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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5 에세이

날카로운 첫 향기의 기억

2021.07.28

스무 살, 서울에 올라와 인사동에 처음 간 날을 기억한다.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풍기는 묘한 향 때문이었다. 나는 그 향을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주술 같은 향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법에 걸린 듯 그 향에 홀려 원뿔 모양 인센스를 잔뜩 사서 기숙사로 가져갔다. 그렇다. 나는 낯선 향이나 음식에 호기심이 충만한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이토록 쉽게 매혹된다.

잔뜩 산, 주술적인 향을 뿜는 그 물건의 이름이 인센스인지는 나중에 알았지만, 모르긴 해도 이 물건이 기숙사의 고릿한 냄새를 없애주리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았다. 다만, 급한 성격 탓에 향이 더 빨리 퍼졌으면 하는 마음에 기숙사 방에 두세 개를 동시에 피웠다. 향은 계속 태워지고, 함께 지내는 이들은 하나같이 눈과 코가 맵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동기, 선배 할 것 없이 불만을 내비쳤고, 괜찮은 척했지만 나 역시 눈과 코가 따가워 결국엔 눈물을 흘렸다. 고통은 함께 느꼈지만 욕은 나만 먹었으니 날카로운 첫 인센스의 추억이다.

이후 낯선 향과 낯선 음식, 낯선 장소 등 낯선 것을 몸소 경험하겠다며 라오스, 태국, 베트남, 인도, 모로코, 인도네시아 같은 곳을 돌아다녔다. 각 나라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언젠가 맡아본 묘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이 향들은 같은 듯 달랐지만 모두 인센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허브나 오일 등이 섞인 인센스는 베이스가 같아 결국 비슷한 잔향이 남는다. 나는 인연이겠거니 생각하며 각 나라의 유명한 인센스를 가방에 하나씩 담아 돌아왔다.

이 인센스는 한국에 돌아와 요긴하게 쓰였다.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마다 향을 피우면 그 순간 시공간이 내가 그리워하는 곳으로 바뀌었으니까 말이다. 인도에서의 한 달 살이, 발리의 어느 재즈 바, 모로코의 마라케시 광장, 베트남의 오래된 숙소, 지하에 있는 어느 와인 바의 기억이 하염없이 휘몰아쳤다. 향은 다른 무엇보다도 기억에 생동감을 덧입히는 힘이 있다.

요즘은 인센스를 다음 날 늦잠이 보장되는 밤에 꼭 태운다. 스트레스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때, 내가 한없이 작아질 때나 이유 없이 외로움에 사무칠 때마다 그 마음의 자리를 인센스로 살포시 채워본다. 인센스를 꺼내 홀더에 인센스 스틱을 끼우고 불을 붙이고, 붙은 불을 후 하고 부는 행동 하나하나가 작은 위안이 된다.

좋은 향을 더 기분 좋게 느끼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하나 있다면 바로 좋은 인센스 홀더를 선택하는 것이다. 본인이 주로 느끼는 마음에 안정을 입힐 수 있는 인센스 홀더를 찾아야만 한다. 홀더가 꼭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인센스는 불을 사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홀더에 꽂아 사용해야 한다. 그러니 좋은 향을 잘 피우고 싶다면 홀더는 그만큼 중요하다. 지난해인가, 내가 닮고 싶어 하는 한 선배가 야심 차게 인센스 세트를 구매했다가 향 고르기에 실패했다. 결국 그 세트는 내게 넘어왔고,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새 홀더, 그러니까 보기에 그럴싸하고 내구성도 뛰어난 황동 홀더가 생긴 것이다. (그래, 이왕이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받자!) 이 홀더는 황동으로 만든 만큼 튼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앤티크한 분위기까지 낼 수 있어 지금은 내 심신 안정을 위한 의식의 완벽한 파트너가 됐다.

애초에 인센스는 마음의 안정을 돕는 종교의식과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만큼 가만히 피워두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는 효과가 있다. 어느 날은 마음을 두고 싶은 곳이 떠오르고, 어느 날은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이 연기처럼 사그라지는 경험을 안기기도 한다.

심란한 마음에 옴짝달싹하지 못한다면, 어느 잠 못 드는 밤에 고요히 인센스를 피워보자. 주술 같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이 향이 다음 날 늦잠을 보장하는 것 같은 편안한 내 마음에 닿을 수 있게 이끌어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글, 사진/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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