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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9 에세이

타인을 부르는 호칭은 상대가 아닌 나의 격을 보여준다 (2)

2022.12.23


이 글은 '타인을 부르는 호칭은 상대가 아닌 나의 격을 보여준다 (1)'에서 이어집니다.

당신은 어떻게 불리고 싶나요?

ⓒ 그림_최산호

대학 시절 신문사에서 인턴 기자 생활을 한 적 있는데 소속되어 있던 부서의 팀장은 취재원이든, 후배든 이름 뒤에 꼭 ‘새끼’를 붙여 말했습니다. 40대 후반 남성인 그는 초년생 시절 ‘무대뽀’ 정신이 곧 기자 정신이라고 교육받은 후 조금의 업데이트도 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초년 기자 시절, 술을 진탕 먹고 경찰서장실 문을 발로 차서 부수고 들어간 걸 기자 정신의 사례로 우려먹는 구시대의 막내로서 그는 언제나 거들먹거리며 위세를 떨치는 듯 보였지만 어린 제 눈에도 그는 그런 식의 껍데기를 쓰고 있어야 안전함을 느끼는 유약한 부류처럼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에게 ‘새끼’로 불렸고 친분이 있으면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은 조금 더 승격해 ‘걔’라고 지칭되었습니다. “아, 이번에 바뀐 대표 걔 말이야?” 같은 식이었죠.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항상 내려다보는 태도가 아슬아슬해 보였는데 제가 거길 그만둔 뒤 후배에게 훈계하다가 따귀를 때려 징계를 받았단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그를 보면서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어떻게든 우위를 차지해보려고 선택하는 저급한 호칭의 대표적 예가 ‘새끼’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에 행사장을 나가면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말을 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를 나눈 후 내뱉은 이 말은 카메라에 그대로 찍혔고 시민들은 충격에 휩싸여 그 영상을 듣기평가 시험을 치듯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뒤 대통령실은 이런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한 것이며 ‘새끼들’은 미 의회를 향한 게 아니라 우리 국회를 지칭하는 거라고 말이죠. 사람들은 주로 ‘바이든’이 맞는지 ‘날리면’이 맞는지 논쟁했지만 제 황당의 방점은 계속해서 ‘새끼들’에 찍혀 있었습니다. 그게 미 의회든, 우리나라 국회든, 누군가를 ‘새끼’라고 지칭한다는 것은 그가 부르는 대상을 마음으로 낮추어 보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그가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선배이자 검사 출신인 한 국회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이렇게 변명해주는 걸 들었습니다. “검사 생활을 한 10년 하면 ‘이 새끼’가 입에 붙는다. 대통령은 조금 억울할 것”이라고요.

ⓒ 그림_최산호

많은 범죄자를 보기 때문에 사람을 볼 때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식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게 버릇이 된다는 것인데 그런 식의 호칭이 입에 붙으면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듯이 느껴지게 됩니다. 이런 식의 인식에 따른 말실수는 계속해서 툭툭 튀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150명 이상이 길에서 압사당한 핼러윈 이태원 참사 현장을 둘러보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라 검사의 언어를 써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 이는 검사가 사고 현장을 보러 나와 쓸 만한 언어이지 책임감을 느끼는 대통령의 자리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닙니다. 같은 날 행정안전부는 사고 이름을 ‘참사’가 아닌 ‘사고’로 통일하고, ‘피해자’라는 말 대신 ‘사망자’라는 단어를 쓰라는 공문을 각 지방자치단체에 내려보냈습니다.

ⓒ 그림_최산호

식당에서 “이모님”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고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리에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걔”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그분”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 만난 사람을 지칭할 일이 있으면 가능하면 “선생님” 또는 “사장님”이라고 부릅니다. 호칭은 무의식적으로 제가 상대에게 하는 대우를 결정할 뿐 아니라 나의 격마저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IT 업계나 스타트업에서 직원들끼리 영어 이름을 부르거나 직급 대신 “~님”이라고 부르는 문화를 두고 우스꽝스럽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단순히 이름에만 국한된 움직임이 아니고 권위적인 문화를 바꾸겠다고 하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기에 그 의도는 일단 격려되어야 합니다. 검사의 언어로 타인을 바라볼 것인지, 학생의 언어로 타인을 바라볼 것인지, 동료의 언어로 타인을 바라볼 것인지는 상대를 부르기로 한 호칭이 먼저 결정짓습니다. 나의 ‘급’을 올리고 싶다면 주변 사람들의 ‘급’을 올려서 부르는 연습을 먼저 하면 됩니다. 호칭은 단순히 호칭만이 아니니까요.


글. 정문정
그림. 최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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