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니 WH-H910N 제품사진
이맘때면 봄가을 교복 혼용 기간처럼 블루투스 이어폰과 헤드폰을 섞어 쓴다. 겨울에는 주변에 귀마개로 추천할 정도로 보온성이 뛰어나기에 헤드폰만으로 늦여름의 날씨를 견디긴 어렵다. 뜨거운 햇살 아래 걸어야 할 때는 이어폰을 끼고, 저녁나절 선선할 때는 헤드폰을 쓰는 게 나의 방법이다.
사실 내 헤드폰은 딱히 외관이 특출하지는 않다. 소니의 WH-H910N을 쓰는데, ‘인기템’이던 WH-1000XM4와는 디자인에 차이가 있다. 오래 쓰려면 혹시 모를 오염에도 강해야 할 것 같아서 검은색으로 구매했다. 크림색이나 회색, 힙한 사각형 헤드폰처럼 세련된 맛은 없지만 살짝 긁혀도 티가 나지 않아서 편하다. 어떤 옷차림에도 무리 없이 어울리는 점도 좋다. 아마 재구매를 해도 검은색 헤드폰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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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도 있다. 원래도 ‘바리바리 바리스타’인데 헤드폰까지 챙기면 가방이 무거워진다. 귀고리와 마스크, 헤드폰을 모두 감당해야 해서 가끔 귀가 버겁다.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에 헤드폰 윗부분이 부딪히거나 애써 세팅한 머리가 눌릴 때도 있다.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건 역시 헤드폰이 선사하는 소리의 남다른 공간감이다. 이어폰이나 스피커로 들을 때는 몰랐던 곡의 디테일이 들리면 감동적이기도 하다. 종종 음향 기기 CF의 주인공이 된 기분에 빠지는데, R&B를 들을 땐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록을 들을 땐 역시 마음속으로 에어 기타를 연주한다.
헤드폰이 실력을 발휘하는 의외의 장소는 바로 집이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갖춘 헤드폰의 장점은 물론 지하철이나 버스, 길에서 소음을 최대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내 경험상 조용할 때도 즐길 수 있다. 외출할 때만 쓰기엔 헤드폰의 기능이 아깝다. 혼자만의 고요한 공간은 진짜로 헤드뱅잉을 하거나 춤을 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니 말이다. 한여름에 나온 신곡을 헤드폰으로 다시 들어볼 차례다. 이렇게 가을을 보내면 충분하다.
글. 황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