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형과 아우’로, 때로는 ‘둘도 없는 친구’로, 또 때로는 부부 못지않은 케미로 남다른 관계를 이어가는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들이 있다. 종각역 5번 출구에서 판매 중인 김훈재 빅판과 광화문역 5번 출구에서 판매 중인 이근철 빅판이 그들이다. 오래전 노숙을 하다가 만나 함께 빅판 일을 시작한 뒤 이제는 판매를 마칠 즈음이면 자연스레 서로의 판매지로 향한다는 이들을 만나 ‘찐우정’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 왼쪽부터 김훈재, 이근철 빅이슈 판매원
빅판의 이야기’ 코너에서 김훈재 빅판님은 처음 만나지만, 이근철 빅판님은 290호(2023.01.01.)에서 독자들과 만났어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이근철 몸이 많이 아팠어요. 약을 아무리 먹어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요. 365일 감기에 걸린 채 사는 기분이에요.
김훈재 노력이 부족한 거지요.(웃음) 저는 나이가 많아도 철두철미하게 건강관리를 해요.
이근철 이 형님은 잘 먹어서 그렇고 저는 못 먹어서 그렇지요.(웃음) 형님은 진짜 잘 챙겨 먹어요.
김훈재 빅이슈 사무실에서 기업의 후원을 받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도시락을 배달해주잖아요. 아주 잘 나와요. 고기에 나물 등 골고루 나와요. 전 어떨 땐 그 재료를 다 섞어서 비벼 먹어요. 내 입맛에 맞게 비비지요. 그러면 없던 입맛도 확 돌아요. 그 도시락이 제겐 효자예요.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김훈재 늘 약은 먹어요. 앉았다 일어날 때면 머리가 핑 도는 게 어지럼증이 생기고, 그래서 혈액순환 촉진제도 복용하고, 위장약 같은 것도 늘 먹어요. 항상 약을 준비해서 다니지요. 《빅이슈》를 판매하다가도 몸이 좀 좋지 않다 싶으면 얼른 약을 꺼내 먹어요. 제가 일흔이 다 됐어요. 주민등록상에는 나이가 많이 줄었어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아주 작고 약한 아기였대요. 오죽하면 아기가 아니라 강아지 새끼가 태어난 것 같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3년이나 호적에 안 올렸었어요. 못 살고 곧 죽을 것 같다고요.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많았어요. 그런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고 있잖아요. 제가 또 잘생겼잖아요.(웃음) 사실 이 동생(이근철 빅판)은 좀 귀엽게 생겼지, 잘생긴 건 아니잖아요.
이근철 (약간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하하…
두 분은 각각 종각역과 광화문역에서 판매하시지요? 요즘 판매 상황은 어때요?
이근철 광화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회를 해요. 어떤 날은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서 매대를 펼치지도 못하고 그냥 집에 들어가기도 해요.
김훈재 집회가 잦으니까 잡지 몇 권 펴놓을 공간도 없는 거지요. 또 이 잡지가 뭔지 모르는 경찰도 많으니까, 아저씨 여기 뭐 하는 거냐고, 빨리 치우라고 막 그럴 때도 있어요. 저 같으면 《빅이슈》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해서 어떻게든 판매할 텐데, 근철이 동생은 그냥 판매를 접고 말아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김훈재 근철이 동생하고는 노숙 생활을 하다가 잠실역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이 동생은 그때 일용직 일을 해서 돈을 벌었지요. 보면 소주 두 병에 안주까지 놓고 맛있게 먹는데, 난 돈이 없잖아요.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소주를 안주랑 같이 먹는 게 너무 부러워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다녔지요.(웃음)
이근철 잠실에 롯데몰이 생기기 전 일이에요. 한겨울에 노숙하면 너무너무 춥잖아요. 그때 잠실역은 난방이 됐어요. 그러니 홈리스들이 거기로 많이 갔어요.
김훈재 그러다 보니 서로 따뜻한 자리 차지하려고 싸우고 막 그랬어요. 근데 이 동생이 싸움을 좀 했어요. 지금 봐도 근철이가 덩치가 좀 있잖아요. 주먹도 셌거든요. 제가 다른 홈리스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어느 날 이 동생이 날 도와줬어요. 왜소한 사람을 왜 괴롭히느냐, 약한 사람 때리면 안 된다, 이러면서 막아준 거예요. 그 일로 친하게 지내게 됐지요.
그러면 두 분의 인연이 오래됐군요. 두 분은 지금도 아주 친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절친’ 중의 절친이시라고요.
김훈재 제가 7년째 《빅이슈》를 파는데, 이 친구는 저보다 조금 늦었지만 거의 비슷하게 시작했어요. 빅이슈 사무실에서 근철이 동생은 아주 귀한 사람이에요. 이 동생이 오기 전에는 빅판들 사이에 다툼도 많고 언쟁이 잦았어요. 나는 몇 권 팔았는데 너는 몇 권 팔았느니 하며 서로 시기하고 험담하는 일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동생이 “여기서 싸움이나 일으키는 그런 소리 하는 놈은 나한테 혼나.” 하며 엄포를 놓았지요.(웃음) 이후로 서로 시기하고 시비 걸기보다는 안부 묻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저는 근철이가 우리 사무실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두 분은 어디서 지내세요?
김훈재 저는 명동 쪽 고시원에 있어요. 빅이슈 사무실에서 저축해놓은 돈이 좀 있으면 임대주택에 들어갈 기회를 주잖아요. 저는 그걸 거부했어요. 왜냐하면 임대주택이 대개 서울 외곽 동네에 있어요. 제가 나이가 있잖아요. 멀리 가면 카트 끌고 버스 타야지, 전철 타야지, 제 나이에는 지치거든요. 지금 사는 명동의 고시원에서 판매지인 종각역까지 걸어서 15분이면 가요. 저는 오전 10시 반이면 판매지에 나가요. 정해진 판매 시간인 오후 3시에서 8시까지만 팔면 난 밥 못 먹고 살아요. ‘내가 먹고살려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점심시간에 판매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더 하는 거예요. 그렇게 판매를 오래 하려면 판매지 가까운 데서 지내야 해요. 제가 임대주택 안 들어가고 계속 고시원에 사는 이유예요.
이근철 저는 구로구 쪽에서 월세방 얻어서 살고 있어요.
두 분은 얼마나 자주 보세요?
이근철 얼마 전 한 달 동안 안 보고 살았어요. (왜요?) 싸워서요.(웃음)
김훈재 매일 일 끝나면 동생이 나한테 와요. 동생은 판매가 오후 7시에 끝나거든요. 저는 8시에 마치고요. 또 낮에도 제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으면 동생 판매지로 가요. 근데 한 달 동안 못 만났었어요. 우리가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잖아요. 남한테 손 안 내밀고 열심히 살려고 더 노력하고 조심해야 하는 입장인데, 이 동생이 술 한잔 먹으면 아직 젊어서 그런지 사회에 불만과 화가 많아요. 안 해도 될 말을 세게 하고 그래요. 저는 형이니까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언쟁이 생겨요. 그러다 싸워서 한 달을 안 봤어요.(웃음)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이렇게 싸우고 안 본 게요.
이근철 사람이 생각이 다르잖아요. 사람마다 다 자기 생각이 있어요. 우리가 다투는 얘기는 딱 하나예요. 정치! 정치 얘기 나오면 꼭 싸워요. 여당, 야당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요.(웃음) 술 한잔 마시다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싸워요.
두 분은 정치 얘기만 안 하시면 싸울 일이 없으시네요.(웃음)
김훈재 그렇죠.(웃음)
이근철 맞아요.(웃음)
그럼 앞으로 정치 얘기는 안 하시는 걸로.(웃음)
김훈재 네, 이제는 재미난 얘기만 하려고 해요. 책 파는 얘기만 하고요.
이근철 이번에 한 달 만에 보니까 더 반갑고 좋던데요.(웃음)
김훈재 동생이 안 오니까, 늘 오던 때가 되면 언제 올까 싶어 자꾸 동생이 오는 쪽만 쳐다보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이 글은 '빅판의 이야기: 종각역 김훈재, 광화문역 이근철 빅판(2)'에서 이어집니다.
글. 안덕희 | 사진. 김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