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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3 에세이

새로운 시대의 휴리스틱

2022.09.22


“경영이나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조직 문화는 돈이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가 됐다.
인구가 늘어나던 시기에 익힌 경영과 관리의 휴리스틱은 이 같은 전환을 방해한다.
매력적인 문화를 우선하는 경영 휴리스틱을 갖춘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운명이 엇갈릴 것이다.”


ⓒ unsplash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표현이 있다. ‘체험으로 배우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심리학 용어로 쓰일 때는 어림짐작에 따른 판단을 가리킨다.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이른바 ‘일 머리’는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또 책은 별로 읽지 않았으나, 인간과 세상을 보는 통찰은 탁월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대개는 좋은 휴리스틱을 머리에 타고났거나 하는 경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흔히 쓰는 표현이다. 경영학 이론으로 엄밀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자기만의 투자 이론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컨대 A라는 주식이 오르기 시작하면, B 주식도 곧 따라 오르는 경험을 한 사람은, A 주식이 오르자마자 B 주식을 사는 식으로 수익을 내곤 한다. A 주식 가격과 B 주식 가격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엄밀하게 분석할 역량은 없지만, 경험과 어림짐작으로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휴리스틱에 의지한 판단이 꼭 가방끈 짧은 사람들의 전유물인 것도 아니다. 지식인, 전문가의 판단 역시 휴리스틱에 의지할 때가 종종 있다. 의료 행위에 대한 의사의 판단이 전부 객관적인 증거를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니다. ‘증거 기반 의료’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까닭은 증거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의료 행위가 여전히 흔하기 때문이다. 또 전문가의 전문성 역시 특정 분야에 한정되기 마련이다. 아울러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영역에선 전문가 역시 휴리스틱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거나 친구와 점심 먹을 장소를 정할 때, 논리적으로 정교한 분석을 하는 경우는 없다. 어림짐작으로 판단하기 마련이다.

ⓒ unsplash

그리고 대개는 휴리스틱에 따른 판단이 효율적이다. 친구와 점심 먹을 장소를 고를 때, 포털 사이트 검색 이상의 수고를 들인다면 아무래도 낭비다. 검색 결과에 나름대로 휴리스틱을 활용해서 정하는 수준이 적당하다. 그게 상식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급격히 바뀐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예컨대 어느 날 갑자기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는 검색 사이트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면? 혹은 어떤 이유로 도심 상권이 급격히 바뀐다면, 그래서 유명 맛집이 갑작스레 폐업하는 일이 흔해진다면? 그렇다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점심 먹을 장소를 고를 때 전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점심 식사 장소 선택이야 실패하면 좀 아쉬운 일일 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라면,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는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의지했던 휴리스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인구가 늘어나던 시기에는 경영과 관리의 휴리스틱이, 사람은 부족하지 않다는 전제로 작동하곤 했다. 지난 세기 여러 일터에서 무리하게 야근을 강요하거나 조직 문화가 봉건적이어도 경영자들이 문제의식을 못 느끼곤 했던 배경에는 늘어나는 인구가 있었다. 젊은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젊은 세대의 교육 수준은 갈수록 높아진다. 그러니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사람의 노동력은 값싸고, 땅과 건물, 기계가 비싸던 시절이다. 이제는 달라졌다. 학교를 떠나는 젊은 인구가 해마다 줄고 있다.

진짜 거대한 변화는 다른 데서 오고 있다

ⓒ unsplash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첨단 장비를 도입하려 애쓰다가 일단 설비를 갖추기만 하면 한숨 돌리던 풍경 역시 지난 일이다. 인구가 줄고 있으므로, 장비를 운용할 만한 역량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다. 예전에는 백지상태에서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해 장비 다루는 법을 익혔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 시절에 다루던 장비에 비해 운용 난도와 장비 가격이 월등히 높다. 백지상태에서 더듬더듬 익힌 지식으로 함부로 다루다 고장 나면 천문학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장비만 도입하면, 운용 인력은 따라오는 것이라는 경영 휴리스틱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조직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인구에 비해 괜찮은 일자리가 적던 시절엔 경영자 입장에서 조직 문화란 조금 한가한 고민거리였다. 지금은 다르다. 줄어드는 젊은 인구를 놓고, 여러 조직이 경쟁하고 있다. 조직 문화가 봉건적이라면 젊은이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 실무를 젊은이가 담당하고, 관리는 중·장년 세대가 맡는 조직 문화에선 심각한 위기 징후다. 실무를 새로 익히는 이들이 빠져나가는 조직이란 영양 섭취가 줄어드는 신체와 닮았다. 병약해지기 십상이다.

공무원처럼 과거 인기 있던 직업에서 젊은이들이 떠나가고 있다. 그 속도가 빠르다. 민간 부문에서 활약할 역량을 지닌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로 진을 뺀다고 한탄하던 것이 엊그제 일인데, 벌써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공공 기관에서 똑똑하고 열정적인 젊은이를 찾기 힘들어질 수 있다.

ⓒ unsplash

다양한 직업과 산업이 젊은이들을 유인하려 경쟁한다. 가파르게 성장하는 몇몇 산업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경제가 위축되는 시대에 급여를 더 주는 방식으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엔 한계가 있다. 매력적인 조직 문화로 젊은이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몇몇 정보 기술 업체가 전통적인 대기업보다 구직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끄는 이유 역시 급여나 산업의 성장 가능성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경영이나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조직 문화는 돈이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가 됐다. 인구가 늘어나던 시기에 익힌 경영과 관리의 휴리스틱은 이 같은 전환을 방해한다. 매력적인 문화를 우선하는 경영 휴리스틱을 갖춘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운명이 엇갈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변화는 인구 감소만이 아니다. 기후가 바뀌고 있다. 더 거대한 변화다. 일터에서 통하는 휴리스틱 가운데 또 어떤 것을 점검하고 바꿔야 할까.


글. 성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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