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의 ‘Super Shy’의 길이는 2분 35초다. 과거 핑클의 음악을 CD로 들을 땐 4분이었다가, 스마트폰으로 카라의 노래를 들을 땐 3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 노래를 듣다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지?’라고 플레이어를 보면 4분짜리 노래에 2분 30초쯤 된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읽거나,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려면 이제 시간뿐만 아니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지음, 어크로스 펴냄)을 읽고 나서 집중력 부족이 나만의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을 하루도 손에서 놓지 않고 사는 보통의 이들의 집중력은 어떻게 빼앗기고 있는지 다룬 이 책은 ‘올해의 책’으로 손색없다.

© <도둑맞은 집중력> 표지
한국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일 평균 다섯 시간이 넘는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요한 하리는 전문가들의 임상 실험을 통해 인간의 의지가 나약해서, 집중하려는 노력을 안 해서 집중력이 부족해진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지구적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이후의 삶을 맞이하고 있다.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 수시로 울리는 알람과 일상이 된 소셜 미디어, 끊임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우리들의 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집중력을 찾기 위해 자본주의와 스마트폰 같은 정교한 시스템에 덜 의존하는 방안들을 소개하며, 개개인의 집중력에 문제가 생긴다면 생활과 일, 나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자문하게 한다.

© <여학교의 별 3> 표지
“당신이 꼽은 올해의 책은 무엇인가요?”
아이러니하게도 집중력을 높이는 데에는 독서만 한 것이 없다. 그리고 재미로 따지면 역시나 만화책이다. B급 유머 감각으로 만화 팬들 사이에 입소문을 낳았던 와야마 야마의 <여학교의 별>(와야마 야마 그림, 문학동네 펴냄) 3편이 올해 발간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여고생들의 일상과, 30대 남교사 ‘호시’를 비롯한 동료 선생님들의 생활은 현실의 모습 그 자체다. 만화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기란 쉽지 않은데 작가에 의해 속마음을 간파당한 기분이랄까. ‘하기 싫다’를 속으로 되뇌면서도 학생들 앞에서 멀쩡하게 처신하려 애쓰는 모습이 마치 겉으로 멀쩡한 척하는 나 같아 우스우면서도 정감이 간다. 기말고사, 학부모 면담, 대청소 등 다양한 학교 행사에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의 코믹한 모습이 나른한 웃음을 유발한다. 일본에선 이미 인정받은 와야마 야마 특유의 섬세한 10대 행동과 감정 묘사, 남성 캐릭터의 디테일한 관찰력은 엉뚱하면서도 독보적이다. 묘하게 지난 학창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소하고 무해한 에피소드들을 종이로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즐길 수 있다.

© <중급 한국어> 표지
《빅이슈》 독자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책의 여행’이란 코너가 있다. 한 권의 책이 탄생해서 독자에게 닿기까지 연결된 사람들의 생각을 담아보자는 취지의 인터뷰 코너다. 편집자, 디자이너, 출판 마케터, 번역가, 서점원 등 그동안 총 14명의 인터뷰이를 만났다. 인터뷰를 하며 그들에게 요청했다. “《빅이슈》 독자들에게 책을 추천해주세요.” 워낙 책에 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각양각색 추천사를 보는 것도, 새로운 책을 알게 되는 것도 설레는 일이었다. 독자들이 추천하는 책도 궁금해졌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질문을 올렸다. “당신이 꼽은 올해의 책은 무엇인가요?” 이내 반가운 대답들이 돌아왔다. 그중 문지혁 소설가의 <중급 한국어>(문지혁 지음, 민음사 펴냄)를, 단숨에 서점으로 달려가 사서 읽어보았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지혁’의 이야기로, 주인공은 아이를 키우고 문학을 읽고 글쓰기를 가르치고 소설을 쓰는 일을 되풀이한다. 그의 인생에는 답이 없는 문제처럼 도무지 쉽게 풀리지 않는 일들이 가득하지만, 한 편의 수업 같은 인생을 계속 헤쳐 나가는 것, 삶이 과정의 연속이라는 물음표 속에서도 마침표를 찍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감과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소개
정규환
에디터. 팟캐스트 ‘개인사정’을 만들며, 동료들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사무소 ‘GLG’를 운영 중이다.
@kh.inspiration
글. 정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