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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1 커버스토리

이슬로 작가 (1): 동심의 색채

2023.06.28

노티드 도넛의 마스코트 ‘슈가베어’, 걸그룹 오마이걸의 ‘Dun Dun Dance(던던댄스)’, 파스텔톤의 색감, 복슬복슬한 털과 주근깨를 가진 장난스러운 표정의 동물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마주쳤을 이슬로 작가의 작품은 동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과연 이 작품을 그려낸 사람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누구나 궁금했을 법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이슬로 작가에게 직접 들어봤다. 너무 좋아하는 그림이 직업이 된 지금, ‘성공한 덕후’가 된 느낌이라는 이슬로 작가에게 그림은 동심을 들여다보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 너머엔 집 안 가득하던 폭신한 인형들이, 좋아하는 색을 마구 섞어 그림을 그려내던 어린 자신이 있다. 문득 ‘그림’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들 때면 어릴 때의 마음을 기억하곤 한다고 이슬로 작가는 말한다.


ⓒ Somewhere unknown (day) 3, 2022, Acrylic on canvas

최근 유기견 보호소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 hood>와 체험형 전시인 <이야기 유랑선>에 참여하셨어요. 작가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슬로코스터도 운영하고 계시는데, 요즘은 어떤 일상을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올해 상반기에 전시를 짧은 간격으로 여러 번 했어요. 작가 활동과 동시에 브랜드 운영, 캐릭터 사업 등 여러 일을 병행하다 보니 에너지를 잘 배분하는 일이 중요하더라고요. 요즘 ‘부캐’가 유행이잖아요. 저도 작가였다가 사업가였다가, 여러 일을 병행하다 보면 부캐 활동을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진짜 ‘나’를 지탱하는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일 같아요. 그것을 위해 꾸준한 기록과 고민이 필수라고 생각하는데, 늘 시간 내에 주어진 일을 해내느라 쉽게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남은 하반기 동안은 전시를 잡지 않고 작업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진중히 하면서 그간 바빠서 놓쳤던 기록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 이슬로 작가

노티드 도넛, 걸그룹 오마이걸의 앨범 커버, 에버랜드와 함께한 튤립파워가든 프로젝트 등 다양한 아티스트, 브랜드와 작업을 이어가시는데, 어떤 과정으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지가 궁금합니다. 요청 사항과 작가님의 개성, 색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은 어떻게 조율해나가나요?
감사하게도 이전 제 작업을 많이 보시고 제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 지금까지 크게 간극이 생긴 적은 없어요. 처음 제안을 받고 미팅을 하거나 소통할 때부터 어떤 기획을 하고 있는지를 들어본 뒤 ‘해야겠다 안 해야겠다’를 바로 판단하는 편인데, 가끔 ‘정말 이건 페이가 적어도 하고 싶다.’ 할 정도로 마음이 가는 경우도 있어요. 또 계약 내용이나 여러 현실적인 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결정하는 경우도 있고요.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 같은 경우는 제가 지금 하는 작품 활동의 완전한 연장선이라기보다는 작은 가지, 하나의 퀘스트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목적과 조건을 가진 기업들과 협업하려면 제 철학만을 담은 작품이 아니라 기업의 목적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서, 큰 범위에서 봤을 때 제 작업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내용만 아니라면 기업이 원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는 편입니다. 그 방향이 잘 맞지 않는다면 아예 시작도 안 하려고 하고요. 그래서 정확한 의도와 콘셉트가 있는지, 그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마케팅 콘텐츠에 쓰인다면 기업이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는지 질문을 많이 한 후에 시작합니다. 스스로도 이걸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고요.

특히 작가님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노티드 도넛과의 컬래버레이션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노티드의 마스코트 슈가베어를 만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노티드와의 첫 작업은 마스코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슬로코스터를 런칭한 지 7년 정도 되었을 때 여러 가지로 지쳐 모든 것을 중단하고 혼자 양평 시골집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아무런 계획이 없이 숨어들었었는데, 오히려 그때 시간과 여유가 없어 못 했던 그림 작업을 평소보다도 더 신나게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 조건도 피드백도 필요 없는 자유로운 그림에 빠져서 물감도 막 흘리고 뿌리고 그랬죠. 지금의 화풍이 만들어진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한데, 이때 크림처럼 흘러내리는 제 작업을 보시고 노티드 측에서 매장 한 부분에 페인팅 작업을 의뢰하셨어요. 간단히 전신거울에 페인팅 작업을 마치고 그다음으로는 매장 외벽에 그래픽을 입히는 작업을 맡게 되었는데, 이때 여러 가지 캐릭터를 그려 넣게 되었어요. 그런데 출입구 쪽에 그려 넣었던 핑크색 곰이 반응이 좋아 자연스레 노티드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협업’의 의미에 대해 깊게 느낀 경험이었어요

ⓒ 오마이걸 <Dun Dun Dance> 커버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이 있다면요?
뭐든 처음, 예상치 못했던 시점에 함께하게 된 협업이 가장 인상이 깊게 남는 것 같습니다.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노티드에서 온 러브콜도 그랬고요. 사실 그 한참 이전에 아이돌 그룹 B1A4의 ‘이게 무슨 일이야’ 미니앨범의 전체 일러스트와 무대 의상, 소품 페인팅 작업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라 협업 제안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어요. 이렇다 할 포트폴리오도 레퍼런스도 없이 고작 개인 블로그에 취미로 작업하는 내용을 자주 기록하는 게 전부였거든요. 제 인생 첫 퀘스트였죠. 그 당시 제안을 주셨던 담당자분과는 아직까지도 인연이 이어져 오마이걸 ‘던던댄스’ 앨범도 함께 작업하게 되었어요. 멋진 포트폴리오보다도 아마 성실히 기록하고 작업하는 저란 사람 자체를 믿어주신 덕이 아닐까 싶어요. 잘 다듬어 디자인해주시고 앨범도 좋은 성과를 거두어서 저도 기억에 남는 작업이에요.

ⓒ 노티드 도넛과 진행한 컬래버레이션

대학에서 디지털미디어디자인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웹디자이너로 일하셨는데 자신만의 브랜드를 런칭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영역을 확장해 지금의 작업 세계를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자연스레 입시미술도 하고 대학 진학 후 디자이너로 취업하긴 했지만, 사실 그 과정 안에서도 늘 일과를 마치면 입시나 커리어에 상관없이 단지 재미를 위해 저 자신을 위한 그림 작업을 해왔어요. 그 과정을 기록하고 원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판매하기도 하고요. 직업으로 삼는 것은 전혀 예상에 없던 일이에요. 그런 활동이 나아가 브랜드가 된 것도,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을 하고 이후 회화가로서 전시를 이어나가는 일도 모두 제가 기록해가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준 누군가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크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 Instant (rabbit), 2022, Acrylic on canvas

작업을 할 땐 네댓 살짜리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어요. 작가님 특유의 파스텔톤 색감과 몽글몽글한 유화 텍스처의 털동물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 또한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데요. 어린 시절, 작가님은 어떤 아이였나요?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쭉 장사를 하셔서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학교나 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자기 전까지 늘 라디오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다 잠들었어요. 작업할 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사실 ‘동심’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게 이런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때를 기억하는 지금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제가 좋아했던 집 안 가득한 폭신한 인형들을 다시 만나 편안해지는 창구가 그림일 수도 있고요. 사실 예상치 못하게 그림 그리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혹시라도 내 삶을 지탱했던 이 ‘그림’이라는 행위가 내게 부담이 되거나 싫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럴 때 특히 어릴 때의 마음을 기억하려고 해요. 목적 없이 좋아하는 색을 마구 섞어서 화면을 채워갔던 즐거움 자체를요.

이 글은 '이슬로 작가 (2): 동심의 색채'에서 이어집니다.


글. 김윤지 | 이미지제공.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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