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배우는 이야기로 성장한다 ― 배우 오정세 (1)'에서 이어집니다.

배우라는 직업은 이야기 안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이야기 안에서 움직이는 플레이어로서 이야기가 가진 힘은 뭐라고 생각해요?
<동백꽃 필 무렵>에 출연했을 때가 생각나요. 작가님이 각본을 쓰기 전에 어느 소도시를 걸어가다가 창문 하나짜리 술집 안에 있는 한 여인의 실루엣을 보셨대요. 저 여자의 인생이 평화롭지는 않았겠구나, 저 여자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어, 이런 마음이 글을 쓰게 된 시작점이라고 하셨어요. 이 드라마가 또 다른 ‘동백이’들을 응원하는 이야기잖아요. 저 역시 이 드라마를 찍으면서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사이코지만 괜찮아>도 촬영하면서 많이 공부가 됐고, 제 정서나 시각에도 큰 영향을 준 작품이에요. 중·고등학교 때 배운 어떤 교과목보다도 저는 한 작품, 한 작품의 키워드와 메시지에 영향을 받으며 계속 성장해나가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직업이라니, 멋지네요.
제가 느끼기에 <작은 아씨들>은 맑고 건강하던 세 자매 사이에 돈이라는 물질이 섞이면서 갈등이 깊어져요. 돈이란 것이 영향력이 크다 보니 나쁜 쪽으로 가는 사람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들이 벌어지죠. 재밌는 이야기였어요. 또 어떤 드라마에서는 세상 사람 누구나 다 잘못할 수 있는데,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문제가 되기도 하죠. 인정하느냐 못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누구는 인정해서 벌을 받기도 하고, 누구는 인정하지 못하고 숨기려다가 문제가 더 커지고. 그 드라마에 참여하면서 내가 어떤 실수를 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겠구나, 하고 깨닫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배우는 이야기에 참여하는 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정세 배우를 연극 무대에서도 보고 싶어요. 다양한 캐릭터의 표정, 인상, 몸짓, 말투 등 특징적인 부분을 극대화하는 표현에 능하니까요.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해보고 싶기는 해요. 연극은 많은 배우가 고향처럼 여기고 돌아가는 무대이잖아요. 근데 저는 연극을 해봤는데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 했나 싶게 두려운 무대이기도 하거든요. 그때는 그냥 하고 싶어서 했지, 무대 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거든요. 많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관객과 호흡을 나누며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고, 정서를 표현하며 자유롭게 놀지만 저에게 무대는 무서운 공간이에요. 아직 정서를 나눌 정도는 못돼요. 만약에 제가 연극을 한다면 첫째 목표는 무대 위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20여 년간 연기를 해도 두려운 영역이 남아 있네요.
연극도, 또 다른 무대도, 카메라 앞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힘들 때가 많아요.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제가 생각하는 대배우들, 한참 선배님들도 카메라 앞에서 힘들어하시곤 한다는 사실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면 위안이 되기도 하고, 사람 냄새도 나고, 저절로 완성되는 일이란 없고 다 과정 속에 있다는 걸 깨달아요.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이에요. 2021년 초에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를 통해 《빅이슈》와 만났을 때 2020년을 한 단어로 정리해보자는 질문에 ‘무효’라고 답했어요. 없던 일로 하고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고요. 다시 한번 올해를 한 단어로 정리해볼까요?
올해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웃음) 촬영을 계속하다 보니까 내가 뭘 하며 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그러니까 ‘숨 가쁨’으로 할게요.(웃음) 바쁘게 지나간 2022년이었고, 조만간 공개되는 작품이 많아서 2023년이 기다려져요.
차기작은 어떤 작품들이죠?
일단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스위치>라는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요. <거미집>이라는 영화도 개봉 예정이에요.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 시즌 2를 촬영 중이에요.
진정한 다작 배우네요. 마지막으로 2023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매년 비슷한 것 같은데, 건강을 지키는 것이요. 최근에 운동을 시작해서 웨이트트레이닝이랑 필라테스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건강하게 살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글. 양수복
사진. 김슬기
헤어. 박희승
메이크업. 김민지
스타일리스트. 박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