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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8 인터뷰

실수해도 봐주자고 ― <짐승일기> 김지승 작가 인터뷰

2022.12.12

'이 글은 《빅이슈》 288호에 실려 있습니다.'

ⓒ 사진제공 김지승

'‘지승 일기’가 아니라 ‘짐승 일기’인 자신의 세 번째 책 <짐승일기>에서 작가 김지승은 우는 법을 알기에 짐승이라고, 우는 법을 잊은 짐승이 인간이 되고 만다고 말한다. 갑작스레 병을 진단받고 투병 중 <짐승일기>의 연재를 시작한 작가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경험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돌봄을 제공받으며 불능과 자율성의 상실에 처한다. 이를테면 밖에 나가도록 거동하게 해달라거나 집 안의 쓰레기를 버려달라거나 읽고 싶은 책을 낭독해달라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스스로 할 수 없다는 불능과 내 멋대로 하지 못하는 자율성의 상실이 ‘짐승’을 위협하지만, ‘짐승’은 돌봄에서 발생하는 권력관계를 밀어내려고, ‘나’를 주어 자리에 두기 위해 몸부림친다.
김지승 작가와 나눈 이 인터뷰는 ‘돌봄의 기술자들’의 마지막 회차다. 그동안 청취해온 돌봄 제공자가 아니라 돌봄 수혜자의 입장에서, 가족보다 친구가 더 가까운 1인 가구 여성으로서, 우리가 만약의 상황에 맞닥뜨리면 어떤 돌봄을 요구해야 하는지, 또 어떤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지 교본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발생하는 위계를 경계하고, 실수해도 봐주면서, 우리 서로를 돌본다면 우리는 더 괜찮게, 더 오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등 <짐승일기> 출간 이후에도 해야 할 일이 많고 가사 노동도 해야 하죠. 이 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저나 주변 친구들이나 혼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라 전문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나름대로 스킬이 있었어요. 가족이나 주변인을 돌봐온 사람들이니까요. 질병을 진단받았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바로 친구 4~5명이 요일을 정해 우리 집에 왔어요. 혼자 사는 아픈 사람들은 거동과 관련한 부분을 제외하면 쓰레기 처리나 냉장고 정리 같은 위생 관리 부분을 도움 받고 싶어 해요. 치우고 싶은데 몸이 안 움직이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러니까 와서 집 청소해주고 쓰레기 버려주고 밥 같이 먹어주고 냉장고 채워주고 그랬어요. 저는 운이 좋았죠. 모든 사람이 이런 친구들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면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어요. 친구가 많을 필요는 없고, 혼자 사는 사람일수록 손이 모자라다는 걸 이해하고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아는 친구들과 연대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이요. 저 역시 그들이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끔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짐승일기>에서도 책을 낭독해주는 친구들이 있다고 얘기하셨어요.
돌봄을 받으면서 인상적인 순간들이 있었어요. 약 부작용으로 시력이 나빠졌어요. 읽고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고, 아파서 누워 있으면 그거밖에 할 일이 없는 사람인데, 글을 읽지 못하는 거죠. 이 점이 불편하다고 SNS에 올렸더니 잘 알지 못하는 십여 분이 책을 낭독해 녹음 파일을 보내주셨어요. 친구들도 시간을 내서 낭독한 파일을 보내주기도 했지만, 전혀 모르는 분들이 그렇게 해주셨다는 사실이 무척 고마웠고요. 베풀 때 태도가 훨씬 조심스러웠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에요. ‘내가 해줄게.’ 하는 태도가 아니라 ‘보내도 될까요?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하는 태도였어요. 저로서는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조심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걸 배우는 계기가 되었어요.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생기는 위계가 있죠.
처음에는 그 부분을 맞추는 게 힘들었어요. 친구들은 걱정해주는 거지만, 저는 위계가 생기는 게 싫으니까 뭐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요구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맞춰져서 혼자 있고 싶으면 빨리 가라고 재촉했죠.(웃음) 저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계나 권력관계를 조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돌봄이 필요하다는 건 어떤 일을 혼자 할 수 없는 불능의 상태이기 때문에 자책감이나 자괴감이 많이 들어요. 특히 저처럼 혼자 살고 뭐든 내가 선택해서 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자율성을 잃는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어요.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제가 먹는 약 부작용으로 어지럼증이 워낙 심해서 낙상 사고가 크게 날 뻔했거든요. 한동안 혼자 밖에 나가지 못했어요. 나가고 싶은데 혼자 할 수 없으니까 친구에게 좀 와달라고 도움을 청해야 하고, 그 친구를 기다려야 했죠.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아서 괴로웠는데, 한편으론 도움을 청하는 연습이 되었어요. 물론 짜증이 나지만요.(웃음) 아프지 않았던 때를 생각하면 그 반대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왜 아픈 사람이 짜증을 낼까요? 단순히 통증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불능의 상태가 되고, 자율성을 뺏기기 때문이죠.

<짐승일기>는 아프면서 발견하는 새로운 나 자신, 아픔에 관한 다양한 언어와 그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투병 이후로 새로 발견한 나의 모습이 있나요?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면 오래 붙들고 있기보다 어떻게든 내가 내상을 입지 않고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전학을 많이 다니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면서 살아서 그런지 적응이 빠른 편이에요. 불안이 높은 편이라 그걸 가라앉히기 위해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자기 돌봄을 하는 편이고요. 입원해 있는 동안 해당 병동에서 제가 가장 긍정적인 사람이었어요. 전 굉장히 회의적인 사람인데, 그 안에서는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병원에서 나랑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내가 짜증 내고 화낸다고 덜 아픈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괜히 장난치고 힘든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려고 노력했죠.

불안한 사람의 자기 돌봄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저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 일어날까 봐 불안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지금 나는 여기에 있고, 앞에 기자님이 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내 불안이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려 하고 잘 안 되면 글로 쓰기도 해요. 글쓰기가 도움이 많이 되고, 어느 정도 불안증이 있는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도 좋아요.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거든요.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런 것까지 불안하더라 하면 이해하죠.

주변 사람들도 그 불안을 쓸모없는 생각으로 치부하기보다 실질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편이 유용한 것 같아요.
맞아요.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최악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어요. 제가 질병을 진단받을 때도 의사 선생님이 “설마 속으로 나 이렇게 죽는 거 아닌가 생각하는 건 아니죠?”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어떤 면으로는 나이가 들어서 불안이 좀 가라앉은 거 같아요. 20대에 이런 일을 겪었다면 절대 이렇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전에도 아픈 적이 있고, 아픈 사람을 많이 봐왔고, 여성 노인들을 오래 지켜보면서 달라졌어요.

각자 필요한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른데 돌봄이 필요할 때 어떤 식으로 요청하는 편이 좋을까요?
먼저 돌봄이 필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스스로 잘 알아야 해요. 저는 책 정리를 다른 사람에게 못 맡겨요. 며칠이 걸려도 어쩔 수 없이 혼자 해야 하는 일이죠. 누가 도와준다고 해도 제가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요. 그럴 땐 단호하게 거절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다만 상대방이 자칫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까 집안일이나 위생 관리와 관련한 일에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명확히 밝히는 편이 좋죠. 그러면 서로 편해져요. 상대도 뭘 도와줘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요일별로 메모를 엮은 <짐승일기>의 텍스트는 실험적이에요. 어떻게 구상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지난해 초에 유성원 편집자가 제가 하는 <메두사의 웃음으로>라는 강의를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연락하셨어요. 그런데 강의를 들어보니까 강의록으로는 메시지를 빛내지 못할 것 같다고, 저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죠. 어떤 글이 될지 모르니 일단 메모를 해서 일주일에 한 번 마감을 하자고요. 편집자가 제가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서 그분이 글을 봐준다는 사실이 좋았죠. 그래서 매일매일 그때그때 기억이나 사람과의 관계나 읽었던 책에 관해 썼고 6개월 치가 모였어요. 그런데 그 시점에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으니 모아둔 글을 그대로 쓸 수 없었죠. 내 몸이, 내 삶이 달라졌으니까 이전에 쓰던 언어와 달라야 할 것 같았어요. 치료를 받는 동안 ‘이걸 왜 한다고 했지’ 푸념하면서 거의 다 새로 썼어요.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는 제가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지 않게 되는 점이 좋았어요. 그냥 정해진 시간에 마감을 해야 하는 생활인으로 느껴졌죠.

원고를 새로 쓰는 과정은 어땠어요? <짐승일기>는 산문과 소설을 오가는 글로 다가와요.
그렇게 얘기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애초에 장르나 주제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고 시작했고, 현재 상태에서 쓸 수 있는 걸 썼어요. 저를 돌보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정리되고, 아프지 않았던 과거의 몸과도 관계 정리가 되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제가 기억하는 이야기를 썼죠. 검사받는 날은 하루 종일 약 먹고 열댓 시간씩 기절과 잠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까 꿈인지 생시인지 경계가 흐릿한 경우가 많았어요. 의식이 잠깐 돌아왔을 때 나눈 대화, 지나가는 사샤(반려묘)의 꼬리 같은 게 잔상처럼 남아요. 그런 것들을 다 글로 썼어요. 참 신기했어요. 저는 스스로를 많이 억압하는 편인데, 출판사에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고, 몸도 아프니까 스스로 나를 억압하는 힘이 약해지더라고요. 무의식적으로 기록한 것처럼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지금 느껴지는 게 내 감각인지, 내가 나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썼죠. 그래서 이전에 쓰던 글과는 확연히 다른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 코너를 통해 이제까지는 주로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을 만나왔어요. 마지막 인터뷰이인 작가님께는 자기 돌봄에 대해 여쭙게 되었습니다. 이 코너의 고정 질문을 할게요. 어떤 형태의 돌봄을 받길 바라시나요?
이 세상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자기 스스로도 살기 힘들고, 서로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스스로 나를 잘 돌보는 게 타인을 돌보는 일이 되기도 해요. 친구들이 안녕하면 안심되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대놓고 말하기도 해요. 네가 잘 살아야 내가 안녕하다고요. 타인이 신경 쓰지 않게 해주는 것도 일종의 돌봄이니까요. 그러니까 일단 나를 잘 돌보고, 타인이 힘들 때 누울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돌봄의 순간이 오면 실수하더라도 기회를 주면 좋겠어요. 특정한 관계에서 돌봄을 행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기회를 주는 돌봄이 되면 좋겠어요. 잘못할 수도 있고, 잘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어요. 같은 병에 걸려도 사람마다 힘든 지점이 다 다르거든요. 모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원망하지 말고, 할 말 삼키지 말고, 서로의 자리에 서로를 앉혀놓고 기회를 주면 좋겠어요.


글. 양수복

사진제공. 김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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