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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6 에세이

회복의 시간 (1)

2022.06.16

ⓒ unsplash

홈리스가 된 어떤 여성이 무기력을 떨치거나 질환 혹은 상처를 치유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건 뭘까. 홈리스 여성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기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 ‘이게 제일 유력한 것’이라고 정답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나와 동료 사회복지사들은 어쩌면 이것저것 다 해보면 뭐라도 얻어걸리는 게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센터에 들어온 수풀(별명)님은 역한 냄새를 풍겨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은 물론 같은 층에서 지내던 여성들에게도 원성이 자자했었다. 냄새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누군가는 잘 씻지 않아서 그럴 거라 했고, 누군가는 옷을 갈아입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했다. 또 어떤 분들은 가지고 다니는 비닐봉투 안에 냄새를 풍기는 뭔가가 들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센터를 이용하는 여러 사람이 불편을 호소하니 지목된 당사자에게 얘기를 안 할 수 없었다. 코로나19를 예방하려면 자주 씻어야 한다고 설명도 하고, 갈아입을 옷이 마땅치 않은가 싶어서 어울릴 만한 옷을 챙겨드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풀님이 흥분해 소리치며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자기는 열심히 씻는데, 왜 자꾸 자기한테서 냄새난다고 하는 거냐며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수풀님은 누구보다 자주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한다고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고, 세탁기를 마다하고 손빨래를 하면서 욕실을 점령하곤 했다. 하지만 문제는 머리에 물을 묻히고 나올 뿐이라는 것, 그리고 옷은 비누로 빨지 않고 물에 대충 헹궈 짜서 그냥 입어서 말리곤 한다는 점이었다. 열심히 씻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냄새가 난다고 하니 같이 이유를 찾아보자고 달래면서 방법을 좀 바꿔보자, 빨래는 세탁기에 세제를 넣어 빨아 햇볕에 충분히 말려야 보송보송하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며 간곡히 부탁했었다. 가지고 다니는 비닐봉지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물어보니 이것저것 필요한 걸 넣어 다닌다고 했다. 한 달 넘게 들고 다녀 나달나달해진 비닐봉투는 버리고 이참에 그 안에 든 필요 없는 물건들도 정리해보자 하고, 괜찮다며 사양하는 걸 겨우 설득해 천 가방으로 바꿔줬다. 그 후에는 어땠느냐고? 물로 헹구고 마는 손빨래 습관은 여전했지만, 옥상의 빨래걸이에 널어 옷을 말리기 시작했다. 센터를 이용하는 다른 여성들 말로는 천 가방 안에 여전히 먹다 남은 음식이나 음식을 담았던 비닐봉지들이 들어 있다고 했는데, 그나마 비닐봉지를 들고 다닐 때보다는 행색이 나아 보였다.

ⓒ unsplash

한두 달의 일시 보호시설 이용 기간이 끝날 무렵이 되면 홈리스 여성들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높아진다. 또 어딘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딘가가 지금보다 환경이 더 낫고 더 오래 있을 수 있는 안정적인 거주 시설이라고 설명해도, 그게 싫으면 몇 달간 고시원 월세를 지원해줄 수 있다고 말해줘도 대개는 또다시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한다. 그래서 일시 보호시설을 이용하는 홈리스 여성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언제까지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수풀님도 씻고 빨래하는 문제로 실랑이하던 끝에는 항상 자기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냄새 때문에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도 매번 영락없이 난 어디로 가야 하느냐 묻고, 이러저러한 방법이 있다고 설명해주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수풀님은 자신은 집에 가고 싶은데 가족에게 전화하면 이상하게 잘 연결되지 않는다며 사회복지사님이 대신 전화해달라고 부탁했다. 수풀님이 알려준 전화번호는 오빠와 동생의 번호였다.

수풀님의 오빠에게 전화하자 짜증과 경계심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안 받으려다 받았다며, 자신은 이제 동생 문제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전에도 어느 고시원에서 지내다가 범상치 않은 생활 습관 문제로 신고돼 주민센터 공무원, 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요원이 방문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신청해서 살아보자고 설득했지만 끝끝내 거부해서 무산되고 결국은 고시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며, 이 상황에서 가족들이 뭘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수풀님이 원하는 건 오빠의 가족들과 함께 사는 건데요.” 하자, 곧바로 같이 살 방도 없고 살 수도 없다며 앞으론 전화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끊어버렸다. 옆에 앉아 있던 수풀님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럴 리가 없는데… 참 이상하네….” 하며 그럼 동생과 통화해달라 부탁했고, 전화를 받은 동생은 ‘여기는 어디인데요’까지 듣고는 끊어버렸다. 어느 날은 사무실에 와서 지하철역 근처에서 가족들한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전파방해가 있는 거 같으니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다시 한번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전파방해요?’ 반문하고 싶은 걸 꿀꺽 삼키고 원하는 대로 전화해주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고, 이 사실을 알리자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이 글은 '회복의 시간 (2)'으로 이어집니다.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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