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326

쪽방에 삽니다 - 서울의 심연 (2)

2024.08.12

동자동 쪽방촌 골목에서 바라본 고층 빌딩 ⓒ필요한책

〈서울의 심연〉이라는 책이 편집부로 날아왔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서울의 도시 빈민, 쪽방촌, 빈곤 밀집 지역을 연구한 탁장한 작가의 책이었다. 서울의 빈곤 밀집 지역을 연구하던 저자는 서울의 동자동 쪽방촌에서 집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그가 연구자로서 조사해온 내용과 실제 현장에서 살며 체험한 내용은 상당 부분 겹치기도, 또는 다르기도 했다. 가난을 연구자가 체험한 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쪽방촌의 삶과 빈곤을 전부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의 거대한 빈곤 밀집 지역은 어느 개개인의 탓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빈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인 의료, 노동, 생활 전반에 이르는 일들도 사회 모두가 고민해야 할 딜레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쪽방에 살면서 만난 풍경을 이렇게 함축한다. “쪽방촌에 거주하면서, 지속되는 고통에 적응하기 위해 도시 빈곤층이 수행하는 다양한 행동 양식을 접하고 학습했지만 여전히 빈자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들이 주체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부득이하게 발현시키는 의존적 태도도, 자주 저지르는 부정도, 이웃 간 협력과 혐오도 모두 좋다. 나였어도 극한의 상황이라면 그렇게 살았을 것이며, 실제로 쪽방에서 그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감내하는 고통은 어떤 이유로든 좋아질 수 없었다. 내가 만났던 200여 명의 쪽방 거주자들 중 그 누구도 그곳이 자기 인생의 종착역이 되기를 바란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쪽방촌을 회고할 때면 항상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묘한 양가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저서의 쪽방촌 부분을 《빅이슈》의 연재물로 수록하기로 한 이유도, 좀 더 이 현실을 많은 독자들이 이해하고 알았으면 해서다. 두 번째 글은 쪽방 관리인과 세입자에 대한 글이다.


글. 탁장한

관리인

대다수의 쪽방 건물주들은 쪽방에 직접 거주하며 관리하지 않고 세입자와의 사이에 관리인을 둔다. 관리인은 기본적으로 월세를 징수하고 전구 교체 등 사소한 건물 관리를 하며 입주민의 요구 사항과 민원을 건물주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엄격한 관리를 건물주가 요구하면 관리인은 만만한 또는 예의 바른 세입자에게 주민 상대, 민원 처리, 수리, 월세 수금 등의 관리를 무급이나 푼돈으로 맡긴다. 관리인은 그에게 발생 비용을 청구하라고 하거나 월세를 그만큼 제하고 받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결국 고용된 관리인은 자신이 맡은 일을 대신해 주는 거주자를 편애하며 크게 노동하지 않고도 급여를 받는다. 이로써 쪽방촌에 출퇴근하는 생업으로서의 관리인 직종이 존재하고 잡일은 특정 거주자들이 주로 하는 구조가 생성된다. 대신 관리인의 신임을 얻은 거주자는 가끔 빈방에 대한 권한을 가지는 등의 특혜를 얻는다.

층마다 건물주가 다르거나 여러 건물주가 한두 층씩 나누어 소유한 복잡한 쪽방 건물들도 있어, 하나의 건물에도 관리인이 둘 또는 셋인 경우도 존재한다. 매달 월세만 잘 들어오면 되는 건물주는 쪽방촌에 거의 출몰하지 않고, 대체로 내부의 비인간적 공간에서 세입자들이 어떻게 힘들게 사는지에 대해 무관심하며, 관리인이 세입자들에게 어떤 일을 하든 관여하지 않는다. 어떤 건물 관리인은 ‘화장실 휴지통에 개인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적발 시 공개 망신을 주는 동시에 버리는 사람 방에다 휴지통을 쏟아 버릴 테니 버리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하시오’라고 면박을 써 붙여 예고함으로써 모욕을 세입자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행위로 해석하기도 했다. “짐승이 아닌 인간처럼 살자”는 관리인들의 경멸은 쪽방이라는 부적절한 환경을 개인의 과실로 덮는다.

쪽방촌에서 관리인은 건물주가 고용한 유급 관리인으로 쪽방이 아닌 별도의 방에 근무하며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건물주·유급 관리인의 허드렛일을 도우며 쪽방에 무료로 혹은 할인받아 거주하는 사람들로서 주로 기초생활수급자로 구분된다. 최근 빈곤 비즈니스의 한 축으로 건물주와 함께 비판받는 관리인 집단은 관리를 업으로 삼는 전자 집단이다. 반면 후자의 빈곤층 관리인 집단은 표면적으로는 거주자 사이에서 동질하다고 인정받으며 쪽방상담소(사회 복지 시설)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건물주와 관리인에게 적대적인 사랑방(사회 운동 단체)에도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빈곤층 관리인 김근식은 한 세입자가 겨울철 히터를 틀어 전기 요금에 누진세가 적용되자 월세를 1만 원 올리려는 건물주와 대면해 험악하게 싸웠지만 결국 인상을 막아 낼 수 없었던 세입자였다. 해당 건물 거주자 노영배는 이때 관리인과 세입자 간에는 돈독한 관계가 생긴 반면 히터를 틀었던 세입자는 다른 세입자들의 온갖 눈초리를 받았다고 회상한다.

“관리인 어르신은 참 그래도 좋은 분이에요. 돈 없는 우리를 위해 앞장서서 애써 주시는 분이니까. 웬수는 오히려 옆방에 있는 사람이지. 히터를 막 틀어 놔서 우리까지 피해를 입게 하니깐 말이에요. 그렇게 행동하면 월세가 올라가잖아요. 안 그래도 힘든데.”

하지만 건물 내 사람들의 김근식에 대한 태도는 엇갈리는데, 세입자 다수는 그를 술과 무관하게 세입자를 하대하고 협박하며 함부로 욕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이에 대해 그는 술 마시고 난동부리는 사람들을 참고 참다가 제어하는 것이라고 해명한다. 그에게 가장 힘든 것은 쪽방보다도 인간들이다.

한편 기초생활수급자인 관리인들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주거급여를 쪽방 관리의 대가로 여기고 생계급여에 보태어 생활하므로 쪽방촌에서 형편이 조금 나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쪽방촌은 없어지면 안 되는 공간이다. 같은 입장인 김근식은 사랑방에서 배포한 쪽방촌 내 공공 재개발 촉구 시위 독려문을 공원에서 받아든 즉시 찢어 버린다. 용도가 자유로워진 주거급여를 놓칠 수 없는 그는 언론과 교회에 가난을 호소하면서도 어떤 개발에도 반대하며 동네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곳에서 다양한 이득을 얻는 유급 관리인 서이순도 쪽방촌이 없어지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에 동일한 태도를 지닌다. 반면 쪽방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관리하는 건물 외에는 다른 거주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빈곤층 관리인 김용대는 “우리 건물 사람들 말고는 아무하고도 얘기 안 해요. 얼른 이주비 받고 이 생활 그만하고 싶네”라고 말하며 어떤 개발이든 얼른 진행되어 이주비를 받고 동네를 하루속히 나가기를 희망한다.

세입자와 세입자

환기가 되지 않는 몇몇 쪽방 건물들에는 ‘축적된 담배 냄새와 심각한 소음 때문에 죽어간다!’는 세입자들의 절규가 곳곳에 적혀 있다. 즉 이는 건물주와 세입자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감각이다. 일부 세입자들은 빈방이 생길 때마다 건물주와 관리인을 대신해 자신들의 건물에 이주하라는 호객 행위를 수행한다. 여기에는 복잡한 심리가 숨어 있는데, 세입자들도 다른 세입자가 유입될 때 무탈히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신규 입주자의 소동은 건물주가 꺼릴 뿐만 아니라 실거주자들에게도 달갑지 않다. 따라서 누군가가 쪽방에 입주할 때면 주변 거주자들은 그에게 “조용히 살라”고 요청하곤 한다. 그리고 문제를 일으킬 경우 관리인이나 건물주에게 해당 상황을 제보해 퇴거에 일조한다.

일례로 옆방 이웃이었던 거주자 견상철과 천요한이 소음 문제로 크게 다툰 후 경찰이 출동하자, 위층 거주자 한이설의 제보로 건물주는 두 세입자 모두를 쪽방에서 내보냈고 그들은 부득이하게 근처 쪽방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세입자를 위한 건물주의 이사비 지원은 없었다. 거주자 온주환은 보상 없이 건물주가 세입자를 쫓아내는 일에 대해 다들 수긍한다고 말하는데, 일차적으로 세입자가 조용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며 내보낼 때마다 이사비를 준다면 다들 ‘프로 이사꾼’이 되어 몇 번이고 그것을 역이용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입자의 스크리닝은 단지 덜 불편하게 살고픈 기존 세입자의 희망 사항 때문만은 아니다. 세입자가 스크리닝을 자처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건물주를 대신해서 그 일을 해 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건물주의 방이 비는 상황을 세입자도 원치 않을 때가 있다. 이 사례에는 우선 건물주가 특정 종교인이라는 점이 같은 종교를 가진 세입자에게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쪽방촌에서 종교는 건물주와 세입자를 우호적으로 연결하는 매개가 되곤 한다. 동네를 배회하며 호객 행위를 하던 거주자 인지혁은 건물주가 “마치 천사와 같은 교회 권사님”이라며, “그가 잘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것이고 본인의 행위는 순전히 자발적이며 건물주의 노동력 착취가 아니”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건물주에게 협조하는 전략은 열악한 쪽방에서라도 안정적으로 살고자 하는 세입자의 생활 기반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은 속내가 있다. 방이 장기간 비어 있을 경우 보통 건물주는 불쾌히 여기며 관리인에게 쪽방에 사람을 채워 넣으라고 압박한다. 그러면 관리인은 세입자에게 소위 ‘내리 갈굼’을 하고 세입자는 불편한 상황을 견디기가 점차 힘들어진다. 그리고 건물주의 월세가 감소하면 관리비의 세입자 전가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월세에 관리비가 포함되던 쪽방은 점차 관리비를 별도로 걷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사를 할 여력이 있는 사람은 평판이 덜 나쁜 쪽방을 찾아 이주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남아서 그런 상황을 버텨야 한다.

“옛날에 여기가 사창가였을 때 포주들이 여기 사는 사람들한테 전도 부쳐 주고 그랬었지. 참 살갑게 대해 줬었어.”

최우석의 말처럼, 고령의 관리인들 중 일부는 과거에 포주이기도 했다. 이처럼 관리인은 채찍에 더해 당근책도 사용한다. 주로 남성 세입자에게 건물 앞에서의 호객 행위나 파수꾼 역할을 지시하는 관리인은 누가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을 지키는 대가로 용돈 수준의 푼돈을 쥐어 준다. 실제로 ‘내실’이라고 불리는 한 쪽방 건물의 관리인 방 앞에는 빈방에 세입자를 들이는 사람에게 수만 원을 주겠다는 공고가 붙어 있다. 집 주인인 아버지가 대여섯 채의 건물에 150개 이상의 쪽방을 가졌다고 알려진 한 관리인은 거주자 최인호가 2년의 징역살이 후 출소할 때까지 그의 짐을 치우지 않고 월세 2개월분만 내라는 식으로 인심을 얻기도 했다.

“난 이 동네랑 여기 사람들은 신물이 날 정도로 싫은데, 그래도 여기 사장님이 감방 갔다 온 동안에 제 방을 빼지 않아 준 건 진짜 고맙더라고요.”

이처럼 밀고 당기는 관계 속에서 푼돈이라도 필사적으로 받으려는 세입자의 스크리닝은 궁극적으로 건물주가 바라는 인간 군상과는 다르더라도 일단 무조건 들어오라는 방식의 권유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호객 행위를 하는 세입자는 주취 상태에서 그런 권유를 하는 등의 문제 행동으로 이미 거주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아 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도리어 그 자신이 이주자에게 스크리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위의 글은 〈서울의 심연〉(탁장한 지음, 필요한책 펴냄, 2024)의 일부를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구해 수록한 내용입니다.


1 2 3 4 5 6 7 8 9 

다른 매거진

No.327

2024.09.02 발매


결심했다, 소비와 멀어지기로

빅이슈 327호 결심했다, 소비와 멀어지기로

No.323

2024.06.03 발매


RE:VIEW POINT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