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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8 인터뷰

포근하게 세계를 대하는 방식 ― 독립 문예지 <베개> 조원규 편집자 (1)

2022.12.14


'안녕하세요, 저는 문예지입니다. 독립 문예지 <베개>는 ‘등단이라는 승인 제도를 통하지 않고도 문학 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모토로 창간했습니다. <베개>의 조원규 대표 편집자는 <이상한 바다>, <기둥만의 다리 위에서>,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 <아담, 다른 얼굴>, <밤의 바다를 건너>, <난간> 등의 시집을 발표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베개>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다 도달한 책이자 장소이자 가능성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문득 시를 찾게 되는 경우가 있나요? 누군가는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시를 찾게 된다고 해요. <베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깜빡 선잠이 들었는데, 문득 잠에서 깨어 베개를 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베개처럼 포근한 방식으로 쓰고, 읽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고 깨닫게 해주는 게 문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 인터뷰 ‘책의 여행’ 코너에서 여섯 번째로 만난 조원규 편집자에게 애쓰지 않고 시 쓰고, 문예지를 만드는 마음에 대해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베개> 창간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양한 독립 문예지가 막 생겨나던 2016~17년 무렵이었어요. 젊은 세대 사이에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고 할까, 기존 문학계의 관행에서 탈피해 뭔가를 좀 새롭게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어떤 흐름을 이루었죠. <베개>도 그중 하나였고, 기존 문학계가 다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위계적이고 경직된 부분이 있기에 새로운 세대는 좀 더 수평적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문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창간하게 됐습니다.

최근 7호를 발표했는데, 창간 당시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모든 분야에서 어떤 새로운 시도가 긍정적인 면을 갖고 사람들의 호응을 받을 때, 이런 긍정성은 번지듯이 기존 제도에도 받아들여져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어요. 등단하지 않아도 원고 청탁을 받거나 문학상을 받는 등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상식이 만들어진 것이 변화인 것 같아요. 그 무렵, 약 4~5년 전에 한차례 제법 격렬하게 문학의 장에 새로운 피가 수혈된 듯해요. 하지만 지금은 독립 출판과 독립 문예지라는 새로움이 주목받는 시기는 지난 것 같고요.

그렇다면 현재 독립 문예지가 가진 가능성과 고민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문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창작을 지속할 수 있나 하는 더 커다란 맥락의 고민으로 넘어간 시점입니다. 그 고민이 어떻게 더 많은 독자와 만날 수 있나 하는 물음이고요. 독립 문예지는 이런 면에서 더 취약한 입장에 있어요. 2016~17년에 함께 시작한 많은 독립 문예지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몇 호 만에 중단한 경우가 많아요. 사실 문예 하는 사람들이 창작으로 생활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매우 오래된 이야기죠. 예술이 고·빈·절(孤貧絶, 외롭거나 가난하거나 장애를 가진)의 인생과 흔히 통하던 20세기 전반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이후에도 줄곧 그랬어요. 이 시대의 삶을 지배하는 경쟁의 거칠고 차가운 논리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다른 곳에서 문예의 꿈을 이뤄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가능성을 바라는 마음이겠죠. 고민은 다시금 이 사회의 지배적 원리에서 한 걸음 비껴난 곳에서 살아가는 일에 흔들리고 희미해지는 마음 같은 것일 테고요.

<베개> 말하는 작품을 오가는 소통을 둘러싼 감정과 태도 의미가 궁금합니다.
어떤 권위자들한테 인정받고 승인받는 높고 낮음, 위계적 구도가 아니라 편안한 관계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들이 있어요. 말하자면 기존에 ‘너는 충분히 잘 썼다’, 아니면 ‘부족하다’, 이런 심사와 판정이 아니라 당신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요, ‘우리 산책하듯 조금 함께 가봅시다’라는 수평적이고 우정 어린 태도. 필자에게 그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독립 문예지, 특히 <베개>에서 중시하는 정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일단 작품을 발표하면, 요즘은 대부분 SNS를 통해 자기표현을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필자들끼리 상대방을 인지하고 호의적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관계망이 생겨나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생겨난 작지만 서로 구속하지 않는 편안한 유사 커뮤니티 안의 감정과 교류 방식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 매체 중에서 문예지를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종이로 된 문예지가 아니어도 이미 많은 문예적 표현의 조각들이 온갖 매체를 통해 범람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럼 왜 하필 문예지냐 했을 때, 문예지는 주로 창작에 뜻을 둔 분들이 장거리경주의 페이스메이커처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책이에요. 좋은 표현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모여서 내는 책이 문예지라고 할 수 있거든요. 요즘처럼 자기표현의 문턱이 다양한 경로로 낮아져 있는 세상에서는, 고도의 수준에 도달하고자 소망하는 아마추어들이 내는 문예지가 나름대로 희소성에서 나오는 어떤 가치를 갖는 것 같아요. 아마추어는 수준이 낮다는 뜻이 아니라 보상이 없어도 열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에요. 이런 세계를 원하면 나만의 소중한 친구를 사귀듯 문예지를 가까이할 수 있어요.

문예지로서 <베개> 실리는 글에 특별한 부분이 있는지요?
<베개>는 시에 중점을 둔 문예지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 밖에 ‘밀고가다’라는 섹션을 소개하고 싶어요. ‘치유하는 글쓰기’ 성격을 띠는 글을 창간호부터 실어왔어요. 삶에서 치유의 경험에 관해 쓴 글일 수도 있고, 글쓰기 자체가 치유의 경험이 되는 성격의 글을 싣습니다. 반드시 문예적 관점에서 뛰어나거나 세련되거나 시의성이 있는 글이 아니더라도 더 나은 상태를 모색하는 과정 자체가 오늘의 창작가와 독자에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련한 섹션입니다.

이 글은 '포근하게 세계를 대하는 방식 ― 독립 문예지 <베개> 조원규 편집자 (2)'로 이어집니다.


글. 정규환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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