크업. 소이(포레스타)
스타일리스트. 박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