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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은 나의 초·중학교 시절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다. 바로 그렇다. 내가 바로 ‘만화책키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수업 시간에 몰래 돌려 보다가 걸려서 압수당하고 책방에 3,000원을 배상한 일 같은 건 우리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라 에피소드로 치지도 않는다. 1년 내내 책방을 들락날락했더니 나를 어여삐 여긴 사장님이 “너 오늘부터 여기에서 일해라!” 외치며 책방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간과 시간을 내어주었다는 에피소드 정도면 모를까. 물론 이건 나도 아직 겪어보지 않았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면서 영화를 그렇게 봤다던데, 내가 책방에서 일하며 만화책만 주야장천 봤다면 나의 현재가 어떻게 바뀌어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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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수요일 개봉 당일, 동네 극장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봤다. <슬램덩크>는 수많은 만화책 중 일생을 통틀어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 중 하나다.(다른 작품들이 궁금하신 분은 다음 ‘마이붐’을 기다려주ㅅ…) 농구의 니은 자도 몰랐던 주인공 강백호가 미친 듯한 성장을 보이며 팀의 주축이 되고, 전국 최강팀을 상대로 한 경기 후반,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자신의 영광의 시대를 완성한다는 서사는 뻔하다. 아무리 30년 전 작품이라 해도 뻔한 건 뻔한 거다. 하지만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있나? 중요한 건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들어가는 힘. <슬램덩크>는 그 힘이 너무나 강력해서 40년, 50년이 지나도 떠올리기만 하면 가슴에 불이 타오르고 눈에 눈물이 맺히는 마스터피스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같은 관에 있던 한 관객이 보였다. 농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도 나와 같은 만화책키드였을 거라 생각하니 친근감이 들었다. 혼자 감상에 젖어 그의 멀어지는 등을 덩그러니 쳐다보다가, 그곳에서 영화를 봤던 대부분의 관객이 그러했겠구나 싶었다.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탄식하며 빠져들었던 두 시간의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짐했다. ‘더빙 버전으로 한 번 더 봐야지. 자막은 거들 뿐이니까.’
글. 원혜윤
사진제공.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