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의 관찰 카메라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타인의 사생활이 전하는 자극에 익숙해질수록, 점점 더 농밀한 진실성을 원하게 되었다.
남의 연애사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커플 유튜브가 꾸준한 관심을 받는 데도 더욱 자극적인 진실성을 추구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자신의 일상을 담은 콘텐츠가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에게 주변의 어떤 지인보다 강렬한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몰입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시대. 유튜브 안에는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썸, 연애를 담은 커플 유튜브가 자연스레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며 가족 유튜브를 꾸리는 경우도, 혹은 누구보다 사이좋던 두 사람이 헤어짐이나 이혼을 경험한 뒤에 진흙탕 폭로전을 펼치며 서로의 불륜, 폭행 등을 고백하는 경우까지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남의 연애가 존재한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커플 유튜브의 세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영상으로 배우는 남녀의 심리, 사랑하고 사랑받기 어려운 시대의 대리 만족, 혹은 단순한 남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 그 어떤 것이든… 오늘은 연애(희망 편), 잠들어 있던 연애 세포를 자극하는 유튜브 채널 네 개를 소개한다. 이왕이면 아름답고 행복한 쪽으로.
글. 김희진
<인생 녹음 중>
그야말로 유튜브 세상에 혜성처럼 등장한 채널. 2023년 10월, 첫 쇼츠 영상을 올린 이후 2024년 5월 현재, 단 15개의 영상만으로 8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게 되었다. 부부의 일상을 녹음한 오디오에 귀여운 애니메이션을 입혀 업로드되는 영상이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콘셉트, 유쾌한 티키타카, 아내의 뛰어난 노래 실력 등의 요인으로 알고리즘을 타며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실제 모습이 등장하지 않기에 영어 발음이 좋은 것을 보니 영어 원어민 같다, 노래 실력을 보니 음악 업계 종사자 같다 등 인기와 비례하는 다양한 추측이 존재했지만, 스스로 밝힌 정체(?)는 결혼 7년 차의 평범한 사무직에서 일하고 있는 부부라는 점. 하지만 이 둘의 대화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난다. 운전하는 남편의 옆자리에 앉아 졸음이 오지 않도록 노래를 불러주는 아내와 익숙한 듯 추임새를 넣으며 동조하는 남편의 일상은 그 어떤 정책이나 캠페인보다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결혼 장려 영상이라 할 만하다.
<다나나>
연애 12년 차를 맞이한 레즈비언 커플. 오랜 시간 함께한 장수 커플의 편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달달함이 가득 묻어나는 애틋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어떤 순간, 어느 장소에서든 유쾌한 태도로 이목을 끄는 극외향인 경은과 오직 애인 앞에서만 무장해제가 되는 듯한 극내향인 하나. 서로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 ‘누군가를 저만큼 사랑해본 적이 있나?’, ‘누군가에게 저만큼 받아들여져 본 적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연애담에 끌려 채널을 보기 시작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삶을 마주하는 그들의 태도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옥탑방에서 하루 2000원만 쓰며 살 정도로 힘든 시절을 함께 겪었지만 이제는 번듯한 아파트에 포르쉐를 소유할 만큼 치열하게 일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모습,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하며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랑스러움은 건강 문제로 2년여의 휴식 기간을 가질 때에도 끊임없이 그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며 기다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은수 좋은날>
스물여섯 살에 청각장애를 앓게 된 은수와 스웨덴인 남자 친구 루카스, 애칭 룩하가 한국과 스웨덴을 오가며 연애하는 모습을 닮고 있는 채널이다. 스웨덴어를 못하는 은수, 그리고 한국어를 못하는 루카스는 두 사람 모두에게 제2외국어인 영어로 소통한다. 하지만 한국어의 경우, 보청기의 도움을 받은 청력에 더해 입 모양을 읽으며 이해할 수 있는 데 반해 영어는 듣기가 잘 되지 않는 은수를 위해, 은수는 영어로 말하고 루카스는 스마트폰 메시지로 대답하며 소통하곤 한다. 국경, 장애, 언어 모든 것을 뛰어넘은 그들의 사랑이지만 이러한 배경에 대한 유난스러움 없이 조용하고 담담하게 흘러가는 편안함이 가득하다는 점이 이 채널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채널 주인인 박은수가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으로서 다양한 정치 활동을 한 경력이 있다는 점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와 동시에 이런 사람이 정치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보며 국경, 장애, 언어 등에 대한 무의식적인 스테레오 타입을 기준으로 세우듯 정치인은 이러이러할 것이다, 라는 편견 또한 내 안에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Tacosama 타코사마>
일본인 남자 친구 타코와 한국인 여자 친구 혜진의 일상을 담고 있는 채널. 캐나다 어학연수에서 처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처음에는 영어로 소통했지만 점차 서로의 언어인 한국어와 일본어를 배워가며 이제 세 개의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각자의 나라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담아내곤 했었는데 이후 혜진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심지어 남자 친구는 함께 살지 않는 그의 부모님 집에 하숙을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게 되었고 이 모든 과정이 유튜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리즈는 혜진이 코타의 부모님 집에 사는 동안 촬영한 영상. 허당미 넘치지만 친절하고 다정한 어머니와 그 성격을 꼭 닮은 남자 친구, 무뚝뚝해 보이지만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닌 아버지, 천진난만한 조카들, ‘귀엽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낙천적이고 쾌활한 가족의 일상과 그 속에 조금씩 스며들어가는 혜진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한 즐거움과 훈훈함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