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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3

좌원상가아파트 (2) : 방치된 시간에도 토마토는 열린다

2023.07.26

이 글은 '좌원상가아파트 (2) : 방치된 시간에도 토마토는 열린다'에서 이어집니다.

뉴타운으로 덮어쓰기 된 오래된 풍경들

숨은 역사를 알기 전에도 수색로를 지날 때마다 낮게 잠긴 이 건물에 자꾸 시선이 갔다. 무작정 건물에 새겨진 시간의 자국들을 두 발로 딛고, 두 눈에 담았다. 그렇게 반백 년의 세월을 상상하다 보면 뭉뚱그려져 있던 현대사가 조금씩 얼개를 맞춰가기도 했다. 오르락내리락 이 건물의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남가좌동 일대는 가재울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풍경을 큼직하게 지워가기 시작했다. 선주민들과 이주민들이 무더기로 흩어지고 모였다.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날수록 좌원상가아파트는 점점 더 낮고 평평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곳 역시 개발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지난 2022년 10월, 좌원상가아파트의 본격적인 재개발을 알리는 기사가 쏟아졌다. 사실 좌원상가아파트는 2020년 정밀안전진단 결과 내구성 저하, 철근 부식에 의한 구조물의 손상 가속화가 우려되어 ‘시설물안전법’의 제3종시설(E등급)로 지정된 바 있다. 즉각 사용을 멈추고 다시 건축해야 하는 상태로 당장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등급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에 2020년 12월 도시재생 인정사업으로 좌원상가 재개발 사업을 선정했다. 그리고 2022년 10월, 그 원안이 최종 가결되며 본격적인 재개발의 시작점이 열린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이 건물은 2025년 말 지하 6층에서 지상 34층 건물로 재건축된다. 공동주택 239가구, 오피스텔 70호실, 공공임대상가, 체육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이곳에 어떤 사람들이 모일지는 미지수다. 오랫동안 좌원상가아파트에 터전을 잡은 사람들, 특히 권리가 적은 세입자들이 과연 일상의 지속성을 가져갈 수 있을까. 현재의 월세나 보증금과는 확연히 다른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부침 없이 마련할 수 있을까. 민간이 아닌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공공시행사로 해 공공성이 강한 형태로 재개발된다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희생되고 놓쳐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럼에도 일상에 윤을 내며 사는 사람들

2023년 6월의 어느 날, 지금의 모습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다시 좌원상가아파트를 찾았다. 지난해에 왔을 때도, 몇 달 전 왔을 때도 여전히 변함없는 오래된 풍경들. 어둡고 축축한 내부와 철근이 드러난 내벽도 그대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서 만나는 입주민이나 상가 주민들이 대부분 느슨한 환대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 재개발 지역 특유의 방어나 경계의 시선이 이곳 주민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건물에서 있었던 2008년 화재 사고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왜 상가 1층이 인도 아래로 내려가 반지하처럼 되었는지도 이곳 사람들이 들려줬다.

혹시나 해서 올라간 4층 건물의 옥상도 언제나처럼 열려 있었다. 어수선한 폐기물 사이로 연하고 푸릇한 생명들이 곳곳에 보인다. 옥상 위 옹색한 환경임에도 누군가가 정성껏 씨를 뿌리고 가꾼 텃밭. 상추와 방울토마토, 각종 채소가 성큼 줄기를 뻗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다.

텃밭을 가꾸던 60대 아주머니가 한번 먹어보라며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 두 개를 톡 따서 건넨다. 빨갛게 익은 열매 위로 가재울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겹친다. 낮게 웅크린 건물에서 반질반질 일상에 윤을 내는 사람들. 방치된 시간에도 삶은 계속되고 토마토는 열린다.

소개

김선미
서울 북아현동에서 기획 및 디자인 창작집단 포니테일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단행본 <친절한 뉴욕>, <친절한 북유럽>, <취향–디자이너의 물건들>, <베이징 도큐멘트>를 썼으며 한겨레신문, <샘터> 등에서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1930년대 한국 근대 잡지에 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다.


글. 김선미 | 사진. 양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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