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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8 인터뷰

겨울 포장마차 사장님들을 만나다

2020.01.07 |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영화는 안 봤어도 다들 알고 있는 장면이 하나 있죠. 한 번쯤 은 따라해봤을지도 몰라요. 소주를 가득 채운 잔을 건네며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에서 수진(손예진)과 철수(정우성)는 포장마차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포장마차 장면은 이 영화에서 두 차례 나오는데, 그때마다 주인공들의 등 뒤에서는 항상 포장마차 사장님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엿한 지붕이 있는 식당에 들어가면 더 따뜻할 텐데, 왜 한겨울에는 더 포장마차 음식이 생각나는 걸까요. 길에서 손을 호호 불며 먹는 포장마차 간식의 맛은, 날씨 좋은 봄, 가을에 먹는 그것이랑 또 다른 정취가 있지요. 일부러 찾아갈 때는 보이지도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다가도 냄새에 훅 끌려 갑자기 먹으러 가기도 하는 곳. 이것 때문에 겨울이 되면 지갑에 현금 몇 천 원 정도는 넣어둬야 안심이 됩니다. 하나에 500원, 1000원, 얼마 안 하는 금액이지만 왜 먹고 싶을 때마다 현금이 없는지. 불어빵 하나 사먹으려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 ATM에 들러본 이들이라면 겨울철 포장마차 음식의 매력을 알 것입니다. 하나만 더요, 한 접시 더요, 라고 외칠 때마다 무심하게, 하지만 듬뿍 음식을 더 주시는 포장마차 사장님들께 말을 걸어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의 길거리 낭만과 배고픔을 책임지고 있는 포장마차 사장님들에게 문득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인터뷰는 그러니까 먹으면서 진행된 인터뷰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수다 더하기 타코야키]

겨울이 되면, 언제 어디서 타코야키를 만날지 모르니 항상 주머니에 3천 원 현금으로 넣고 다니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부평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는 타코방이라는 작은 타코야키 가게가 있는데, 더도 말도 덜도 말고 3천 원 어치인 9개를 먹으면 딱 좋습니다. 문 닫기 직전에 갈 때가 많아서 6~7개가 남아 있으면, 더 만들어 달라고 하기보다 부족한 2개는 사장님과의 수다로 채우고는 하지요.

​

겨울이라서 그런지 저는 따뜻한 음식이 자꾸 생각나는데, 오늘 손님들은 많이 오셨어요?

여름에는 시원한 거 겨울에는 따뜻한 게 최고지. 나는 칼국수가 생각나네. 10월부터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는데, 여름보다는 겨울이 낫지. 따뜻하게 호호 불면서 먹으면 좋잖아. 비수기는 6, 7, 8월인데 여름에도 먹는 사람은 먹어.

​

언제가 제일 많이들 찾아오세요?

제일 많을 떄는… 추울 때?(웃음)

​

사장님도 타코야키 좋아하세요?

그럼, 아까도 먹었는데?

​

원래부터 타코야키를 좋아하셨어요?

원래 가게 하던 사람이 있었어. 나는 알바로 있었고. 근데 이 사람이 장사하기를 싫어해, 문도 자꾸 일찍 닫고. 그래서 '나한테 넘겨라'해서 타코야키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지. 벌써 거의 10여 년 전 일이네, 그런데 너무 재밌어. 손님들이랑 수다 떠는 것도 좋고.​

지금은 타코야키 장인이시잖아요. 긴 세월 동안 직접 부딪히며 노하우나 비법 같은 걸 찾으신 거네요.

이제는 다 커서 취직도 했는데, 중학교 때부터 여기 다닌 총각 둘이 있어. 근데 돈 벌어도 장가 못 간다고 하면서 나한테 찾아와서는 떡볶이 집을 하겠대. 오래할 수 있는 비법이 뭐냐고 물어보더라고. 그걸 내가 어떻게 가르쳐줘 비법인데.(웃음) 친절이 최고야, 그리고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게 최고야.

​

한자리를 오래 지키고 계셨으니까 생각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많지. 경기도 시흥에서 택시 타고 오는 사람이 있어. 이사갔는데도 생각나서 찾아왔다고 하면 기분 좋지. 그럴 때마다 "어유 미쳤어"해. 대신 그냥 안 보내, 몇 개라도 더 주지. 그러니까 찾아오는 게 아니겠어?(웃음)

​

손님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자주자주 와서 먹어줬으면 좋곘어. 그래야 오래오래 하지. 장사가 너무 안 되면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지나가다가 생각나면 와.


[붕어빵에는 팥이]

어머니는 팥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집에 가는 길에 붕어빵을 사들고 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저보다 붕어빵을 더 반가워하시지요. 머리부터, 꼬리부터, 이런 순서 따질 새도 없이, 겉은 바삭하고 팥은 많아야 한다는 평을 하시며 맛있게 드십니다. 그런 붕어빵을 파는 곳이 집 근처에 있어서 다행입니다. 어디서 사 왔느냐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난감합니다. 정확한 주소가 아닌 '부평역 우리은행 앞에…그…있어 행복한 잉어빵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으니까요.​

​

사장님은 겨울 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세요?

붕어빵이지! 나는 이걸 파니까

​

사장님도 붕어빵 많이 드세요?

아침에 나와서는 꼭 생각이 나서 먹는데, 저녁이 되면 기름 냄새를 하도 맡으니까 못 먹겠어. 음식 하는 사람들은 다 그래.

​

제 어머니가 이 붕어빵을 그렇게 좋아하세요.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붕어빵은 불조절이 중요해. 초보자들은 불을 약하게 하는데 그러면 질겨져. 나는 숙련이 되었으니까 세게 하지, 그리고 팥을 많이 넣어.

​

사장님 붕어빵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많았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

기억나는 손님 있으세요?

음…아, 멀리서 전화하고 택시 타고 오는 사람도 있어. 문 닫았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분들은 하나 더 드리지. 임신하신 분들은 예쁜 아기 낳으라고 예쁜 것만 골라드려. 시어머니가 나 임신했을 때 사과도 예쁜 것만 골라주셨어. 그거 보고 배워서 그렇게 해.


[토스트와 어묵, 난 둘다]

겨울이 되면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아, 따뜻한 어묵 굴물 마시고 싶다." 꼭 어묵 국물이 아니더라도 손에 따뜻하고, 배를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를 들고 있을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지요. 늦은 밤,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가는 출출한 길, 화곡역 8번 출구 옆에는 제 정신적·육체적 행복을 모두 해결해주시는 '웰빙토스트' 사장님 두 분이 계십니다.​

​

사장님은 겨울에 꼭 드시는 음식 있으세요? 저는 이렇게 따뜻한 음식이 생각나더라고요.

다들 호떡 아니면 붕어빵 이러잖아. 하루 종일 거의 아무 것도 먹지 못하지만 생각나는 게 없어. 하루에 토스트 몇 백 개씩 만들면서 기름 냄새를 하도 맡으니까. 여기 어묵 최고 기록이 어떤 아저씨가 65개, 어떤 아가씨가 24개인데, 하루는 기록을 깨보려고 나도 먹어봤어. 12개까지 먹다가, 2년 동안 어묵을 못 먹었어. 그러다 이제는 하루에 하나 정도 먹는 것 같아. 원래는 삼겹살 좋아했는데 그것도 못 먹겠어. 나물같이 개운하고 담백한 거 먹고 싶어.

​

하루 종일 일하시느라 끼니도 못 챙기시고 정말 힘드실 것 같아요. 정말 손님들이 끊이질 않아요.

여기서 18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데, 이 가격이 나올 수가 없어. 새벽에 재료 시장에 직접 가서 사 오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아침 7시부터 준비하고 8시 즈음부터 시작하면 밤 10~11시까지 하고, 양배추 써는 것도 칼질을 몇 번 할 것 같아? 다 정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

많은 손님들이 다녀가시는데 생각나는 분이 있을까요?

자동이체 만들게 해준 아가씨가 생각나네. 처음에 그 아가씨가 토스트 먹고 현금이 없다기에 '그냥 지나갈 때 줘' 그랬거든. 그런데 자기는 멀리서 와서 그럴 수 없다고 계좌번호를 꼭 알려 달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계좌를 외우지 못하니까 통장 앞면을 잘라서 놓고는 했었지. 최근에는 은행에서 계좌번호 적힌 종이를 프린트해서 여기다 붙여주고 갔어. 외국에 사는 셰프가 1년에 한 번씩은 꼭 오는데, 저녁을 먹고 왔다고 하는데도 토스트 두 개를 먹고 만 원을 내고 가. 여기 다니는 아가씨들이 아기를 낳으면 또 그 아기들이 와서 먹고 그러는데, 하루는 말도 잘 못하는 아기가 와서 먹고는 "음, 이 맛이야" 이 한마디만 해. 얼마나 웃긴지 몰라. 그 아기가 커서 중학생인데 지금도 와. 이야기보따리를 풀자면 한도 끝도 없어.

​

그런 손님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세요?

이렇게 찾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단골에게 호떡을]

화곡역 3번 출구 앞에서 호떡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사장님과 어느 단골 손님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단골손님 (앉아서 호떡을 드시다가) 오뎅 얼마였지?

사장님 700원.

단골손님 뭘 그렇게나 받아, 500원만 받지.

사장님 그래 주고 싶은 대로 줘.

단골손님 (700원을 건넨다)

사장님 다 주면서 괜히 그래, 언니 이게 잘 익었거든 이걸로 먹어.

​

사장님도 어묵이랑 호떡 좋아하세요?

그럼! 장사를 해도 좋아하니까. 어묵은 기름 냄새랑은 상관없어. 호떡도 먹어. 아침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어.

​

단골손님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많지. 오래돼서 거의 다 단골들이지. 거의 매일 아침 한 할아버지가 할머니랑 매운 오뎅 두세 개씩 드시러 오시기도 해. 하루만 여기 있어봐. 99%는 아는 사람이고 1%는 모르는 사람이야.

​

단골손님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매일같이 오셔서 팔아주시고, 지나가다가 귤이라도 사와서 주고 가지고, 한 명 한 명 다 고맙지.

​

말씀해주시는 동안 계속 웃으니고, 행복해 보이세요.

손님들에게 친절한 게 우선이니까. 10년 넘게 이걸 하면서 깨달은 거야.


취재 문경민, 조은식​

사진 조은식

소개말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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