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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2 빅이슈

깡희 님과 연수 님의 공공일자리 졸업 (1)

2023.07.05

깡희(가명) 님은 내가 일하는 시설에서 제공하는 공공일자리 참여자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다. 현 참여자 중에서 단연 돋보일뿐더러 지난 수년간 공공일자리에 참여했던 여성들을 돌이켜봐도 기억에 남을 정도다. 깡희 님이 시설에서 하는 일은 주로 청소, 분리수거 같은 환경미화인데 그녀의 손길이 미치면 그곳이 어디든 눈이 시원해진다. 시설 이용 여성들이 지내는 생활실 복도도 반짝거리고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도,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시설에서 가까운 임대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가 시설로 출근했다는 건 그녀와 굳이 인사를 나누지 않았어도 알 수 있다. 사무실 창 너머로 어김없이 청소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페트병을 납작하게 만드는 소리, 뭔가를 탁탁 치는 소리, 그녀는 페트병을 그냥 버리면 분리수거 비닐을 감당할 수 없다며 발로 밟아 납작하게 만들고, 우유팩, 요구르트 용기도 씻어 물기를 말끔히 없애서 버린다. 이런 청소 소음이 옆집 주민을 힘들게 했는지 어느 날은 민원이 들어온 적도 있다. 창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너무 거슬리니 조용히 좀 해달라고.

사무실 동료들끼리는 그랬다. 도대체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분이 어쩌다,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그녀는 우리가 보기에 꽤 괜찮은 근로 기능에 비해 과거 일 경험이 많지는 않았다. 처음 시설을 이용할 때 말한 내용으로 보면 시골에서 비닐하우스 일 같은 일용 노동을 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일이 없어져 시설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실직 기간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저축액이 없었던 걸 보면 아주 적은 수입으로 생활했거나 혹은 일용 일을 꾸준히 하지는 못했나 보다고, 그렇게 짐작했었다.

ⓒ pixabay

졸업을 앞둔 깡희 님
깡희 님은 시설의 공공일자리에 참여한 기간이 길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는 점에서도 기억에 남는 분이다. 시설이 제공하는 일 중에서 하루 다섯 시간씩 15일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석 달간 참여할 수 있고, 하루 세 시간씩 20일 하는 일은 11개월 참여가 가능하다. 깡희 님은 그 두 가지의 일 유형을 모두 섭렵했다. 참여 기간도 꽉꽉 채웠을 뿐 아니라 하도 강력하게 참여 기간 연장을 요구해서 연장이 가능한 예외 사유를 찾아 더 하게도 했다. 그 예외 사유는 그녀가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거였다.

깡희 님은 깡마른 작은 체구인데도 쓰레기봉투를 번쩍번쩍 들며 일을 해내서 감동을 주다가 어느 날 불쑥 결근하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는 실무자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거나 밤에 당직하는 실무자에게 전화를 해서 정확히 할 수 없는 내용의 원망을 퍼붓곤 했다. 그럴 때 그녀는 취한 상태였고, 원망의 내용은 주로 자신은 일을 더 하고 싶고 해야 하는데 왜 자꾸 규정이 어떻고 하면서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하는지, 왜 비슷하게 오래 일하는 아무개 참여자는 그대로 일하게 두는지, 그런 문제였다. 어떤 날은 아주 노골적으로 아무개 참여자는 일도 잘하고 시설 일이 끝나면 다른 아르바이트도 구할 수 있을 정도인데 자신처럼 대인관계가 어렵고 취업이 힘든 사람과 같으냐며, 그런데도 아무개 참여자를 칭찬하더라며 화를 냈다. 그녀가 결근한 날은 그렇게 문자와 전화로 사고를 친 다음 날이었다.

얼마 전 공휴일 당직을 하던 날이었다. 조리사 선생님도 출근하지 않는 날이니 겸사겸사 이용인들에게 특식을 제공하기로 한 터였고, 메뉴는 햄버거였다. 배달 요금을 아끼려고 직접 패스트푸드점을 다녀오기로 하고는 혼자 들고 올 수 없어 함께 가자고 청한 이가 깡희 님이었다. 그녀는 청소를 하다 말고 손을 씻더니 따라나섰다. 패스트푸드점이라지만 30개나 되는 햄버거를 만드는 게 바로 되는 일은 아니어서 기다리는 동안 ‘날씨가 좋다, 근데 빨리 더워지는 것 같다’, 그런 류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갑자기 그랬다. “소장님, 저 이제 은퇴해요.”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았다. 이제 정말 시설의 공공일자리 참여를 종료할 때가 되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은퇴요? 에이, 은퇴가 아니고 졸업이죠. 은퇴는 이제 그만 일하고 쉬는 거고, 선생님은 우리 시설 일 말고 밖의 일, 더 긴 시간 일해서 생활에도 훨씬 보탬이 되는 일을 찾으려는 거니까 졸업이에요. 중학교 졸업하면 상급 학교인 고등학교에 가는 것처럼요.” 이렇게 대답했다. 그녀는 “창피해 죽겠어요. 다들 그만뒀는데 나만 오래 일해서…”라며 정말 겸연쩍고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일은 아니다, 일을 열심히, 오래하고 싶어 하는 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다만 시설의 일자리는 목적이 분명하고 기준도 분명해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선생님이 일하시는 기간에 시설이 늘 깨끗하게 유지되어 많이 감사했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녀는 시설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시설을 몰랐으면 자기는 어찌 될 뻔했냐고, 시설에서 일하면서 자기 정말 ‘사람 됐다’고 그랬다. 이제 밖의 일을 잘할 수 있을지 두렵다고도 했다. 나는 샘이 지나간 자리마다 광이 나는데 뭐가 두렵냐며, 어디 가든 칭찬받을 거라 했다. 그녀는 빨리 후임을 정해서 알려달라고, 자신이 확실하게 업무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고 그랬다. 청소와 분리수거가 힘든 일이어서 참여자를 쉽게 구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니 분리수거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모양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일에만 집중하면 마음도 편하고 좋다고 했다.

이 글은 '깡희 님과 연수 님의 공공일자리 졸업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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