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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무한 증식하는 오늘날, 명작을 만나려면 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싸움 레전드’로 요약된 클립을 통해 <욕망의 불꽃>을 1회부터 보게 됐고, 역대 주말드라마 빌런 중 탑 5위에 들 만한 신은경의 연기를 만났다. ‘돌아라, 돌아라 메리 고 라운드’라는 한 소절을 듣지 않았다면 <롱 베케이션>을, 아이유의 ‘내 꿈은 파티시엘’이 없었다면 <꿈빛 파티시엘>을 정주행하지 못했을 것이고, 2010년 현대카드의 슈퍼콘서트 광고를 보지 않았다면 스티비 원더의 세계를 한참 늦게 접해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 <슬램덩크>는 제출일이 다가오는, 엄격한 교수님이 낸 과제 같았다. 살면서 “이제껏 그것도 안 봤느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다. 어디서 강백호나 서태웅 이름이 보이면 얼굴을 구분 못 하는 내가 초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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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한 지금이 적기였다. 마음이 초조했던 탓인지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기에 앞서 원작에 기반한 떡밥(?)을 급히 접하고 영화관에 갔다. 북산고 농구팀 앞에 놓인 절망과 아픔, 비밀, 야망, 우정과 사랑, 청춘의 풍경 등을 대충. 이나다 도요시의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한 챕터가 떠올랐다. ‘스포당하고 싶어’. 발간된 지 시간이 꽤 지난 작품인 만큼 팬들의 덕질은 일종의 크고 작은 스포일러였지만 즐거웠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을 그린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을 맡았다. 그의 말대로 원작을 몰랐던 나에겐 처음인 이야기다. <슬램덩크 챔프> 특별판도 손에 넣었고, 영화 관람 3차를 앞두고 있다. 리마스터링 된 애니도 보고 있다.(막 정대만이 복귀한 참이다) 남은 건 만화책 정주행과 애니 오프닝 배경이 된 일본의 가마쿠라 방문. 2023년 첫 영광의 순간이다.
글. 황소연
사진제공.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