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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9 컬쳐

사소하게 연연하는 - 우리는 성장한다, 머리카락이 세고 허리가 굽더라도│수사 시트콤 〈개소리〉

2024.11.15

수사 시트콤 〈개소리〉 스틸 ©KBS

글. 박현주

노인 인구의 비율이 늘어가는 고령화 시대는 이미 도래했지만, 대중매체에서 노인을 그리는 방식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 보통 PPL로 만들어지는 건강 프로그램, 트로트 경연, 재산이나 결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을 그리는 드라마와 리얼리티 관찰 쇼 등, 명확히 노인을 타깃으로 하는 방송은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그 프로그램에서 노인이 반드시 주인공인 것도 아니다. 제작자들은 노령층을 수동적인 소비자 정도로 인지하고, 그들이 볼 만한 방송은 만들어도 그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내용을 창작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은 세대를 넘어서 다 시청하지만, 노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젊은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KBS 2TV 수목 드라마 〈개소리〉는 현재 드라마 환경에서는 드물게 노인을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올해 90세인 이순재 씨가 본명과 원래 직업대로 출연하고, 그의 친구들로 김용건, 예수정, 송옥숙, 임채무 배우가 역시 본명으로 출연해 “시니어벤저스”를 이룬다. 시트콤을 표방하는 이 드라마는 노배우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1화에서 원로 배우인 순재는 아이돌 출신 배우 현타(남윤수)의 연기력에 불만을 품고 그에게 쓴소리하다가 결국 같이 출연 중인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된다. 억울한 마음으로 촬영장을 나오던 그는 차 뒤에서 노상 방뇨하다가 현타의 팬들에게 들키고, 현타에 대한 억하심정으로 테러를 저질렀다는 오해를 받고 진상 배우로 찍힌다. 거제로 도피성 휴양을 떠난 순재는 은퇴한 전직 경찰견 소피(아리, 목소리 연기: 배정남)의 말을 듣게 되고 둘은 힘을 합하여 동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해결한다.

수사 시트콤 〈개소리〉 스틸 ©KBS

〈개소리〉는 허술한 구석이 군데군데 눈에 띄긴 해도, 여러모로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먼저 이 드라마는 한동안 한국 TV의 대세 장르였으나 이제는 명맥도 찾기 힘든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표방했다. 〈거침없이 하이킥〉 시리즈로 한국 시트콤의 대부가 된 이순재 배우의 저력을 여기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원로 배우들이 순재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한 철부지 친구들로 나오면서 코믹한 상황들을 만든다. 형사가 되고 싶은 파출소 순경 홍초원(연우)과 이순재-소피의 공조도 재미있지만, 실은 초원과 순재의 숨겨진 관계까지 뒤섞이면서 유쾌한 가족극적 성격까지 띤다. 아들 기동 역에 박성웅, 초원의 어머니 은하에 김지영 배우가 합류하면서, 12부작 수목극치고는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개소리〉는 자극적인 사이다 장르물이 범람하는 한국 TV에서는 특이하게도 코지 미스터리를 추구한다. 이 드라마는 2회를 기준으로 홀수 차에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짝수 차에는 이를 해결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코지 미스터리의 특성상 이 드라마는 살인 사건의 잔혹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분란과 아마추어 탐정의 활약을 그리는 데 초점이 있다. 6회까지 다룬 사건들도 자극적인 방송을 하던 유튜버의 죽음, 드라마 대본과 똑같이 일어난 웹툰 작가의 살인, 자식들의 재산 싸움 속 가짜 자살을 꾸몄던 해녀의 사건 등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 갈등을 다룬다. 그러기에 이를 해결하는 방식도 가십 추적에 가깝다. 동물들의 시선은 인간보다 날카롭기에 마을에 퍼진 소문을 물어 오는 소피의 능력, 그를 이해하는 순재의 협조, 그리고 행동파 초원의 민첩한 수사로 수수께끼는 풀려나간다. 동물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환상적인 능력이 기반이 되기 때문에 추리 과정이 정교하거나 긴장감이 높진 않고 구성도 헐겁게 느껴지지만, 가볍게 추리해볼 수 있는 두뇌 게임적 재미가 있다.

수사 시트콤 〈개소리〉 스틸 ©KBS

독거도 공동체적 연결 속에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개소리〉의 가장 큰 장점은 노인들이 주인공이라는 설정을 단순하게 배경으로만 두지 않고 스토리 내에서 에피소드로 녹여냈다는 데 있다. “개 소리”라는 제목은 소피의 목소리라는 의미도 있지만, 현재 사회에서 노인들이 하는 말을 꼰대라면서 일축해버리는 세태에 대한 풍자이다. 인터넷 등지에서 노인들에 대한 불만을 들을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그건 노령화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한다거나 너무나 큰 소리로 말한다거나 해서 무례하게 보이고 들리는 일들도 노인의 달라진 신체적, 정신적 기능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순재가 대중에게 밉상으로 찍힌 첫 번째 사건, 노상 방뇨 건도 실은 노인에게 흔한 빈뇨나 급박뇨 등 신체 이상 때문이었다. 순재의 친구들도 다 노령으로 인한 여러 가지 증상이 있다. 용건은 지나친 건망증 때문에 촬영 장소를 다른 데로 찾아가고, 수정은 백내장으로 사람의 얼굴을 착각한다. 노인들은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며 사회에서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을 느낀다. 사회에서 필요 없다는 자괴감은 부상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된 경찰견 소피도 마찬가지다. 후각도 뛰어나고 지능도 높지만 소피는 경찰에서 떠나 초원에게 입양된 신세이다. 결국 〈개소리〉는 각각 은퇴 위기에 놓인 인간과 개가 만나서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기 유능감을 회복하는 이야기이다. 드라마 작가인 수정, 분장감독 옥숙, 조명감독 채무 또한 사건 해결에서 현역과 다름없는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회에서의 자기 역할을 또 한 번 확인한다.

인간이 삶을 지속한다는 건 의식주의 충족이나 나아가 신체 건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역할이 주어지고 자기 필요를 확인할 때 존엄이 유지된다. 〈개소리〉는 노년의 변화에서 오는 서글픔을 진지하게 따라가면서도 이를 경쾌한 분위기로 끌어올려 노인의 활동성을 강조한다. 세계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바뀌더라도,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싶다. 이런 보편적 바람이 성취되려면 공동체적 연결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 보통 노인의 네트워크를 가족으로 한정 짓는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이 언젠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독거의 삶을 대비할 수 없다. 〈개소리〉에서 순재와 친구들은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함께하는 삶을 유지하며 서로 지지한다.

〈개소리〉의 기획 의도를 보면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있다는 것이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인생에서의 변화를 성장이라고 일컫는 건 길어봤자 20대까지고 이후의 변화를 “쇠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끝까지 자랄 수 있다. 정말 끝이 올 때까지 누구든 더욱 나은 사람이 되도록 배우고 변할 수 있다는 믿음만이 삶을 지탱해준다. 우리는 모두 자란다. 노인일지라도. 이를 알려주는 귀엽고 경쾌한 드라마 〈개소리〉를 응원한다.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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