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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09 에세이

리스본 라디오

2019.09.17 | 사랑이란 “보고 싶다”는 말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발걸음

다니엘 글라타우어(Daniel Glattauer) 의 소설 <새벽 세시, 바림이 부나요?> 는 이메일을 잘못 보내는 바람에 마음이 얽혀버린 남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메일로 채워져 있다. 남자 주인공 레오는 에미에게 몇 번이나 같은 글을 보낸다. “나에게로 와요, 에미. 나에게로 와요.” 라디오 드라마로 를 소개한 적이 있다. 청취자들은 답답해하며 실시간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제발 네가 가라, 레오!”

레오는 끝내 에미에게 가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로 와요. 나에게로 와요”라고 적었을 뿐.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면서 가지 않은 사랑을 보았다.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밀어내는 사랑도 만났다.

아끼면서도 상처 주는 사랑도 있었다.

“책을 추천받고 싶은데요.”

그녀는 사랑의 답을 책에서 찾으려 했다.

“저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아요. 어떤 책을 보면 좋을까요? 남자 친구에게 자꾸 상처를 줘요. 사랑하는데 막상 만나면 속을 긁어요. 남자 친구가 지금까지는 잘 참아왔는데 오늘은 제가 지나쳤던 것 같아요. 왜 제 마음인데 제 뜻대로 되지 않는 걸까요. 이러다가 저를 떠나면 어쩌죠?

그녀에게서 사랑을 시험하던 시절의 나를 보았다.

상대가 보고 싶어 하면 한발 물러서고, 사랑한다고 하면 이유를 묻고, 진심인 것 같아도 순간의 진심일 거라며 지속을 의심했다. 조금만 어긋나도 성급히 이별을 말했으며, 버림받을까 봐 먼저 버리는 방식으로 비겁했다.

“자꾸 상처 줄 때가 제게도 있었는데 돌아보니 테스트였어요. 사랑하게 된 다음에 상대가 떠나면 너무 아프니까 애초에 이렇게까지 해도 안 떠날 거냐고 묻는 거죠. 네가 기대하 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도 내 곁에 있을 거냐는 질문 이었다고 할까. 못되게 굴어도 안 떠나면, 아 이 사람은 나를 안 떠나겠구나, 내 사람이구나, 그제야 마음을 열고 잘해주려 했지만 상대는 이미 지친 다음이었어요.”

용수철 같았다, 사랑은.

처음엔 밀어내도 강력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꾸 밀어내고 밀어내면 탄력을 잃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무리 밀어내도 돌아와야 진짜 사랑이라는 듯이 굴었다. 결국엔 느슨해지고 멀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세상에 없는 것을 바랐다.

“나중에 돌아보니 나는 불안했던 거예요. 내가 보는 나는 남들이 아는 나보다 못난 사람인데 그런 진짜 모습을 들키면 떠나버릴까 봐 억지로 거리를 둔 듯해요. 좋아하면서도 상대가 다가오면 물러선 이유죠. 자꾸 밀어낸 것도 비슷한 까닭 이에요. 상대가 계속해서 나를 원한다고 느껴야 안심이 되니까, 버림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상대를 테스트 하는 거죠. 결국 내가 믿지 못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나였어요. 내가 지닌 매력이랄까 중력을 믿지 못한 거죠. 단지 사랑 했을 뿐인데 그는 자꾸 밀어내는 나 때문에 힘들었고 툭하면 헤어지자는 나 때문에 마음을 다쳤어요. 헤어지고 나서 혹시 그 사람도 나와 비슷해졌으면 어쩌나 생각하니까 정말 미안 하더라고요. 내가 준 상처 때문에 사랑을 두려워하고, 상대를 시험하며 겉돌면 어쩌나. 그럼 그를 사랑하는 사람 역시 외롭고 아프겠죠. 두려움에 떨면서 자기를 보호하느라 상대를 아프게 하는 방식으로 지내다 보면 결국엔 모두가 상처투 성이가 될거예요.”

지난날의 나에게 건네는 말과도 같았다. 어렸고 어리석었고 상처 줌으로써 상처받은 나에게 말이다.

“그 사람이 보고 싶어졌어요.”

그녀는 말했다. 실은 한 번도 자기 쪽에서 먼저 그를 만나러 나선 적이 없다고.

나는 말했다. 사랑이란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만나러 가는 발걸음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물러서는 식으로는 사랑을 지킬 수 없다.

Writer 정현주

Photographer 이석민

Editor 박현민

< 저작권자 © 빅이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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