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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9

아직은 살아 있는 야생종을 지키기 위해 (2)

2023.10.19

이 글은 '아직은 살아 있는 야생종을 지키기 위해 (1)'에서 이어집니다.

ⓒ 사진제공. 녹색연합

물러나는 동시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기후변화는 대형 산불을 야기하고 대형 산불은 울창한 산림에서 더욱 쉽게 발화합니다. 조사를 위해 산에 오르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능선 곳곳에 빼곡하게 들어선 송전탑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높은 능선에서 바닷가 쪽을 바라보면 핵발전 단지, LNG 기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인간의 과도한 편의를 위한 발전 단지와 송전탑이 인간에 의해 야기된 기후재난 산불과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두렵습니다. 지난 산불 당시 무인 카메라에는 평소에 잘 가지 않던 도로 근처까지 이동하는 산양과 야생동물의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무분별한 밀렵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든 산양은 기후재난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곳에서 서식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물론 산양에게만 해당하는 위험은 아니겠지요.

장애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세상이 얼마나 불평등하며 폭력적인지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야생종의 눈으로 현재의 우리를 바라보며 새롭지만 오래된 폭력을 새삼 마주했습니다. 케이블카, 송전탑, 건설 중인 핵 발전소와 석탄 발전소, 여전히 채굴 중인 석회 광산, 많은 토건 사업이 인간인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만이 아니라 자연과 야생종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를 곱씹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기후변화의 가속과 생물 다양성의 악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명제는 너무나 당연하기에 오히려 설득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자연과의 공생, 공존을 말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어려워 보입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은 너무나 추상적인 말 같습니다. 최근 독립영화계에서 작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수라>에서 오동필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름다움을 본 죄.” 새만금 갯벌에 서식하는 새들의 아름다움을 본 죄로 새만금에 아직 남아 수라 갯벌을 지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산양 가족과 카메라를 바라보는 산양 ⓒ 사진제공. 녹색연합

얼마 전까지는 사냥꾼과 올무를, 그 뒤에는 광산과 임도를, 송전탑을, 도로와 터널을 피해야 했던 산양과 야생동물은 이제 산불을 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야생에 남아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조사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사진 때문에 산양과 울진·삼척과 야생에 대해 더 마음을 쓰게 되었습니다. 곁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미 산양은 먼 산을 바라보며 되새김질을 하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산양은 어미 꽁무니에 기댄 채 잠들었습니다. 곧 독립을 앞둔 또 다른 산양은 어미 곁을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두고 어미와 동생 곁에 머무는 중입니다. 사진 밖으로는 산불로 인해 그을린 나무가 즐비한 검은 숲이 펼쳐집니다. 어미 산양이 바라보는 먼 산언저리에는 송전탑이 동에서 서로 이어지고 오른쪽 숲의 끝에는 핵 발전소의 돔이 푸른 바다와 함께 보일 테지만 아직은 오래된 야생의 평화를 누리는 중입니다.

야생은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많은 생명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물러나는 동시에 밀려오는 파도와 같은 감각으로 늘 떠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사냥꾼과 올무를, 그 뒤에는 광산과 임도를, 송전탑을, 도로와 터널을 피해야 했던 산양과 야생동물은 이제 산불을 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야생에 남아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개

김원호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


글. 김원호 | 사진제공.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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