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노 태권도?” 인종 차별에 아이는 주먹을 날렸다. 이에 부당한 처분을 내린 교장 선생님을 똑바로 응시하는 엄마 소영(최승윤)의 눈빛에서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얘도 자길 지키려면 싸워야죠.” 자신과 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강인해져야만 했으니까. 홈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화면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던 동현(이든 황)이 자신의 뿌리를 마주하며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정서적 여정’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는다면, 방향을 잃더라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앤소니 심 감독
여덟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셨다고 들었는데, 한국어를 굉장히 잘하셔서 놀랐어요.
최근 한 2년 사이에 한국어가 엄청 늘었어요. 2년 동안 한국에 자주 오기도 했고, 무엇보다 영화 만들면서 한국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했거든요. 처음으로 한글로 이메일을 써봤어요.(웃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한국에 종종 놀러 오기도 하셨다고요. 성인이 돼서 다시 한국에 왔을 때 감독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땠나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게 2004년이었을 거예요. 어머니하고 둘이서 한국에 왔죠. 그때는 솔직히 배우 하려고 한국에 왔던 건데, 10년 사이에 확 달라진 서울이 신기했어요. 처음으로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생활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1년도 못 있다가 도망갔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게 꿈이자 목표였다고 들었어요.
부산에 이모가 사시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놀러 가고 그래서 부산을 참 좋아해요. 2004년도였던 것 같은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하는 게 이모네 집 베란다에서 다 보였어요. 그걸 보면서 “언젠가 내 영화를 갖고서 저기에 갈 거다.” 이모한테 약속도 하고 그랬어요. 제 첫 영화는 가지 못했지만…. 감사하게도 이번 영화는 초청을 받아서 기대했는데,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죠. 저한테는 너무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가 제일 긴장되고 궁금했어요.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
한국에서의 개봉을 앞두고 GV를 통해 한국 관객들을 만나고 계신데 소감이 어떠세요?
감동받는 포인트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 관객들의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다른 나라 관객들이랑 좀 다른 것 같아요. 던지는 질문들도 조금씩 더 깊고요. 먼 외국에서 혼자 상상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걸 한국 관객분들이 본다는 게 너무 신기하죠.
반(半)자전적인 영화라 감독님이 실제로 겪으신 일들이 영화 곳곳에 녹아 있다고요. 그럼 ‘앤소니’란 이름도 영화 속 ‘데이비드’처럼 지어진 이름인가요?
그건 영화랑 진짜 똑같아요. 이민 가서 처음 등교하는 날이었는데, 제 한국 이름이 심명보거든요. 선생님이 애들 이름을 쭉 부르다가 제 이름을 부르는데, 발음을 ‘마이엉’ 이런 식으로 좀 이상하게 하는 거예요. ‘명(myung)’이 발음하기가 힘들거든요. 그걸 애들이 듣고서 흉내 내고 웃고…. 그때 아시아인 학생은 저밖에 없었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영어 이름으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저희 어머니한테 그러셨대요. 근데 저희는 무슨 이름이 좋고 어울리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름을 네 개 주셨어요. 그때 저희보다 먼저 이민 가신 분들이랑 자주 만나곤 했는데, 그날도 모여서 식사하다가 저희 어머니가 “명보 이름을 리처드로 바꾸려고 한다.” 했더니 한 분이 “우리 아들이 리처드다.” 하신 거예요. 그다음으로 “케빈.” 하니까 “우리 남편이 케빈이다.” 그러고…. 그러다 마지막으로 “앤소니 있냐.” 물었죠. 근데 한국 사람들한텐 ‘th’ 발음이 어렵잖아요. 아무도 앤소니를 원하지 않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앤소니가 됐죠.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
정말 영화랑 똑같네요. 실제 어머니와의 관계가 영화 속 소영과 동현의 관계랑 비슷하다고도 말씀하셨는데, 소영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 어머니의 이미지를 많이 참고하셨나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저 자신도 그렇고 어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런 분들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이라면 실제로 이런 말을 안 했을 텐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글 쓰는 게 어려워졌죠. 이게 진짜 우리 가족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이건 픽션이다, 영화다, 생각하면서 그걸 좀 버리려고 했어요.
감독, 연출, 연기 등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셨는데,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다 정말 즐거웠어요. 우리 팀이 너무 좋았거든요. 물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좋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나하나 해나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제일 어려웠던 건 연기였죠. 특히 제 작품에 제가 연기하는 게. 그래서 일부러 제 작품에 제가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은 안 쓰거든요.
이 글은 '<라이스보이 슬립스> 앤소니 심 감독 (2)'에서 이어집니다.
글. 김윤지 | 사진. 이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