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구에 큰일이 난 걸 인정하자 (1)'에서 이어집니다.
나 하나가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네?
과학자들의 주장과 제시된 증거 앞에서 딴청 부리던 기후 부정론자들도 지금같이 잦고 심한 기상이변과 실존하는 고통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 인식이 바뀐다고 즉시 그 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우리 일상을 바꾸려면 기후변화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양철북, 2022)의 저자 리베카 헌틀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부정의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자신도 그런 시기를 거쳤다고 고백한다. “안정적인 미래(노후, 대출 상환, 상조보험)를 계획하면서도 그런 미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인정하는 셈이니까.”
부정을 거쳐 결국 상황을 받아들이더라도 수치심과 분노가 남기 쉽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언행을 낳기도 한다. 책에서 제시된 ‘대사’는 다음과 같다. “대기업과 비교하면 제가 끼치는 영향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중국인들은 어떤가요?” 나 역시 기사나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들을 통해 비슷한 말을 접했다. “아무도 심각성 못 느껴서 저도 그냥 막 쓰고 막 살려구요 ㅋㅋ 조별과제 ㅈ망.”
공포와 절망 역시 방어적 행동을 부른다. “어쨌든 이제 너무 늦었어.”라고 말하며 집단행동에 가담하거나 역경에 맞서 사회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이들을 멸시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방어적 언행을 보면 속이 터지겠지만… 저자는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불러오는 저항을 이해하며, 긍정적인 감정을 자극하도록 애써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한 감정은 연민과 자부심, 희망과 사랑이다. 예컨대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보다는 친환경적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을 기대하는 것이 더 큰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좋아하는 말을 소개한다. “고도로 발달한 거지는 환경운동가와 구분할 수 없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아서 C. 클라크의 명언을 패러디한 이 말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면, 돈을 아끼기 위한 행동을 하면서 친환경적 선택을 했다고 자부심 느끼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이 가능하다!
높은 환율과 값비싼 비행기표 때문에 올해는 해외여행을 안 가기로 했다고? 차량 구매비와 유지비가 걱정되어 자가용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배달 음식에 추가로 소비되는 비용이 아까워 직접 가서 포장해 왔다고? 절약을 위해 새 상품을 사기보다 중고 거래를 한다고? 매일 나가는 커피값이 아까워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회사의 커피 머신을 이용한다고? 가끔은 걸어갈 수 있는 동네 시장에서 재료를 사 와 밥을 해 먹는다고? 비싼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먹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자.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실천을 한 셈이니.
앞선 행위는 내게도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름대로 친환경적 실천을 한 날이라도 자부심보다 죄책감을 느끼기 더 쉽다. 일상 곳곳에 얼마나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가. 나는 물티슈의 편의성 앞에 너무 쉽게, 자주 무릎 꿇는다. 샴푸바와 천연 수세미를 사용하다가 불편해서 때려치운 뒤 이제는 거들떠도 안 본다. 텀블러를 깜빡한 날 일회용 컵을 이용한 적도 빈번하다. 데이터센터를 가동하는 에너지를 위해 화석연료가 펑펑 쓰이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터넷 헤비 유저이며, 에어컨을 못 참고 켜버릴 때도 (올해 특히) 많았다. 게다가 줄여보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고기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보려 한다. ‘너무 늦어서 돌이킬 수 없다’거나, ‘다 망했다’고 포기하고 남 탓만 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바에는 일단은 할 수 있는 수준의 실천을 하고 그런 자신을 칭찬해주는 편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좋다고. ‘완벽하지 않을 바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보다는 하루 한두 가지라도 친환경적 선택을 하는 편이 낫다고. 조별과제 포기하지 말자고!

ⓒ Pixabay
그래 예를 들면, 골프 대신 탱고를
리베카 헌틀리는 책의 후반부에 이런 화두를 던졌다.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다가올 역경과 비극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떠올려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에게는 휴가 때 미국이나 유럽, 발리를 여행하는 것보다 호주 산불 피해 지역에서 돈을 쓰고 탄소배출량을 적게 유지하고 아이들에게 호주의 자연환경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이 우선이다. (…) 미래의 일부라고 당연시했던 것을 포기하는 연습은 좋은 습관이 될 것이다. 불가피하게 적응해야 할 때를 대비하는 데 말이다. 이는 최선을 희망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일이다.”
나 역시 어떤 생활양식은 포기하거나 절제하거나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그중 하나를 강조하려 한다. 골프이다. 지난 7월 스페인의 환경운동가들이 야밤에 여섯 개 지역 골프장에 몰래 들어가 홀에 흙을 메우고 묘목을 세운 뒤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일이 있었다. 모목 옆에는 “가뭄 경고, 기후정의를 위해 골프장을 폐쇄함.”이라는 글귀가 적힌 팻말을 세웠다. 기후변화로 스페인이 역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음에도 골프장들이 푸른 잔디를 위해 막대한 양의 물을 쓰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이들에 따르면 스페인 전역 400여 개 골프장에서 날마다 사용되는 물의 양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두 도시의 물 사용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인근 지하수나 하천의 수자원을 끌어 쓰는 행위가 가뭄을 악화시키기 쉽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라고 볼 수 있는 문제다.
다른 문제도 있다. 골프장의 지속적인 잔디 관리를 위한 농약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건설 과정에서도 기후위기를 심화한다. 골프장 건설을 위해서는 산과 숲을 갈아엎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탄소를 포집하고 대기오염을 정화하는 나무가 대량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골프가 삶의 낙인 사람들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현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졌다면 가급적 골프장 이용을 줄이고, 가능하다면 궁극적으로 다른 취미활동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탱고를 제안한다. 골프를 즐기는 이들에게 탱고를 권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화에 더 자세히 풀어보려 한다.
소개
최서윤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게임 <수저게임>, 영화 <망치>를 만들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 <미운청년새끼>(공저)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monthlying
글. 최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