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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인터뷰

강민선 작가, 전 도서관 사서 (2)

2023.12.08

이 글은 '강민선 작가, 전 도서관 사서 (1)'에서 이어집니다.

ⓒ 플랫폼P 공용 오피스

계속 책 곁을 떠나지 않고 일하는 원동력도 궁금해요.
인생에서 책을 벗어난 적이 한순간도 없는 것 같아요. 책이 저에게 원동력이 되어준 게 아닐까 해요. 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읽기만 하는 것과,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은 또 다르잖아요. 요즘은 글쓰기가 잘 안 될 때 많이 쓰려고 애쓰지 말자고 다짐해요. ‘하루에 한 줄이라도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쓰자.’ 언젠가부터 분량에 대한 욕심을 지우고 나니까 좀 더 편하게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도서관과 집, 카페를 거쳐 공유 작업실인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를 이용하면서 느낀 공간과 창작의 연결성도 궁금해요.
창작자에게 공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글을 쓰는 동안 필요한 공간은 딱 한 평이면 충분하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공간이 찾느라 방황을 오래 했어요. 집에서는 편안함을 느끼지 못해서 어딘가 나만의 공간을 찾을 때 때마침 도서관이 곁에 있어주었죠. 도서관을 다니다가 돈을 벌면서부터는 카페에도 갈 수 있었고, 책을 만들면서부터는 플랫폼P까지 이용하게 되었는데, 얼마 전에 계약이 끝났어요. 그래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제 생각을 넓혀나갈 수 있는 조용한 곳을 다시 찾고 있습니다.

플랫폼P에서는 어떤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는 평소에 사람들과 밀접하게 교류하지도 않고 쉽게 친해지는 성향도 아니에요. 그래서 플랫폼P에 입주하고 나서도 주로 혼자 작업했거든요. 그러다가 플랫폼P가 사라질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포구청 앞에서 플랫폼P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위에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낀 것 같아요. 동료들과 연대한다는 건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출판문화 개선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고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해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상적인 도서관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어떤 제약이나 차별도 없는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 이상적이겠죠. 사실 지금의 도서관은 이미 그렇거든요. 도서관은 모두를 위한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도서관을 운영하기 때문이에요. 도서관에 가보시면 ‘나를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강민선 작가, 전 도서관 사서

이용자들은 도서관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까요?
혹시 도서관에 아직 안 가보셨다면, 집 근처 도서관에 꼭 가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도서관 건물은 이렇게 생겼구나, 우리 집에서 거리가 이 정도 되는구나, 가는 길이 이렇구나 하고 느껴보세요. 서가 사이도 거닐어보고, 어떤 사람들이 도서관 안에 있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과 행사를 소개하고 있는지 훑어보세요. 도서관을 산책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아마 도서관에 대해 알게 될 거예요.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원하는 책도 읽고 몸도 쉴 수 있는 곳이 동네에 도서관밖에 없다는 것을요.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도서관이 각자의 삶에 스며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더 이상 사서는 아니지만, 도서관에 기대하는 바가 있나요?
도서관이 이상적인 공간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힐 때도 있어요. 특정 시민 단체에서 젠더와 인권을 다룬 도서의 퇴출을 요구하는 일도 있고요. 예산을 줄이는 바람에 작은 도서관이 문을 닫기도 하고, 도서 구입비 감소로 이용자는 희망하는 책을 다 보기 어려워요. 도서관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사서가 부당하게 해임되거나 그만두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이런 와중에서 도서관을 아끼는 분들이 그만두지 않고 계속 남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힘든 상황일수록 재밌는 반전을 꿈꾸는 도서관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끝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도서관을 처음 찾은 것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한 평의 공간이 필요할 때였어요. 거기 앉아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던 시절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것 같아요. 물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만큼은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저와 같은 마음으로 지금도 도서관을 찾는 분이라면 이 말에 공감하실 것 같아요.

강민선 작가의 책 추천 |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읽기 좋은 책

<서울사람처럼> 임유청 지음, 주로 펴냄

서울에서 나고 자라 살고 있지만 아직도 서울이 낯설고 힘들 때가 있어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 들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떠밀려 갈까 두려운 마음을 이 책이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았어요. 대도시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느끼는 고독이나 무기력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도 정리하게 해준 책입니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레제 펴냄

지금은 추운 겨울이지만 지나온 여름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에요. 좋았던 일들과 슬펐던 일들, 혹은 그냥 모른 채 마음속에 묻고 사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책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 멈출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다가 저는 양화대교를 걸었어요. 책과 함께 선유도공원을 산책하며 하늘과 나무를 보고 돌아온 기억이 나요.

소개

정규환
에디터. 도시 생활자를 위한 팟캐스트 ‘개인사정’을 만들며, 삼각지에서 동료들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사무소 ‘GLG’를 운영 중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개와 함께 알콩달콩 살면서 2024년엔 무슨 일을 할까, 누구에게 기쁨을 줄까 궁리하고 있다. @kh.inspiration

이규연
바쁜 일상 속 반짝이는 찰나를 담는 사진작가. 편안하고 차분한 사진을 좋아하고,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이렇듯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여러 가지 경험과

감정을 다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정규환 |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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