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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5

서울의 심연 - 어느 청년 연구자의 빈곤의 도시 표류기

2024.07.25

<서울의 심연> 탁장한 지음, 필요한책 퍼냄, 2024

〈서울의 심연〉이라는 책이 편집부로 날아왔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서울의 도시 빈민, 쪽방촌, 빈곤 밀집 지역을 연구한 탁장한 연구자의 책이었다. 서울의 빈곤 밀집 지역을 연구하던 저자는 서울의 동자동 쪽방촌에서 집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그가 연구자로서 조사해온 내용과 실제 현장에서 살며 체험한 내용은 상당 부분 겹치기도, 또는 다르기도 했다. 가난을 연구자가 체험한 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쪽방촌의 삶과 빈곤을 전부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의 거대한 빈곤 밀집 지역은 어느 개개인의 탓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빈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인 의료, 노동, 생활 전반에 이르는 일들도 사회 모두가 고민해야 할 딜레마다. 이미 한 권의 저작물로 나와 있는 저서의 쪽방촌 부분을 《빅이슈》의 연재물로 수록하기로 한 이유도, 좀 더 이 현실을 많은 독자들이 이해하고 알았으면 해서다. 첫 글은 쪽방촌에 입주하는 과정과 그곳의 건물주에 관한 내용이다.


글. 탁장한

창신동 쪽방 내부 스케치 (사진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입주

쪽방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직접 쪽방에 돌아다니며 빈방이 있다는 벽보를 보고 연락하는 방법이다. 쪽방촌에 지인이 있는 사람은 방이 남아 있는 건물에서 방의 상태나 평판이 덜 나쁜 곳을 주선받기도 한다. 지인 본인이 거주하는 건물에 빈방이 있으면 그곳을 소개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다른 하나는 부동산을 통해 구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쪽방은 주택 시장에 포함되지 않는 매물이지만 동자동에는 쪽방을 중개하는 대표적인 부동산이 두 곳 있다. 물론 근처 후암동의 부동산을 통해 진입한 사례들도 있다. 부동산은 종종 빈방이 있다고 벽면에 고지하며, 오래 살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쪽방 중에서도 부동산이 위치한, 공인중개사(이하 중개사)가 관리인인 건물 또는 중개사와 친하게 지내는 관리인의 쪽방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쪽방을 직접 구하는 일을 힘들어 하거나 발품을 파는 과정에서 빈방이 없을 때 이 방법이 활용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을 구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복비가 기본 10만 원이라는 점이 진입 장벽이다. 그래서 때때로 빈방이 있다는 벽보를 붙이는 건물주들은 부동산 없이 세입자와 서면으로 직접 계약함으로써 양쪽의 복비를 절약한다.

마지막 방법은 쪽방상담소를 통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저렴쪽방에 입주하는 방법이다. 저렴쪽방은 매년 인상되는 쪽방 월세의 인하 또는 인상 억제를 유도하여 거주자의 주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된 정책이다. 이 방법은 쪽방을 처음 구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나, 대부분 쪽방상담소에 회원으로 등록된 거주자가 이주하고 싶을 때나 쪽방에 일세로 머무르던 사람이 기관에 등록하고자 할 때 사회복지사와의 상담을 통해야 가능하다. 저렴쪽방은 2023년을 기점으로 점차 마무리되어, 쪽방상담소를 통해 쪽방을 구하는 방법은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이 동네는 술 중독자들이 널브러진 곳이예요. 청년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여기 와서 배울 게 없어. 웬만한 담력 없으면 그냥 돌아가요.”

쪽방을 구하려고 부동산에 들어가면 중개사는 육안과 목소리의 식별을 통해 방문객의 빈곤층 여부를 순간적으로 구분해 낸다. 그는 상대가 빈곤층이 아니라고 감지하면 ‘일반인’이 왜 이곳에 들어오려는지 특유의 검문을 실시한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쪽방 체험’을 위해 잠입하는 기자들의 방문이 잦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개사는 그런 기자에게는 잠시 머무르려는 목적에 부합하는 가장 극단적으로 열악한 쪽방을 의도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쪽방촌이 낭만적 공간이 아님을 역설한다. 정말 가난하기 때문에, 돈이 없어 여기밖에는 갈 데가 없을 때 와야 하는 동네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쪽방촌의 안팎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즉 쪽방촌은 스스로 지독하게 가난하다는 의도를 몸으로 입증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된다. 또한 중개사는 살 만한 공간은 지불할 돈이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빈곤층에게는 살 만한 공간을 아예 보여 주지 않는다.

쪽방 거주자들도 신규 입주자가 ‘노숙인’ 혹은 ‘빈곤층’처럼 보이지 않을 때, 이방인에 대한 경계 혹은 의심의 태도를 취하곤 한다. 특정한 의도가 없다면 일반인이 쪽방촌에 이주하리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밤낮을 막론하고 동네를 배회하는 거주자 선미진은 “이 동네는 평화로워 보이나 속내는 썩어 문드러져 있고, 알수록 무서운 거지 동네”로 쪽방촌을 소개하며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견디기 힘든 곳, 견딜 필요도 없는 곳으로 여긴다. 각자의 이유로 가난해져서 밀려 들어온 거주자들은 이곳 생활을 경험하며 점차 쪽방촌을 험지로 이해하게 된다. 거주자 최우석은 미국의 흑백 분리와 비교하며 도심의 쪽방촌 구획을 바로 옆 초고층 주거지들과 구분되는 버려진 땅으로 자주 표현하곤 했다.

“여기 쪽방은 현대판 고려장이야. 다들 너무 슬퍼. 모두 버려진 사람들이잖아. 여기가 도시라서 바로 옆은 화려한데 그래서 사실 더 초라해.”

후암로57길 골목 ©필요한책

건물주

‘빈곤층’ 당사자가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쪽방을 직접 구할 때는 계약 과정에서 건물주 혹은 관리인과 대면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건물주와 관리인 집단에게는 세입자가 어떤 사람이든 일단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린 사람’이라고 지목하는 특유의 관행이 있다. 월세를 제때 내지 않거나 모종의 갈등으로 인한 소란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관리인이 세입자를 잘못 들이면 다른 세입자들이 견디지 못해 나가게 되고 관리인의 평판도 악화된다. 그래서 세입자는 자신이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고 소명해야 하는데, 그가 할 수 있는 입증은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는 ‘부정의 반복’뿐이다. 이때 자존심은 자신이 발품 판 결과로 그나마 원하는 방을 구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요소다. 건물주가 수행하는 이러한 스크리닝screening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는 그 쪽방을 구할 수 없다. 따라서 이미 건물주의 언어에 의해 격하된 존재를 스스로 격상시켜서 보호해야 하는데, 자존심이 발동하는 이유는 위상을 높여야 하는 작업이 그 자체로 묘하게 자신을 깎아내리는 일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쪽방은 순간적 자존심의 발동을 자제하고 자신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존재임을 끝까지 증명한 사람이 점유하게 된다.

이후 계약서 작성 과정에서 건물주는 공식 계약서와는 무관한 비공식 계약을 동시에 맺는다. 비공식 계약이란 월세를 체납한다든지 본인이 술 마시고 문제를 일으키거나 시끄럽게 군다든지 주취자를 쪽방에 들이면 언제든지 세입자에게 퇴거 통보를 내릴 것이며, 그때 세입자는 군말 없이 방을 비워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행위다. 이 내용은 계약서에 특약 사항으로 기록된 바가 아니므로 법적 효력은 없으나 점차 계약서에 기록되는 추세다.

"쪽방 건물주로 사는 거, 이거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매일마다 사건 사고지, 세입자들도 월세 제때 안 내고 고분고분하지도 않지. 누가 이 속을 알까."

전 쪽방 건물주였던 손병호의 토로다. 비공식적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월세를 떼먹고 도망치는 세입자 군상을 장기간 겪은 건물주로서는 문제 행동을 제재하겠다는 거듭된 강조가 소위 ‘상태가 덜 나쁜’ 세입자를 구해 안정적으로 월세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처럼 쪽방 계약 과정은 세입자의 ‘반복되는 자기 입증’과 건물주의 ‘반복되는 압박’ 사이의 긴장 속에서 진행된다. 단, 관리인들은 특정 거주자의 평소 행태를 직접 보고 주변의 평판을 들은 후 입증되었다고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합리적 월세에 짐을 천천히 옮겨도 된다는 등 솔깃한 조건들을 제시하며, 압박 대신 회유의 방식으로 호객 행위를 하곤 한다.

한편 동자동 쪽방 건물들에 대한 등기부등본 열람 결과, 2023년 기준으로 강남 3구에 주소지를 둔 건물주는 다섯 명이었고 건물 두 채 이상 소유주도 세 명으로 동자동 쪽방촌은 소위 ‘강남 부자’들의 투자처는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빈곤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쪽방 건물주들은 주로 근처인 동자동, 후암동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분포하고 있었다.

위의 글은 〈서울의 심연〉(탁장한 지음, 필요한책 펴냄, 2024)의 일부를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구해 수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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