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297 인터뷰

<라이스보이 슬립스> 앤소니 심 감독 (2)

2023.04.24

이 글은 '<라이스보이 슬립스> 앤소니 심 감독 (1)'에서 이어집니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

그럼 사이먼 역할을 처음부터 감독님 자신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었겠네요.
원래 시나리오 단계에선 사이먼이 인도 남성이라는 설정이었어요. 근데 이 캐릭터에 대해서 “역할이 좀 재미가 없다.”, “이 영화는 엄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캐릭터는 영화랑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이런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래서 한국 입양아 캐릭터로 설정을 바꿨어요. 근데 벤쿠버에서 캐스팅하기엔 한인 배우들이 너무 적거든요. 그런 이유도 있었고, 캐스팅 감독들도 제가 사이먼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제가 사이먼을 연기하게 된 거죠.

촬영 방식이나 배경에 따라 변화하는 화면 비율 등 여러 면에서 세심한 연출이 눈에 띄어요. 연출에 있어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제가 처음에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팀을 꾸리면서 “이 세 가지는 절대로 마음 안 바꿀 거다.” 얘기한 게 있어요. 이 영화는 16mm 필름으로 찍을 거고, 한국인 역은 다 한국 배우들이 연기할 거고, 한국 장면들은 다 한국에서 촬영을 해야 된다. 근데 막상 해보니 이 세 가지가 제일 힘들었어요. 특히 필름으로 촬영을 하니까 찍고 나서 저 자신이 어땠는지를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좋았다, 다시 해야겠다, 딱 결정을 못 하니까. 그게 좀 힘들었어요. 셋 중에서 하나라도 포기했으면 훨씬 쉬웠겠죠. 근데 만약 그렇게 했으면 다른 느낌이 나는 작품이 됐을 것 같아요.

앤소니 심 감독

한국 장면은 강원도 양양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셨잖아요. 그곳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외가가 양양이에요. 할아버지 고향이기도 하고. 촬영한 곳이 원일전리라는 마을인데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이에요. 하조대(양양군 일대의 암석해안으로 관광 명소)에서 45분 정도 운전해서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죠. 근데 거기가 저희 식구들한테는 익숙한 곳이고 아직 그 마을에 사는 분들은 거의 친척들이에요. 가을이었나.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에 왔을 때, 어머니하고 강원도를 갔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느꼈거든요. 이 땅에 저의 뿌리가 있고 제 가족의 역사가 있고… 그런 것들을요. 실제로 그 생각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고요.

한국에서의 로케이션 촬영 일정이 굉장히 짧았다고요. 이로 인한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촬영할 수 있는 날이 4일로 너무 짧아서 준비를 엄청 열심히 해야 했죠. 이 장면은 여기서 어떻게 찍고 그다음에 어떻게 가고, 그 계획을 짜는 게 되게 중요했어요.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을 했는데, 한국에서 촬영할 땐 신(scene)에 따라 감정이 많이 쌓인 상태라 배우들도 캐릭터랑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소영이 산에서 울부짖듯이 소리치는 장면에서 인물과 하나가 된 것 같단 느낌을 받았어요. 그 장면은 영화 <대부 3>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 장면을 참고하신 거라고요. 다른 영화를 참고하거나 오마주한 장면이 또 있을까요?
엄청 많죠. 제가 이창동 감독님 영화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특히 옛날 영화. 영화 <오아시스>에 설경구 배우가 문소리 배우를 업고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면서 “밥 뭐 먹을래? 불고기? 오므라이스?” 묻는 장면이 있거든요. 영화에 소영이가 어린 동현이(노엘 황)한테 똑같이 묻는 장면이 나와요. 근데 이런 건 아무도 모르죠. 저만 알아요.(웃음)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

할리우드 영화 속 아시아 여성은 주로 일방적인 캐릭터로 묘사돼서 소영을 통해 입체적인 한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요. 캐릭터를 잘 전달하기 위한 디렉션이 있었나요?
승윤 씨가 소영이와 성격도 비슷하고 너무 잘 맞는 역할이어서 특별히 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디렉션을 주진 않았어요. 오히려 승윤 씨가 한국 사람으로서는 이게 더 맞는 것 같다, 이렇게 하는 게 나은 것 같다, 의견을 많이 줬죠. 승윤 씨 오디션 볼 때 제일 처음 본 연기가 교장실에서 선생님이랑 싸우는 장면이었는데요. 잘 보면 입술이 달달 떨리는 게 보여요. 그런데도 눈빛을 보면 오히려 교장 선생님이 더 무서워할 것 같은 눈빛이거든요. 오디션에서 그 장면만 백몇십 명이 연기하는 걸 봤는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아, 이거다.’ 싶었어요.

소영에게 한국은 쫓기듯 도망쳐 온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늘 그리운 곳이었다고 느껴져요. 감독님에게 있어서 한국은 어떤 곳인가요?
한 3개월 이상 외국에 가 있으면 한국이 그리워요. 근데 또 막상 한국에 와서 3개월 넘게 있으면 한국이 지옥 같기도 해요. 감정이 좀 복잡한데, 어떻게 보면 가족 같은 거죠. 가족도 너무 사랑하지만, 또 너무 미울 때도 있고 그렇잖아요. 이건 몇 년 전에 느낀 건데, 한국에 오면 주로 식구들이랑 시간을 보내거든요. 근데 그분들도 나이가 드니까 점점 한국에서 만날 사람이 줄어드는 거예요. 이러다가 한 10년 후에는 진짜 외국인이 한국에 놀러 오는 느낌이겠다. 그러면 이 나라, 이 땅이 저랑 사이가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여기 나의 새로운 뿌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 영화 만든 이유도 그거고요. 많은 이민자들이 한국을 떠나고 나면 한국이랑 거리를 두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저는 한국이랑 뭐랄까… 커넥션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한국에서도 영화가 개봉될 텐데 관객들이 주의 깊게 봐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제가 GV에서 제일 많이 하는 얘기인데요. 이 영화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선으로 찍은 거예요. 만약에 죽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요. 카메라가 곧 아버지의 시선인 거죠. 그걸 생각하고서 보시면 인물의 감정이 더 깊이 와닿지 않을까 해요.


글. 김윤지 | 사진. 이상희


1 2 3 4 5 6 7 

다른 매거진

No.338

2025.08.01 발매


배우 이주영

No.337

2025.07.01 발매


스킵과 로퍼

No.336호(표지 A)

2025.06.02 발매


하리무

No.336호(표지B,C)

2025.06.02 발매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