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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8 빅이슈

지금처럼, 그냥 ― 시청역 조상길 빅판

2022.12.13

'이 글은 《빅이슈》 288호에 실려 있습니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억양이 낯설고 쓰는 단어도 생소했다. 그는 국적상 한국인이 아니다. 어설프게 알아듣고 자꾸 되물을 때마다 그의 눈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웃음이 가득해졌다. 그 눈웃음에 나도 따라 웃느라 자꾸 눈이 작아졌다. 그의 말에 담긴 억양과 단어는 낯설었지만 눈웃음은 아주 익숙했다. 내 아버지의 그것과 아주 많이 닮아 있는 까닭이다. 물리적으로는 다른 나라 사람인 조상길 빅이슈 판매원(빅판)에게서 내 아버지를 느꼈다. 중국 출신으로 지금은 한국에서 열심히 《빅이슈》를 팔고 있는 시청역 조상길 빅판을 만났다.'


[ⓒ 사진제공 김화경]

인터뷰에 선뜻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하는 데 주저하는 마음은 없으셨어요?
난 한국말을 잘 못해요. 그래서 걱정이 많이 됐어요. 다른 빅판들의 인터뷰를 읽어보았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다들 말도 잘하고요.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될 수 있으면 해야지요.(웃음)

하얼빈에 오래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얼빈은 국제빙설제로 유명할 만큼 추운 도시이지요? 이제 곧 겨울이 닥치면 거리에 서서 판매하는 일이 더욱 힘들어지실 텐데요. 하얼빈에서 지낼 때 생각이 많이 나시겠어요.
옷을 많이 입고 서 있어야겠지요. 사실 날씨보다는 판매되는 결과에 따라 더 춥기도 하고 덜 춥기도 해요. 춥든 덥든 하루에 열 권만 팔려도 마음이 훈훈해지니까요. 한파가 문제가 아니라 팔리는 게 문제지요. 안 팔릴 때는 진짜 시간이 안 가요. 추운 데 서 있어도 잡지만 잘 팔리면 시간이 금방 가고 추운 줄도 몰라요.(웃음) 안 팔릴 때 가만히 서 있는 게 진짜 힘든 일이지요.

재외 동포라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났어요. 태어나서 줄곧 그곳에서 살다가 4년 전쯤에 한국으로 왔어요. 아들이 한국으로 와 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따라오게 된 거지요. 그래서 지금은 아들하고 같이 살아요. 제 국적은 중국이에요. 부모님은 한국(조선)에서 태어나 사시다가 중국으로 건너가셨어요. 저는 중국에서 태어났고요. 부모님은 일본이 침략해 왔을 때 중국으로 가면 땅 많고 농사지을 데 많다는 말을 듣고 건너가셨어요. 그때는 흑룡강 주변이 땅은 넓고 평지인데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 먹고살려고 가신 거지요.

중국에서 태어나셨는데,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중국말도 하고 한국말도 해요. 자랄 때 집에서는 다 한국말을 썼어요. 학교 들어갈 무렵부터는 중국말도 같이 썼고요. 중국말을 못하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요. 소학교, 중학교까지도 학교에서 한국말을 썼지요. 중국에는 소수민족을 위한 학교들이 다 있어요. 하도 소수민족이 많으니까요. 그래도 중국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중국말도 해야 해요. 중국말을 못하면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요.

아드님하고 사이가 좋은가요? 같이 살면 부모 자식은 많이 다투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요?(웃음)
싸울 일이 뭐 있나요.(웃음) 사이가 썩 괜찮은 부자지간이에요. 어릴 적부터 많이 이뻐하고 사랑해주며 키웠어요.

한국에 처음 들어와서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내 나이 60대 중반에 한국에 들어왔으니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어요? 일 없이 지내다 청량리에 가면 공짜로 밥을 준다는 말에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따라 가봤지요. 거기에 갔다가 빅이슈 코디님을 만난 거고요. 그땐 코로나19 때문에 도시락을 타서 먹었지요. 지금은 다시 그곳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고 하대요.

한국에서 살아보니 어떠세요?
괜찮아요. 지낼 만해요. 하얼빈보다는 한국이 더 지내기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이 여기 있으니까요. 나이 드니 아들 곁에 있는 게 최고예요. 뭐, 든든해요. 이제 고향에도 한국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칭다오, 다롄, 베이징 등지를 떠돌다 왔어요. 고향이라고 해봐야 이제 아는 사람도 하나 없어요.

하얼빈과 서울을 비교하신다면요? 가장 큰 차이점이 무언가요?
인사하는 거요. 서로 인사 건네고 이러는 문화나 예절 같은 게 서울이 훨씬 낫죠.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친절해요. 일본 사람들도 친절하잖아요. 일본에도 몇 년 가서 ‘노가다’ 일을 했었거든요. 일본 사람들도 굉장히 친절해요. 좋은 말만 해주지 듣기 싫은 말은 안 하더라고요. 근데 한국 사람들도 그래요. 그런 면에서는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참 좋아요. 중국은 안 그래요. 하얼빈 사람들은 좀 거친 느낌이 있지요.

[ⓒ 사진제공 김화경]

지금은 서울 어디에서 지내고 계신가요?
휘경동에서 지내요. 지하철 회기역 근처요. 빅이슈 사무실에 나오오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려요. 회기역에서 또 버스를 갈아타야 하거든요. 그래서 사무실에 자주 못 나와요. 그래서 판매할 잡지를 한꺼번에 사 가요. 60권 이상이요. 다른 사람들 보니 하루에 팔 양만 사 가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5권 뭐 이 정도 사 가기도 하고요. 전 사무실에 나오기가 힘드니 보통 일주일 치를 한꺼번에 사지요.

코로나19 이후로 빅판님들이 판매하기가 많이 힘들어졌는데요. 요즘은 좀 나아졌나요?
전 올해 2월에 처음 판매를 시작했는데, 그땐 홍대입구역에서 팔았어요. 처음 시작한 거다 보니 잘 안되더라고요. 판매 요령도 없었고요. 어느 비 오는 날은 한 권도 못 판 적도 있어요. 그럴 땐 서 있는 게 지겹고 당장 그만두고 싶고 그렇죠.(웃음) 그래서 판매지를 옮겼어요. 판매가 잘 안 되기도 하고 집에서도 멀어서 판매지를 바꾸었죠. 시청역으로요. 판매하러 갈 때 환승 안 해도 되고 좋지요.

홍대입구역보다는 판매 상황이 나은가요?
네 확실히 홍대입구역보다는 나아요. 홍대입구역에는 학생들이 많은데, 예전에는 잘 팔렸다던데 요즘은 잘 안 팔리더라고요. 요즘 학생들도 다들 힘들잖아요. 공부하랴, 알바하랴. 시청역은 회사원이 많아요. 회사원들이 많이 사 가세요. 낮에는 오가는 행인들이 많이 사시고 출퇴근 시간에는 거의 회사원들이고요.

올해 2월에 빅이슈 판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청량리 밥퍼(밥퍼나눔운동본부 무료급식소)에 갔었거든요. 그저 밥이나 한 끼 먹자 하고 갔었는데 거기서 빅이슈 판매원 모집하러 온 코디님하고 만나게 되었어요. 그 자리에서 잡지를 소개받고 빅이슈 사무실에 방문했죠. 그 전에는 《빅이슈》라는 잡지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잡지를 보니 어떠셨어요? 좀 팔릴 것 같았어요?(웃음)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맨날 하는 일 없이 노는 거보다 낫겠다 싶었어요.

판매하시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인가요?
한 분이 와서 여러 권 사 가실 때요.(웃음) 그럴 때가 가장 좋지요. 어떤 분은 인천에 사시는데 인천에서 일부러 오셔서 스무 권을 사 가셨어요. 근데 특이하게 표지 모델이 아니라 뒤표지에 실린 모델 때문에 사 간다고 하시더라요. 그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판매하면서 가장 기뿐 순간이었지요. 오래 서 있었던 피로가 싹 가셨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지쳤던 마음도 다 가시고요.(웃음)

단골 독자도 생기셨어요?
네. 외국 분이세요. 한국말도 거의 못해요. 저랑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 정도만 주고받아요. 어떻게 잡지를 보려고 사 가시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매호 신간 나올 때마다 꼭꼭 사 가신단 말이에요.(웃음) 한글도 모를 텐데, 왜 사 가시는지 모르겠어요. 왜 사 가시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그분이 한국말을 못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요.(웃음) 제가 종각에서 팔 때도 오셨었고, 시청역에서 파는 지금도 꼭 와서 사 가세요. 그 단골 독자분이 기억이 남아요. ‘저 사람, 영 팔기 힘들겠구나’ 싶어서 일부러 사 주시는 것 같아요. 고맙지요. 왜 사 가시는지, 책을 읽기는 읽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한번 말을 걸어봤는데, 한국말은 간단한 인사말 정도 말고는 전혀 못하시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루고 싶은 삶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지금처럼 그냥 사는 거요. 크게 마음 불편한 거 없이요. 아들도 건강하고 저도 건강하고 그렇게요. 아, 마지막으로 독자분들한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잡지를 사주셔서 고맙다는 말이요. 또 앞으로 많이 사주시길 바란다는 말씀도요.(웃음)


글. 안덕희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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