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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3 스페셜

시간이 플레이 되는 곳 ― 레트로 가젯 스토어 ‘레몬서울’

2022.09.19


“어떤 뮤지션이 바닥에 누워 있다 간 적도 있어요.” 얼마나 안락하면 가게에 드러누울 수 있는 걸까? 아마도 그 뮤지션에게 오래전 생산된 음향 기기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공간, ‘레몬서울’은 내 집처럼 편안했던 모양이다. 쓸모없는 것, 불량품이라는 뜻을 품은 영어 단어 레몬(lemon)처럼, 김보라, 윤종후 두 대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레몬’이 될 뻔한 카세트 플레이어, CD플레이어, 턴테이블을 발굴하고 잘 관리해 새 주인에게 건넨다. 레몬서울은 주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물건 사이에 흘러간 시간까지 쌓여 빼곡했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취미로 즐기던 레트로 가젯 수집이 레몬서울의 시작이었다고 들었어요. 오래된 물건의 어떤 점이 분의 마음에 들어왔을까요?
윤종후 어릴 때 CD플레이어나 카세트테이프로 많은 음악을 들었어요. 그러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음악을 듣던 예전의 방법이 점점 잊혔죠. 아무래도 스트리밍이 좀 더 간편하게 생각되니까요. 음반을 녹음하고 마스터링하는 과정이 있잖아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주파수라고 가정하면, MP3 파일의 경우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범위까지 남기고 그 외 주파수를 잘라낸다고 해요. 데이터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서요. 그 탓인지 음악이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기도 했어요. 우연찮게 다시 카세트테이프와 바이닐로 음악을 들었는데, 좀 더 편하게 느껴졌어요.
김보라 디자인 공부를 위해 1년에 예닐곱 번씩 해외 출장을 다녔는데, 외국에 가면 그 나라의 레코드 숍에 가서 바이닐을 구경하고는 했어요. 커버 디자인이 예쁜 것이 아주 많거든요. 그러다 조금씩 바이닐을 모았고, 재생해보고 싶어졌어요. 스피커가 내장된 포터블 턴테이블을 구매한 게 시작이었죠. 그걸로 음악을 들으면서 바이닐만이 가진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걸 재생하고 감상하는 행위 자체가 참 재밌었어요.

디자인적으로 가치 있는 물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김보라 당대의 문화가 깃들어 있는 디자인이 좋아요. 예를 들면 우리가 머릿속에 TV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납작하고 비율이 비슷한 직사각형이요. 그런데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생산된 TV를 보면 색깔, 재질, 화면의 색감이 다 다르거든요. 이런 특징 있는 디자인 때문에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턴테이블도 그래요. 1970년대에는 지금처럼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없어서 휴대용이 유행했거든요. 스피커가 내장된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요. 또 시대가 달라도 디자인 DNA가 같은 물건들이 있어요. 제조사, 생산국, 브랜드가 전부 다른데 조합해 모아보면 물건이 가진 색, 재질, 디자인적 특징이 신기하게도 한곳을 향할 때가 있거든요. 같이 모여 있을 때 멋지게 느껴지죠.

레트로 가젯을 판매하거나 턴테이블로 청음할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어요. 다른 공간과 레몬서울의 차이점은 뭔가요?
윤종후 디테일 같아요. 사실 기계이긴 하지만 음악을 들려주는 도구잖아요. 그래서 음악과의 합이 중요한데, 레몬서울은 최대한 기계가 가진 고유의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김보라 처음엔 저희도 작동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제품은 더 깨끗하고 양호한 상태의 물건으로 여러 개를 모으기도 했거든요. 어제 출시됐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은 물건도 수집했는데, 이 과정에서 같은 모델이라도 재생되는 소리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저희는 단순히 작동되는 것을 넘어서 그 모델이 발매됐을 당시의 소리로 조율하고 맞추는 것까지를 목표로 삼고 있어요.

제품 발매 당시에 사람들이 이걸로 들었을지, 어떤 음악이 많이 재생됐을지 생각하시겠어요.
김보라 맞아요. 플레이어마다 음색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건 소울 음악을 들었을 때 잘 어울리고, ‘아, 이건 재즈용이구나!’ 싶은 것도 있어요. 따뜻한 음색, 베이스가 강조되는 음색 등 제품마다 소리의 특징이 다르거든요.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는 레몬서울의 물건이 빨리 품절되는 같아요. 판매하는 과정에서 고객들이 물건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김보라 확실히 달라진 게 있어요. 아무래도 제품 상태에 따라 가격이 차이 날 수밖에 없거든요. 초반엔 사용한 흔적이 있더라도 저렴한 걸 더 선호했는데, 요즘에는 값을 두세 배 더 주더라도 깨끗한, 미사용품에 가까운 물건을 찾는 분이 많아요. “5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요? 어제 만든 것 같은데….” 하면서 기쁨을 느끼시더라고요.
윤종후 빈티지는 세월이 지나고 살짝 닳고 빛바래면서 멋스러워지는 것 같은데, 레트로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새것 같은 물건이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났을 때 드는 마음이 레트로라는 감정 같거든요.

이곳에 찾아오는 분들이 직접 음악을 들어볼 있어요. 손님들의 취향이 다양할 같은데, 과정에서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되거나 손님과 교류하는 경우도 있나요?
윤종후 본인이 좋아하고 익숙한 음악으로 청음하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취향을 물어봐요. 그런데 어떤 손님이 불협화음 같은 음악을 소개해달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 음악을 모은 믹스테이프를 개인 소장용으로 제작하신다더군요.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는데, 그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김보라 보통 “재즈를 즐겨 들어요.” 혹은 “OST를 좋아해요.” 하는 식으로 큰 카테고리를 말씀해주시거든요. 그 안에서 저희가 추천해드리고 교류하고 있어요.

요즘은 개인화 스트리밍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잖아요. 레트로 가젯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와 차이점이 있다면 뭘까요?
윤종후 1980~90년대에는 주로 음악 잡지나 음반 가게 사장님의 추천이나 TV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접했어요. 주변의 형, 누나, 친구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요새는 어딜 가든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잖아요. 직접 들어보고 음악이 좋으면 바이닐이나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하고요. ‘뻘짓’을 줄일 수 있죠. 예전에는 음반 가게에서 커버만 보고 ‘와, 죽인다!’ 하고 샀다가 ‘뭐야 이 음악은?’ 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웃음)
김보라 오프라인 음반 매장이 있잖아요. 거기서 예전 방식대로 커버만 보고 재밌어 보이면 일단 스마트폰으로 한번 들어보는 식으로 자기만의 음악을 찾는 방법을 추천해요. 그 과정에서 나만의 추억도 생기니까요.

최근 년간 이미 발매된 앨범을 LP 카세트테이프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시는지도 궁금해요.
윤종후 활발히 발매되는 건 좋지만, ‘이게 새로 나와?’ 싶은 음반이 종종 있어요. 환경보호를 위해 자제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김보라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하지 않은 세대의 뮤지션 한 분이 방문한 적이 있어요. 앨범 작업에 참고하려고 굉장히 여러 기기로 청음하고 몇 가지는 구매해 가셨죠. 이런 흐름이 앞으로 나올 음악에 반영돼 새로운 질감의 음악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비자들에게 레몬서울의 제품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김보라 기기를 소중히 보관하는 것도 좋지만, 잘 사용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커요. 저희도 실제로 음악을 들으면서 제품의 매력을 느꼈거든요. 사용했을 때 그 감동이 크기도 하고요.
윤종후 오래전에 생산된 제품들은 한번 컬렉터의 손에 들어가면 시장에 잘 나오지 않거든요. 이미 구매하신 분들 사이에서 물건이 교류되는 과정도 좋은 것 같아요. 잘 순환됐으면 좋겠어요.

《빅이슈》 독자들을 위해 계절에 듣기 좋은 앨범을 추천해주세요.
김보라 허비 행콕의 재즈 앨범인 를 권하고 싶어요.
윤종후 빌 에번스의 를 추천해요. 앨범 재킷에서 빌 에번스가 한 손으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펜더로즈라는 전자피아노를 연주하거든요. 서로 다른 키보드를 함께 연주하는 음악으로 채워진 앨범인데, 찬 바람 불기 시작할 때 정말 듣기 좋은 앨범이에요.


글. 황소연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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