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탱고 공교육을 꿈꾼다 (1)'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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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
춤이 이처럼 유익한데, 왜 교육과정에서 충분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걸까? 내가 다닌 중학교에서는 원치 않는 무용복을 입고 지금 돌이켜봐도 무슨 장르인지 명확하지 않은 움직임을 클래식 음악에 맞춰 허우적대는 무용 시간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시간마저 짧았고, 고등학교에는 그마저도 없었다.(나는 7차 교육과정 세대인데 이 세대 대부분이 이랬는지, 학교마다 달랐는지 궁금하다. 제보를 기다린다. @monthlying)
나는 교육을 한 인간을 사회적, 민주적 존재로 길러내기 위해, 그리고 지구상의 생명체로서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으로 여긴다. 이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이 무엇인지는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이견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 매해 5월마다 의아하다. 종합소득세를 신고하고 내는 법을 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지? 이렇게나 어렵고 복잡한데…. 처음 집에서 독립했을 때도 의아했다. 의식주가 삶의 필수 요소라고 가르쳤으면서, 왜 임대차보호법에 대해 자세히 교육하지 않았지? 살면서 의문스러운 점은 계속 늘어났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좋은 인간관계가 필요하고, 심리학적 지식과 기술이 많은 도움이 될 텐데 교과과정에서는 왜 소홀히 할까? 타인의 심리를 조종하고 이용하는 빌런들에게 당하고 나서 울며불며 심리학 서적과 유튜브를 찾아보는 길이 최선일까? 또한 가짜뉴스들이 빠르고 넓게 유통되는 것을 보면 현실적인 텍스트를 기반에 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더 강화돼야 할 것 같은데, 문해력 향상을 위한 텍스트의 선정은 현재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결론은 좀 더 실용적인 지식과 실습이 한국 교과과정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춤 역시 이에 포함된다. 평균수명이 이토록 길어진 세상에서 오래도록 즐겁고 건강하게 몸을 사용하도록 돕는 방법과 기술이 그보다 더 실용적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예상해본다. ‘그런 부분은 각자 알아서 학습해도 되지 않나?’ 기회의 평등에 대해 헤아려보았으면 한다. 경제·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 예술 감상, 악기 연주, 스포츠 등의 경험으로 표현력, 절제력, 안정된 심리 상태 등을 가꿔간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가 여러 면에서 삶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접한 적 있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이다. 어떤 부모를 만나는지 여부는 노력과 상관없는 우연의 요소이고, 이러한 우연의 요소가 불러오는 차이가 삶을 살아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사회는 부정의하다. 저소득 계층이거나 자식의 교육에 무심한 부모를 둔 자식일지라도, 세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혹은 저비용 프로그램으로 관심 범위를 넓히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브레이킹이 공교육 과정에 포함됐을 것이다. 브레이킹으로 학생들의 신체 능력이 향상되고 창조성이 고양되며 정서적 만족을 실현하기를 도모하며. 브레이킹이 입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배움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공교육에 속한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아이들의 의지로써 경험의 폭을 넓히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성별과 관계 맺으며 존중을 배우길
앞서 말했듯 탱고에도 많은 교육 효과가 있다. 하지만 탱고가 공교육 과정에 속하기는 브레이킹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탱고 공교육을 지지하는 탱고인에게서 나온 지적이다.
탱고인 Y는 고등학교 때 풍물패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는 여고를 이웃에 둔 남고에 다녔는데, 남고와 여고의 풍물패가 함께 연습하고 전국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었다. 대회가 끝난 뒤 모두 어울려 웃고 떠든 추억은 아직도 기억 속에 빛난다. 그러나 “여자애들이 남자애들이랑 붙어서 시시덕대는 게 꼴보기 싫다.”든지 “학생이면 공부나 해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나타났고, 결국 교류는 단절됐다. 그런 학부모들이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탱고 배우는 걸 본다? 뒷목 잡고 쓰러져 실려 나갈 수 있겠다.
Y의 지적을 듣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탱고 수업을 동성끼리 배우도록 개설하면 되지 않나?’ 였다. 리더와 팔로우 역할은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자질과 능력에 따라 주어져야 하므로 동성끼리도 수업 진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더 생각해보니… 좀… 열받네? 이성끼리 가깝게 지내면 왜 안 되지? 지금 시대상을 보면 학창 시절 이성 간 교류가 잦은 게 오히려 더 교육적일 것 같은데. 종종 여자 손 한 번 안 잡아본 남자애들이 가상의 존재로서 여성을 접하며 혐오하고 비난하는 것을 목격할 때 안타까움을 느꼈다. 직접 경험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텐데…. 다른 성별과 교류하고 관계 맺으며 서로에 대한 존중을 학습하게끔 하는 것,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하나의 방법 아닐까?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게 하고 관계 속에서의 균형을 배우게 돕는 탱고를 공교육 과정에 두는 일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이 될 수 있겠다.
모쪼록 교육청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기를.
- 소개
최서윤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게임 <수저게임>, 영화 <망치>를 만들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 <미운청년새끼>(공저)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monthlying
글. 최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