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슬>과 <퍼니 우먼>(1): 웃기는 여자여, 나아가라'에서 이어집니다.
© <퍼니 우먼> 스틸/스카이맥스
‘나대지 않는’ 안전한 농담 따위
다섯 시즌이나 지속한 시리즈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슬>과 현재 6부작만 방송한 <퍼니 우먼>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기에는 무게감이나 대중적 파급력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여성이 할 일은 요리나 다림질이라고 여기는 시대에 웃음으로 현실에 대적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기에 도전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맞닥뜨리는 위협과 위험을 이겨내고, 할 수 없다고 끌어내리는 말들을 뿌리치고 시도한다.
물론 여성의 전진을 말하는 이런 드라마에도 본질적인 약점은 있다.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슬>의 밋지는 늘 꼼꼼한 옷차림과 예쁜 얼굴, 교육을 잘 받은 유대인 중산층 여성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퍼니 우먼>에서는 남성 작가인 닉 혼비가 그리는 여성의 모습이 피상적으로 느껴진다. 미인 대회 출신의 금발 바버라가 소피 스트로라는 이름을 얻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연애 사건도 뻔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의 특징인, 마지막에 여성 주인공이 대중에게 ‘사람들은 여자인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우리는 여기 여러분 앞에 있다.’고 말하는 연설 장면들은 전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이런 선언에는 울림이 있다. 술자리에서 남의 재미없는 농담에 웃으면서 맞장구치는 역할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소위 ‘나대지 않는’ 안전한 농담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검열하면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더욱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 여성이 농담하다가 실패하면 져야 할 책임이 더 크다. 그렇기에 웃기는 여자로 살아간다는 건 본인에게 위험한 도박이다. 역설적으로 사회는 이런 여자들을 제도를 흔드는 위협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슬>의 시즌 4 엔딩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밋지는 코미디언으로서 재능이 있지만 아직 현실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투지는 부족하다. 드디어 카네기홀에서 솔로 공연을 하게 된 레니를 만나러 갔을 때, 들뜬 밋지와 달리 레니는 통렬한 충고를 한다. 당신은 성공할 수 있다.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해고되더라도, 계속 일해라. 계획만 하지 말고, 일을 하라. 레니의 말에 상처 입고 거리로 나온 밋지는 눈보라를 헤치면서 걸어간다. 그때 눈앞에 나타난 광고판에는 ‘나아가라(Go Forward)’라고 쓰여 있다. 사실 그건 <고든 포드 쇼(Gordon Ford Show)>의 광고판이었지만, 밋지는 순간 이를 계시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시즌 5에서 <고든 포드 쇼>에 들어간 밋지는 일하고 성공을 이룬다.
시도한다고 다 성공하진 못한다. 또, 커리어의 성공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나아가라, 당신은 웃기는 여자이므로. 웃음의 재료는 기쁨만이 아니다, 쓰라림과 실망과 실수도 포함된다. 웃기는 여자들에 대한 드라마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실이다. 나아가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소개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글. 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