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뛰어다니다 여기저기 머리를 찧을 나이가 지나면, 반드시 집 한가운데에 커다란 테이블을 놓으리라 다짐할 수 있다. 넓은 집은 약속할 수 없어도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리라. 커다란 TV도 필요 없고 안락한 소파도 포기할 수 있다. 모두 함께 앉아 문짝만 한 테이블에 각자의 책을 몇 권씩 늘어놓고 같이 책을 읽을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구질구질한 것도 힘든 것도 모르고, 함께 문 뒤의 세상을 그려볼 것이다.”
예전에는 새벽에 부엉이처럼 눈을 뜨고 공상이나 망상을 즐기곤 했는데, 요즘에는 도통 그러지 못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나는 거의 바닥을 기어 다닌다. 몸이 뻣뻣해서 양반 다리를 하거나 쪼그려 앉기가 힘들지만 아이는 그런 사정 따위 봐주지 않는다. 잠깐 스트레칭 좀 하려고 몸을 펴면 조그마한 입이 조잘거린다. “아빠, 자리에 앉아요~” 그렇게 놀아주다가 씻기 싫다는 것을 어르고 달래 아기 욕조에서 씻기고, 아까 다 했다는 ‘뻥’을 무시하고 안아 올려 간신히 머리를 감기고, 정성스레 로션도 발라주고 나면 다시 쪼그려 앉아 책을 읽거나 소꿉놀이를 한다. 둘째가 나를 잘 안 따르는 게 오히려 다행인가 싶을 때, 가끔 무슨 변덕인지 한 번씩은 둘째도 나에게 안겨야 잠이 든다. 물론 곱게 잠이 드는 건 아니다. 귀에다 고래고래 울음을 쏟아내고 지쳐서 고개를 떨군다. 평균적으로 둘째는 저녁 아홉 시 반, 첫째는 열 시 반에 잠이 든다. 애들이 잠들면 시사를 하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원고를 쓰겠다고 매일 마음먹지만, 거의 나도 같이 곯아떨어진다. 공상이나 망상은 사치다. 어제도 아기들이 잠들면 드라마를 보면서 저녁 때 남긴 치킨을 해치우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커피를 많이 마신다. 잠을 쫓기 위해서 마시기도 하지만 워낙 커피를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커피보다 카페라는 장소를 먼저 좋아하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아내를 만났다. 우리는 만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으며 보냈다. 서울에는 동네마다 정말 많은 카페가 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좋은 카페는 생각보다 드물다. 수다 떨기 좋고, 사진이 잘 나오고, 커피 맛이 훌륭한 카페도 책을 읽기에는 너무 어둡거나 조금 쌀쌀하거나 지나치게 시끄러운 경우가 많다. 모든 조건이 딱 맞는다 싶은 커피숍에 모기가 바글바글한 경우도 있다. 내가 예민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간혹 널찍해서 책상처럼 느껴지는 테이블이 놓인 카페에서는 나의 예민함도 제법 무뎌져 다른 조건들이 상관없어지곤 한다. 나는 넓은 책상이나 테이블이 참 좋다.
성우가 되고도 오랫동안 원룸살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1년 정도 앞두고 방 하나와 드레스룸이 딸린 작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처음으로 방문이라는 게 달린 집에 살게 된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산 가구가 폭 1800cm짜리 큼지막한 책상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살림을 합치다 보니 그렇게 큰 책상은 도저히 들어갈 자리가 없어 팔아야 했지만, 1년간 나는 행복했다.
이 글은 '책상 너머의 세상 (2)'로 이어집니다.
글. 심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