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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6 스페셜

완독 아닌 책 구경부터 - 독서 모임 일끼장

2024.08.07

책 읽기, 일기, 장을 합친 말로, 책을 읽고 각자 느낀 이야기를 일기 쓰듯 공유하는 장이란 뜻의 독서 모임 ‘일끼장’. 2021년 소규모 독서 모임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총 72명의 멤버와 함께해왔다. 책이 너무 좋아서, 대화하고 싶어서, 책을 전혀 읽지 않아 한번 읽어보려 방문하는 이들까지 독서 모임 멤버들의 성향도 다양하다. 운영자인 백지원, 이가희, 이지수 씨는 이 모임을 변화무쌍하게 가꿔나가고 있다.

책 속에서 재미를 찾고, 책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재미를 찾는 독서 모임의 나날은 어떻게 흘러갈까. “서점에 가면 모르는 책보다 읽었던 책이 훨씬 많아졌다.”는 세 사람의 신기한 경험에 귀를 기울여보자.


글. 황소연 | 사진제공. 이가희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날까지, 운영진은 여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일끼장에는 세 가지 세션이 있고,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정규세션’은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 모임을 진행하는 메인 세션. ‘편독세션’은 세 사람이 번갈아 모임을 기획한다. ‘이벤트세션’은 토론보다는 책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한다. 책은 참여하는 이들의 자율 추천을 받아 투표로 정해지거나, 진행자가 테마에 맞춰 선정한다. 독서 모임을 확산하기 위해 세 사람은 모임 콘셉트와 홍보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기획한 모임의 타깃층을 고려해 홍보물을 디자인하고 홍보 플랫폼을 정하는 것까지 모임 준비에 포함된다.

책을 읽고 참여자를 모을 뿐 아니라, 논제를 공유하고 리마인드시키며 참여를 이끄는 것까지 운영진의 역할이다. “모임 전까지 이탈자를 막기 위해, 책에 집중하고 완독할 수 있는 사전 활동도 진행해요.” ‘기록’을 주제로 했을 땐 어떤 도구를 활용해 무엇을 기록하는지 사진을 찍고 코멘트를 덧붙이는 활동을 하는 식이다. 이러한 기획을 위해 세 사람은 모임 전까지 책의 내용을 되짚는다. 기획 단계에서 책을 한 번 더 읽으며 책의 소구점을 찾고,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을 논제를 발굴한다. “책을 통해 타인과의 접점을 찾고자 고민한다.”는 게 백지원 씨의 얘기다.

왠지 어려울 같지만, 막상 해보면 다르다

독서 모임이라고 하면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하고, ‘유용한’ 내용을 적어두어야 할 듯한 부담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세 사람은 책을 어떻게 읽고 기록할까. 이가희 씨는 거창한 감상을 적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책 한 권을 읽고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고 하시는 멤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저도 그랬는데, 남는 걸 만들고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다니는 여러 생각들을 그대로 종이 위에 적기 시작했어요.” 인상 깊은 문장도 옮겨 적으면서 기록하면 책 내용이 오래 기억난다. 그래서 일끼장의 정규세션에선 ‘필사 공유’가 필수 활동이다. 어플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 이지수 씨는 책을 리스트 형태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독서 어플 ‘북적북적’을 사용한다. 모두 책에 몰입하기 위한 방법이다.

모임을 통해 책을 읽는 것 외에 다른 활동이 새롭게 연결되기도 한다. 이 역시 책을 어렵게 느끼지 않고 재밌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장치다. 새벽반에서 토론 시작 전 명상 시간을 갖거나 드레스 코드가 있는 독서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이러한 기획은 책을 즐겁게 읽는 경험을 추구하기에 탄생한 아이디어다. “모임 주제가 ‘취향 있는 삶’과 ‘쇼핑’이었고, 다룰 이야기 중 하나가 ‘자아가 투영된 쇼핑’이었어요. 이 주제에 맞게 ‘나를 표현하는 옷’을 드레스 코드로 정했습니다.” 길게는 1년 넘게 책을 읽고 만나는 모임에서 책뿐만 아니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 역시 참여자들이 위안을 느끼는 지점이다.

작은 규모에서부터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독서 모임을 4년여간 이끌기까지 있었던 인상적인 경험을 물었다. 세 사람은 참여자들이 계속 모임을 신청할 때 느끼는 뿌듯함에 대해 입을 모았다. 책을 전혀 읽지 않았던 이들이 일끼장을 통해 책 읽는 재미를 느끼고, 다수 앞에서 말하는 걸 어려워했던 이들도 본인의 의견을 거침없이 낼 때 보람차다는 것. “스스로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행복했어요.” 독서 모임을 운영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이가희 씨의 얘기다.

함께 읽을 때만 생기는 놓칠 없는 경험

책을 꼭 혼자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이들이 독서 모임을 오랜 시간 이끌며 함께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 백지원 씨와 이지수 씨는 그 이유가 디테일에 있다고 짚었다. “혼자서 읽었을 땐 굳이 이 책이 왜 좋았는지 상세히 정리하지 않았는데, 같이 읽게 되면서 단순히 좋고 싫고를 넘어 ‘왜’ 좋았는지 생각하게 돼요.” 같은 문장을 보고 타인과 나의 차이를 인지할 때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 좋다는 것. 이 과정을 거치면 책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이가희 씨는 책을 어려워했던 이들도 ‘읽어야 해서’가 아니라 ‘읽고 싶어서’ 읽게 되는 게 독서 모임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백지원 씨는 지난 독서 모임에서 읽은 〈도둑맞은 집중력〉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종이 위의 단어를 향해 바깥으로 기울었다가, 그 단어의 의미를 향해 내면으로 기우는 것을 오가는 매우 독특한 상태’. “저자가 독서를 표현한 구절인데요. 책을 읽으면 나를 좀 더 들여다보고 몰입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좋아요.”

쇼츠, SNS 가득하지만책이 있는 따로 있다

애서가 세 사람에게 책에 집중할 수 있는 팁을 물었다. 답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독서를 편안한 행위로 만들라는 것. 이가희 씨는 조용한 카페처럼 나만의 독서 공간을 찾을 것을 권했고, 백지원 씨와 이지수 씨는 책 읽는 시간에 대한 팁을 전했다. 시간 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게 어렵다면 차라리 책 읽는 호흡을 짧게 가져가라는 것. 전자책 리더기 등 자신의 독서 습관에 적합한 물건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책보다 재미있는 게 많다는 의견이 ‘중론’인 세상이지만, 이지수 씨는 책에 다른 콘텐츠로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본다. “영화나 짧은 영상 콘텐츠는 보는 이의 상상력에 한계를 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책은 주인공의 말투, 생김새, 옷차림 등 내가 원하는 대로 상상할 수 있고 이 모습이 각자 다르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죠. 서로가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자리가 생각보다 흔치 않아요.” 독서 모임은 이런 열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장이 된다.

만화책, 동화책, 시집 좋다, 시작은 부담 없는 책으로

독서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은 분명 서점에 가는 것도, 책을 집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때는 ‘찍기’와 가까운 본능적인 선택이 중요하다. “처음엔 생각을 비우고 옷 가게에 가서 예쁜 옷을 고르는 것처럼 책을 골라보세요. 표지가 맘에 들거나 제목이 끌린다거나, 그냥 손길이 가는 책을 하나 골라서 읽는 거죠.” 그러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 벌써 흥미가 떨어진다면 또 다른 책을 고르면 된다는 게 세 사람의 조언이다. “책 한 권을 완독할 생각으로 읽기보다 책을 구경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시는 걸 추천해요. 만화책, 동화책도 좋죠.”

마지막으로 세 사람은 뭔가를 느끼거나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기를 강조했다. “그냥 읽다 보면 책 읽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점차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게 돼요. 나에게 가장 좋은 책은 남들이 좋다고 한 책이 아니라 나에게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책에는 정답이 없고, 독서는 자유로움과 가깝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일끼장 인스타그램

@ilkki_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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