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드라마 <봄밤> 웨이브 스트리밍 캡처 화면
평양냉면을 먹으며 여름이 왔음을 실감하듯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드라마 <봄밤>을 정주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방영 시기가 가을도 아니었거니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중 배경도 늦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가을’ 하면 흔히 떠올릴 법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봄밤>이 결말이 나고도 한두 달 뒤인 9월쯤 뒤늦게 <봄밤>에 빠졌기 때문일까. 다른 드라마에 비해 한 톤에서 두 톤 정도 어두운 화면(연출을 맡은 안판석 피디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더라.)과 재즈 느낌의 OST는 사람을 괜히 ‘센치’해지게 만든다. 여주인공 정인(한지민)의 직업이 사서라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정적인 느낌이라 보는 나마저 차분해진다. 남자 주인공 지호(정해인)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불 꺼진 세탁소에서 지호와 정인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외에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는 <달콤한 나의 도시>, 완연한 여름엔 <괜찮아, 사랑이야>, <롱 베케이션>, 여름의 끝 무렵엔 <질투의 화신>….(사계절을 모두 나열했다간 한 페이지를 꽉 채울 듯해 이만 줄인다.) 이 중 몇몇 드라마는 닳을 정도로 돌려봐서 대사를 다 외울 지경에 이르렀는데, 장난이 아니라 주인공이 이다음에 어떤 대사를 내뱉을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 가능하다. 따로 시간을 내서 보는 것은 아니고, 출근 준비를 할 때나 자기 전에 영상을 틀어놓고 이를 백색소음 삼아 할 일을 하곤 한다.
오늘 아침, 알람을 끄려고 이불 밖으로 팔을 뻗었다가 피부에 닿는 공기가 차가운 것을 느꼈다. 조금만 더 이불 속에 있고 싶은 느낌은 오랜만이라 반갑기까지 했다. 낮에도 반팔 차림이 추운 것을 보니 이제 정말 <봄밤>을 정주행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유독 짧게 느껴지는 가을이 다 가버리기 전에 정인과 지호의 세탁소 장면을 보려면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지도.
글. 김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