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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2 스페셜

존재만으로 - <롱롱TV> 김영롱

2024.07.09

치매를 앓고 있는 94세 할머니와 손녀의 따뜻한 일상을 기록한 채널 <롱롱TV>. 치매 가족이 겪는 어려움보다는 행복한 일상의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 채널은 개설 1년 만에 11만 구독자의 마음에 가닿았다. 할머니의 사랑으로 자란 손녀는 이제 할머니의 옆에서 모든 걸 가르쳐주는 눈이 되었고, 치매라서 오히려 사랑스러운 할머니의 모습들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낸다. 훗날 내가 기억하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을 담아낸 손녀의 카메라엔 어떤 모습들이 담겨 있을까. 할머니 덕에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롱롱TV>의 김영롱 씨를 만나봤다.


글. 김윤지 | 사진. 김화경

최근 영상을 보면 섬망 증상이 계속되던데, 요즘 할머니 건강은 어떠세요?

최근 벚꽃 구경을 다녀온 이후부터 할머니 체력이 많이 떨어지셨어요. 요즘 부쩍 잠이 많아지셨고, 식사 거부도 꽤 심하셔서 살도 많이 빠진 상태예요. 치매는 사람마다 또, 치매의 종류, 주변 환경 등에 따라 증상도 다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단계를 따라서 진행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정확히 할머니가 지금 어떤 단계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요.

어느덧 <롱롱TV> 채널을 개설한 지도 1년이 넘었는데 할머니와의 일상을 유튜브에 담아보기로 계기가 있어요?

치매 어르신들이 흔히 하시는 실수들이 있잖아요. 대소변 실수라든지, 기저귀를 깜빡하고 안 한다든지 하는 것들 때문에 그 당시에 엄마랑 제가 굉장히 힘들어했었어요. 또 당시에 할머니가 외출에 대한 집착이 심하셔서 밤 9시만 되면 마당에 나와서 소동을 피우곤 하셨거든요. 그래서 통금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제가 그런 상황이 답답했는지 하루는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뭘 할지, 여행은 어딜 갈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예요.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한테 큰 충격을 받았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뭐라도 해야겠다! 그때가 마침 내가 잘하는 게 뭔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때였거든요. 친한 친구가 요즘 유튜브에 사람들이 자기가 잘하는 걸 올리지 않냐면서 할머니와 함께하는 일상을 한번 유튜브에 올려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할머니를 돌보는 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고, 넌 그걸 잘하고 있다면서. 그게 <롱롱TV>의 시작이었고, 어느덧 1년이 넘었네요.

처음 할머니와 영상을 찍었던 때가 기억나세요?

저희 할머니는 자기가 안 내키면 절대 뭘 안 하시는 편이라 처음 영상 촬영을 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막상 할머니 앞에 삼각대를 딱 놓으니까 걱정과 달리 말씀도 너무 잘하시고 되게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나중에 나 기억하려고 찍냐.”였는데, 그 말을 하면서 기뻐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첫 촬영에서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했을 때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냥 안고 살아가면 돼.”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있네요. 촬영을 하면서 점점 표현력이 늘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할머니를 돌보려고 자기 시간을 온전히 쏟는 손녀가 흔하지는 않을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특별한 친밀함이 있었나요?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랐는데, 특히 할머니가 저를 애지중지 공주처럼 키워주셨어요. 친구들이 저를 울리기라도 하면 막 나서서 혼내주시고.(웃음) 할머니가 저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데 반하면 한참 부족하죠. 저도 20대 때까지만 해도 놀러 다니느라 바빴거든요. 제가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지 자연스레 상황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은 어려웠을 거예요.

<롱롱TV> 특징은 치매 가족이 겪는 어려움보다는 행복한 일상의 순간들에 집중한다는 점이에요. 촬영도 하루 할머니의 상태가 괜찮은 저녁 시간대에만 진행하고 있죠?

치매라고 해서 24시간 흐릿하진 않거든요. 할머니가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때는 많이 아프다는 얘긴데, 그럴 때 누가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촬영한다고 하면 누구라도 화가 날 거잖아요. 할머니가 나를 미워할 만한 영상은 만들지 않는 게 저의 큰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런 건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무엇보다 제가 기억하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을 담고자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거니까요. 할머니의 아픈 모습보다는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많이 담고 싶어요.

채널에서 가장 주목받은 영상은 영롱 씨가 할머니를 목욕시켜드리는 모습이 담긴 쇼츠 영상이죠. 그럼 가장 애착이 가는 영상은 뭐예요?

의외일 수도 있는데, 제가 할머니한테 네일아트를 해드리는 영상이 있어요. 조회 수가 그렇게 높은 영상은 아닌데, 저는 그 영상을 가장 좋아해요. 할머니가 처음엔 이런 건 애들이나 하는 거다, 창피해서 안 한다 그러시더니 막상 시작하니 막 저를 재촉하면서 “여긴 안 칠해?” 이러시더라고요. 그 영상을 찍으면서 할머니의 마음속에 아직 소녀 같은 면이 남아 있다는 걸 느꼈고, 이후 할머니의 그런 면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할머니의 소녀 같은 면을 찾으려고 했듯이, 치매라서 예쁜 부분에 집중하면서 집안 분위기가 밝아졌다고요. 할머니의 어떤 면들이 특히 예뻐 보이나요?

여러 번 기뻐하는 모습이 제일 예뻐 보이세요. 저기 벽에 걸려 있는 실버 버튼도 제가 미국에서 온 상장이라고 그랬거든요. 할머니가 팬이 많아져서 주는 상장. 처음에는 별로 안 좋아하시다가 미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저건 뭐냐고 자주 물어보시는데 상장이라고 하면 그때마다 좋아하세요. 아! 그리고 그것도 있어요. 원래 할머니 성격이 힘든 일이 있어도 말을 안 하고 속에 묻어두는 편이시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참 많이 울었다고, 할아버지를 정말 많이 사랑했다고요. 마음속에 억눌러놨던 것들을 조금씩 털어놓고 계신 것 같아요.

앞으로 할머니의 어떤 모습들을 영상에 담아내고 싶어요?

최근 할머니가 우울감이 굉장히 심해지셨어요. 식사도 잘 못 하시고 뭘 하려고 해도 곧 죽을 건데 뭐 하러 하냐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전에는 안아드리기만 해도 잘 웃으셨는데 요즘은 웃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네요.(웃음) 그래서 앞으로는 특별히 뭘 한다기보다는 할머니가 웃는 모습을 최대한 많이 담고 싶어요.

영롱 씨에게 할머니는 어떤 존재예요?

사랑이 뭔지를 알려준 소중한 존재요. 사실 그전까지는 사랑이 뭔지 잘 몰랐는데 할머니 덕에 알게 됐어요. 상대방이 웃는 걸 보면 나도 같이 웃게 되고, 가만히 기대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게 사랑이더라고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실 굉장히 자연스러운 거라는 걸 저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았어요.(웃음) 제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잘 기억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솔직히 그런 말을 되게 많이 듣거든요. 왜 할머니를 요양원에 안 보내냐. 네 인생도 있는데 왜 모든 시간을 할머니한테 쏟냐. 근데 저는 하나도 후회되지 않아요. 전보다 더 많은 기회들이 저를 찾아오고 있고, 무엇보다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통해서 느끼고 배운 게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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