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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3 에세이

비싼 안경 닦이를 쓰는 이유 ― 그건, 도레이씨를 안 써봐서 그래요

2022.09.25


반윤희, 한아름송이. 이름조차 특별했던 그들이 이끌던 어떤 시대가 있었다. 연예인보다 유명했던 얼짱 소녀들의 시대. 나는 그 시대에 사춘기 소녀였고, 나와 친구들은 그들을 따라 하며 살았다. 그들은 그 시대의 패션 바이블이었다.

평범한 외모에 통통한 체격, 여드름이 조금씩 돋기 시작한 피부까지. 아무리 그들을 따라 해도 “야, 쟤 반윤희 따라 한다.”의 ‘쟤’일 뿐이었던 나는 그들과 같기를 바라기보다 비슷하게나마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옷을 따라 살 수 있을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기에 그들의 아이템 중 하나 정도만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 그들의 굵직하고 진한 안경테. 튀어나온 광대뼈와 통통한 볼살, 여드름을 조금이라도 가릴 수 있는 기막힌 아이템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안경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 처음엔 그들을 따라 하기 위해 모았고, 후에는 착용하지 않으면 허전해서 필요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 입학, 진로 변경으로 재수하던 때까지 그렇게 알 없는 안경테를 모았다.

ⓒ 도레이씨 공식사이트

그러는 사이 안경테가 아니라 진짜 안경을 써야 할 만큼 눈이 나빠졌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밤낮없이 끼고 사는 통에 안경의 도움 없이는 세상을 또렷이 볼 수 없게 됐거든. 막상 안경을 써야 할 때가 되니 오히려 쓰기가 싫어졌다. 난시 증상도 있어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세상이 번져 보였는데, 이런 불편조차 견뎌낼 정도로 안경에 정이 뚝 떨어졌다. 그나마 컴퓨터 작업을 할 때나 업무 중에는 끼는데 이때조차도 썩 내키진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비싼 안경 닦이를 쓰자는 것이었다. 원래 돈 쓰는 만큼 사람 마음이 가는 법이라고!

지금 쓰는 안경 닦이인 도레이씨는 세안용으로 먼저 만났다. 세안용 도레이씨는 한창 사춘기 나이에 얼짱이라는 패션 바이블을 보며 세상을 배워가던 때, 여드름 하나하나에 스트레스 받는 나를 보며 엄마가 구해 온 물건이었다. 나름 얼리 어답터였던 엄마는 어디서 들었는지 피부에 좋다며 도레이씨 클렌징 수건을 구해왔다. 안경 닦이 만드는 회사에서 초극세사 클렌징 수건을 만들었으니 안 써봐도 품질이 좋을 거라는 말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써보니 괜찮았는데 몇 번 쓰다 말았다. 매번 닦고 말리고, 닦고 말리고 하는 과정이 귀찮았거든. 여하튼 안경 닦이로 시작해 클렌징 수건까지 만든 회사라면 안경 닦이는 도대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도레이씨 안경 닦이를 구매하진 않았다. 그저 다른 안경 닦이에 비해 많이 비쌌을 뿐. 그런데 이게 웬걸? 도레이씨 안경 닦이가 안경 닦이의 에르메스라나?

안경 닦이에 수십만 원 써본 사람?

ⓒ 도레이씨 공식사이트

알 없는 안경만 사도 안경 닦이가 따라오는데(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다. 탈모 샴푸를 팔면서 빗을 파는 마케팅과 비슷한 걸까?) 한 장에 7000~8000원 하는 안경 닦이를 계속해서 사서 쓰는 이유가 뭔지 말이다. 물론 첫째 이유는 앞서 말했듯 돈 가는 데 마음 간다고 좋은 장비를 쓰면 안경 쓰기가 수월해서… 아니, 수월하다고 느껴서이다. 둘째 이유는 이렇게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 도레이씨를 안 써보셔서 그래요.” 안경 닦이는 기껏해야 안경의 먼지나 얼룩을 닦는 작은 천 따위일 뿐이지만 도레이씨는 정말 다르다. 앞서 말한 클렌징 수건을 안경 닦이 만드는 회사에서 왜 만들었느냐고?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피부가 민감한 어떤 사람이 부드럽게 클렌징을 하기 위해 도레이씨 안경 닦이로 닦았는데 정말로 피부 속 미세먼지가 깨끗이 씻겨나갔다. 기사만 찾아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인된 사실이 그렇다. 그만큼 초초극세사 안경 닦이란 말이다.

조금 전문적으로 설명하자면 안경 렌즈는 대부분 플라스틱 계열의 재료로 만들고 후에 광학적 성질을 다듬고 경도를 높이기 위해 특수한 재료로 얇고 투명하게 코팅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충 휴지나 천으로 렌즈를 닦으면 거친 질감 때문에 렌즈의 코팅이 벗겨지기 쉽고, 그만큼 수명도 단축된다. 안경알을 자주 바꾸고 싶다면 아무 천으로나 막 문질러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경 닦이를 잘 골라야 한다. 바로 도레이씨 같은 걸로 말이다.

반윤희, 한아름송이의 시대는 갔지만, 나는 아직도 큰 뿔테 안경과 이제는 안경알을 곁들인(?) 안경을 보면 그들이 떠오른다. 안경테를 쓴다 해서 그들과 같아지진 않고, 도레이씨 클렌징 수건으로도 그들의 고운 피부를 따라가진 못했지만, 내 안경의 시작은 그들의 시대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으니까. 사실 그들을 따라 하기 위해 쓴 안경테에 죄다 안경알을 넣어버려서 돈이 많이 들었고, 그런 안경을 소중히 하다 보니 안경 닦이도 많이 사버렸다. 안경 닦이에 수십만 원을 써본 사람은 아마 나뿐일 테지. 혹자는 이 글을 보며 마지막까지도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건 아직 도레이씨를 안 써봐서 그렇다니까요!


글 | 사진. 김유진
글쓰기로 먹고사는 평범한 직장인.
햇빛과 그늘과 바람만으로 만족하는 소박한 어른을 꿈꾸지만, 발현되는 소유욕에 매번 좌절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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