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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8 인터뷰

배우는 이야기로 성장한다 ― 배우 오정세 (1)

2022.12.12


"오정세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배우가 으레 그러듯, 좋은 이야기 안에서 날개를 펼친다. 지난 10월 말, 오정세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경기 성남에서 4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을 담아, 그곳에서 카운터를 보고 배달하고 대본을 읽고 멋진 배우로 성장해 20년 넘게 일해온 자신의 이야기를 팝업스토어로 선보인 것.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관람객에게 동백 화분을 선물하는 등, ‘오복슈퍼’라는 이름처럼 복을 나눠주는 그의 눈은 뿌듯함으로 빛났다. 삼성동으로 옮겨온 오정세의 오복슈퍼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고, 《빅이슈》는 그 조각들을 기록했다. 좋은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며 더 큰 힘을 갖는다. "


*오복슈퍼 팝업스토어는 현재 종료되었습니다.

촬영할 보니까 아이디어가 많더군요. 촬영장에서 의자와 대본을 직접 준비하셨죠.
작품 촬영할 때도 그런 편이에요. 현장의 공간과 분위기, 소품을 보고 좀 더 살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요. 여기는 슈퍼 팝업스토어니까 제가 슈퍼 카운터를 보면서 하던, 의자에 앉아서 대본을 본다든지 하던 일이 생각났죠.

오복슈퍼의 팝업스토어는 어떤 계기로 삼성동에서 열리게 되었어요?
회사 대표님이 흥미로운 재밋거리들을 많이 던져주세요. 팝업스토어도 그중 하나였고 저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열게 되었어요. 저도 20년 넘게 배우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버지는 40년 넘게 슈퍼를 운영하면서 한 길을 걷고 계세요. 대형 마트나 온라인 구매로 소비 패턴이 바뀌어가는데도 같은 자리에서 뚜벅뚜벅 한길을 가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오랜 시간 한길을 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카운터를 보다가 마주친 손님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카운터를 보거나 배달을 하며 일상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색깔 있는 인물, 색깔 있는 행동이 보여요. 그런 것들을 저장해놨다가 작품에서 연기할 때 도움 받은 적이 많아요. 예를 들어 <동백꽃 필 무렵>의 ‘노규태’라는 인물도 한 꼬마 손님을 보다가 힌트를 얻었어요. 한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껌을 훔쳐 가려고 한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껌을 다리 사이에 끼고 뒤뚱뒤뚱 나가더라고요. 귀여운 속이 다 드러나니까 우습고 좋아 보였어요.(웃음) 노규태라는 인물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인물이죠. 그 꼬마 손님 덕분에 노규태가 너무 밉지 않은 캐릭터가 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었어요. 또 매일 아침 7시에 꼬박꼬박 소주 한 병을 사 가는 분이 계셨어요. 아침 7시에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자마자 그 자리에서 따서 두 모금 드시고 계산한 뒤 천하장사 소시지 하나를 드셨죠. 매일 그분을 보면서 저분은 지금 출근하는 걸까, 퇴근하는 걸까 궁금했어요.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하고요. 만약 그런 캐릭터를 글로 접했다면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직접 보는 광경이니까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죠.

재밌어요. 사람을 관찰하는 편인가요?
일부러 관찰하려고 애쓰며 에너지를 쏟지는 않는데, 제 일상을 살다가 제 눈에 느낌이 딱 올 때는 저장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사람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어요?
이전에 병원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저에게 의미 있는 공간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제안을 받고, 제가 당시에 병원을 많이 다녀서 병원에서 했어요. 담당 기자랑 같이 영양 주사 맞으면서 인터뷰를 했죠. 그때 유심히 보게 된 게 보통 사람들은 주사 맞을 때 주삿바늘을 안 보잖아요. 저는 안 보거든요. 그런데 그 기자는 주삿바늘을 뚫어져라 보더라고요. 저런 시선 하나만으로도 겁 없는 사람, 모험심 강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겠구나 해서 기억해뒀어요.

슈퍼는 어릴 선망하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우리 집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했으면 좋겠어’, ‘슈퍼를 하면 과자를 마음껏 먹을 텐데…’ 하면서요. 어린 오정세는 슈퍼라는 공간을 어떻게 인식했나요?
오복슈퍼에서는 과일도 팔거든요. 제 어린 시절은 과일이 귀하던 때라 친구들에겐 제가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부러운 친구였을 텐데, 실상은 항상 썩은 과일이나 못 파는 과일만 먹었어요.(웃음) 저한테 슈퍼는 제2의 집 같은 공간이었죠. 집에 있는 시간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슈퍼에 오래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카운터를 보고 물건 정리를 돕고 면허를 따고 나서는 배달도 하면서 슈퍼에서 일상을 보냈어요.

특별 출연으로 참여한 드라마 <작은 아씨들> 이사 강렬한 잔상을 남겼어요.
<작은 아씨들>은 참여하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4부까지만 대본을 받았는데 최근에 읽은 대본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거든요. 이런 작품에는 어떤 역할이든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신 이사라는 인물을 해석하면서는 텍스트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이사는 구두를 좋아하잖아요. 오정세도 어떤 물건에 깊이 빠진 적이 있나요?
예전에는 물건을 많이 모았어요. 친구들이 보낸 쪽지나 편지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서 보물처럼 쌓아놨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지나치게 물건에 집착하는 것 같아서 한번 싹 정리하고 요즘에는 잘 안 모아요.

이 글은 '배우는 이야기로 성장한다 ― 배우 오정세 (2)'로 이어집니다.


글. 양수복
사진. 김슬기
헤어. 박희승
메이크업. 김민지
스타일리스트. 박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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