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능숙하고 미끈하게 갈고닦음을 의미한다. ‘세련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때 그것은 어딘가 잘 만들어진 동시에 매력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세련된 이들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소개할 세 팀은 다음과 같다.
글. 박현영|사진제공. 포크라노스
〈룸펜〉 산보
많은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지나간 청춘을 꼽지만, 막상 그 시기를 겪는 당사자들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시기다. 21년 겨울에 결성하여 올해 처음 데뷔작을 세상 밖에 내놓은 밴드 산보의 작품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할 것이다. 3년을 갈고닦아 만든 결과물에, 스스로를 사회 낙오자라고 일컫는 표현 ‘룸펜’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작품은 불안한 미래에도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청춘의 처지와 닮아 있다. 곳곳에는 자조적인 자기 비하가 가득 차 있다. 힘을 뺀 목소리와 날것의 연주에는 슬픔에 지쳐버린 기색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들은 멈추지 않고 메마른 내면에 숨어 있던 촉촉한 감정을 호소한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사회와 연결되고 싶은 솔직하고 직설적인 열망은, 이 시대의 싱클레어들에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충고나 위로보다 훨씬 더 든든하게 다가올 것이다.
〈유령서점〉 유령서점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이지만,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홀로 남겨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어느 명언집에 수록된 말처럼, 고독은 진정한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이자 나약함을 극복할 수 있는 순간이다. 비록 그 시간이 사무치게 쓸쓸하고 외로울지언정 말이다. 일찌감치 이 사실을 깨닫고, 묵묵함을 노래하는 밴드가 있다. 바로 ‘유령’과 ‘서점’, 신선한 두 단어의 조합으로 오싹하면서도 신비롭고 환상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밴드 ‘유령서점’이다. 탄탄한 연주 실력을 갖춘 네 명의 서점지기로 구성된 이들은 동명의 첫 미니앨범을 통해 누구도 들여다본 적 없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노래한다. 과거의 미련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 이름처럼 서늘한 서정성으로 자유를 갈망하기도 한다. 묘하게도, 유령서점이 들려주는 쓸쓸하고 먹먹한 이야기에는 애틋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들이 외로움 속에서 꿋꿋하게 지켜낸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soft meltdown〉 Leaveourtears
고독의 시간은 곧 혼자만의 고군분투와도 같다. 적막함 속에서 수많은 감정은 얼기설기 얽히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불어난다. 원맨 밴드 ‘Leaveourtears’의 데뷔작 〈soft meltdown〉이 들려주는 폭발적 사운드는, 범람하는 번뇌를 해소해줄 좋은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 파괴적인 슈게이징 사운드는 자괴감, 슬픔 등 복잡한 감정을 집어삼킨 채 천천히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관계에서 원치 않게 ‘이방인(stranger)’이 되거나, 두려움을 넘어 극강의 공포(phobia)를 느낄 때. 혹은 ‘외딴 방’에 홀로 고립되어 걱정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soft meltdown〉은 굉음에 가까운 연주로 말없이 어깨를 내어준다. 온전히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도록 뜨거운 기타 음과 함께 계속해서 팽창한다. 모든 걸 터뜨리는 강렬한 폭발음 같은 작품에서, 오히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와 평온함을 되찾게 된다.
박현영 by 포크라노스
포크라노스는 현재 가장 새롭고 신선한 음악들을 소개하며, 멋진 음악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큐레이터이자 크리에이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