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슬로 작가 (1): 동심의 색채'에서 이어집니다.
ⓒ Somewhere unknown (day) 3, 2022, Acrylic on canvas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친 콘텐츠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라디오를 켜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게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어서 제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는 최근에 느끼기 시작했어요. 작가에게 폭넓게 사고할 수 있는 기회는 다양한 경험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는데, 라디오가 제게 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세계를 주고받는 대화 또한 제게 좋은 영향을 미치곤 하는데, 실제로 만날 수 없는 인물들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을 라디오를 통해 할 수 있더라고요. 혼자 있는 작업실에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전해 듣고 시기적으로 어울릴 만한 음악도 추천받으면서 사소한 고민을 나누는 소리를 듣다 보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충만한 기분입니다.
ⓒ Instant cabbage, 2022, Acrylic on canvas
아이디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가 생각하는 영감은, 영감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보다 그걸 어떠한 과정으로써 결과물로 도출해내는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작업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결국 본질적인 것은 지금을 사는 내 안에서 오거나,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순간과 기회들, 그것을 붙잡아 작업으로 연결하는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주 메모하고 촬영해 기록하고,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함께 향유하는 것을 즐깁니다.
ⓒ 전시 전경
작가님의 이름을 딴 캐릭터 ‘Lo’의 탄생 배경과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궁금합니다.
전시를 하면 꼭 듣는 물음이 “작품 안에 얘(캐릭터)는 누구예요?”라는 질문이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의하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할 수는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이름을 붙여주기로 마음먹었죠. ‘Lo(로)’라는 이름은 이슬로인 제 활동명에서 실명(이슬)을 제외한 건데, 제가 직접 지어 붙인 글자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작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됨과 동시에 생겨난 존재이면서도 제가 스스로 만들어 부른 첫 이름인 셈이죠. ‘로’에게 저 자신을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이슬로’라고 정의되는 타인과 사회가 보는 작가로서의 모습, 그리고 아주 개인적인 본성 사이에서의 균형을 찾는 것에 대한 저의 태도를 이야기하려고 해요. 제 작품 안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보이는 모든 존재는 전부 ‘로’라고 정의해요. ‘로’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고 말해요. 실제로 작품 안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요.
ⓒ 캐릭터 Lo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제가 ‘로’를 통해 작품 속에서도, 또 스스로의 삶에서도 한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로’는 저 자신일 수도, 작품을 봐주시는 모든 분일 수도 있어요.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어 아무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뭐든지 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존재! 저와 제 작업을 봐주시는 분들도, 스스로의 정의에 대해 고민이 많으신 분들도 자신을 믿고 돌보며 무궁무진한 미래를 그려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시 소식을 알리는 작가님의 SNS 글에 “어른이 가도 되나요?”라는 댓글이 달린 것을 봤습니다. 아이들과 전시를 보고 왔다는 댓글도 여럿 보였고요. 작가님의 작품은 누군가에겐 동심을 누군가에겐 옛 추억을 꺼내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이 어떤 느낌을 받기를 바라시나요?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작업을 하면서 SNS를 통해 적극적인 소통을 해왔어서인지 제 작업을 봐주시는 분들 또한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요즘은 아이 엄마가 되어 아이와 함께 전시를 보시고 그 아이가 팬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어요. 제 작업 과정과 작업실을 궁금해하고, 또 어린 시절을 궁금해하는 아이들의 반응에 더 멋진 작가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돼요. 그리고 그림이 시각적으로 주는 감동과 기쁨은 세대에 상관없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감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작품을 복잡하게 여기지 말고 그 작품의 느낌을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도 어른도 똑같이요.
ⓒ Friends Friends (balance) cherry, 2022, Acrylic on canvas
벌써 올해의 반을 넘게 달려온 지금,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요?
목표나 계획은 ‘지치지 않는 것’뿐이고,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으로 가꾸고 내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 그러면 작품은 숨 쉬듯 그려내도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요? 수식어 없이도 기억되는 좋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빅이슈》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글. 김윤지 | 이미지제공. 이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