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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1 에세이

옆에서 - “알잖아요”

2024.05.22

글. 유지영

전태일 열사 산화 50주기를 맞아 만드는 기념신문 <전태일50>의 편집위원장이 홍세화 선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태일50>의 편집위원장을 맡기에 가장 적임자였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소식을 듣고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말했다던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하나라도 있었다면!”이 “귀에 쟁쟁한 울림이 끝없이 반복되었다”(<전태일50>서 발췌)던 그였기에 말이다. 이 사건은 그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됐다. 남민전 활동으로 훗날 망명해 쓴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한국 독자들을 처음 만났으니 분명 그의 생에 중요한 분기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당연하지만은 않았다. 사실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50년 전의 첫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사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지나치리만큼 이상적으로 보였다. 나는 홍세화 ‘편집위원장’과 <전태일50> 첫 편집회의에서 처음으로 대면했다. 그는 편집위원장 역할을 맡게 된 것에 여간 쑥스러워하면서도 이내 멋진 칼럼(“나의 나인 그대들, 노동자들이여”)을 써서 후배 기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전태일50>이 세상에 나오고 뒤풀이 자리에서 다시 만난 홍세화 편집위원장은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마이크도 없이 샹송을 불렀다. <전태일50> 신문이 나왔던 2020년은 내게 개인적으로 악재가 겹친 해였음에도 유독 그가 눈을 지그시 감고 살짝 붉은 얼굴로 샹송을 열창하던 모습만큼은 그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또렷하게 남았다.
홍세화 편집위원장이 작고했다는 소식에 문득 그날 내가 촬영해둔 영상을 보고 싶어서 사진첩을 뒤져봤으나 이상하게 그 무엇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긴 다시 돌이켜보면 순간에 빠져 촬영할 기회를 자주 놓치는 내가 그걸 남겨놨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지난 며칠 머릿속으로 그 영상을 여러 번 재생했다. 영상은 머릿속에서 매번 조금씩 세부적으로 달라졌다.

아주 고집스러운 북극성이 빛날 때
그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건너서 들은 이후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도 괜히 마음을 졸였다. 수많은 약자의 ‘뒷배’가 막 생을 달리하려고 했다. 그의 추모제에 와서 땅을 치면서 서럽게 우는 이들, 그는 그런 이들을 위해 살았던 아주 고집스러운 북극성이었다.
아주 유망해 보였던, 그래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던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럴싸한 말로 기존의 정치 신념을 일부 혹은 전부를 저버리고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얼굴로 취재진 앞에 서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그들의 구체적인 얼굴이 나의 친구와 동료들을 손쉽게 절망하게 만들었다. 분노라기보다는 허탈함이거나 혹은 궁금증에 더 가까웠다. 정치를 시작했을 때의 첫 마음을 유지하는 일이 그다지도 어려운지를.
그러나, 아직 그리 오래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홍세화 편집위원장은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하는 몇 안 되는 드문 사람이었다. 그의 글은 언제나 타인, 고통받는 타인을 위해 쓰였고, 무엇보다 다수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평생을 그렇게 써왔다. 글을 쓰는 이들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안다. 나를 드러내고, 보다 많은 이들을 만족시키는 글이 환영받는 세상에서 이상하게 그는 자꾸 반대로만 갔다. 홍세화 선생은 늘 그 ‘가장자리’에 있어왔다.
홍세화는 작고하기 며칠 전에 진행한 <한겨레>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겨레>는 앞으로 어떤 언론이 돼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알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오래 몸담고 사랑했던 신문사 <한겨레>를 향한 대답이었지만 대답을 곱씹으면서는 그것이 비단 <한겨레>만을 향한 대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게 맞다고. 사실 ‘우리’(그리고 ‘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무엇이 옳은지 안다면, 아는 대로 살면 된다고. 첫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어렵지만 그럼에도 그와 같이 살다 간 사람이 있다는 걸 직접 보았기에 슬픔 속에서 작은 용기를 품는다. 홍세화는 그런 사람이었다.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함께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다. 사람 하나, 개 하나랑 서울에서 살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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